환경단체에서는 갯벌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냈다. 그것은 4년 7개월 동안의 지리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개발’ 쪽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공사가 완료된 지금 이 시점에도 환경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방조제 내부에 오염처리 시설을 설치하고 습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며 합의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새만금 방조제는 환경문제 외에도 할 얘기가 많은 곳이다. 길이가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는 사실도 그렇고, 바닷모래와 돌망태를 이용한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토목 기술로 지어졌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한지는 대답하기 힘들지만, 공사가 완료된 이상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또 앞으로의 새만금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새만금 사업에 18년 동안 몸담아온 오진휴 소장이라면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그가 만든 방조제를 만나기 위해 5월 13일 전북 김제를 찾아갔다.
바다를 가르는 33.9km 4차선 도로
방조제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거대하다’, ‘길다’는 얘기는 많이 듣고 갔지만 직접 가서 보니 사람이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방조제 위에 설치된 4차선 도로는 일반 도로만큼 폭이 넓었다. 그런데 이 도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박 계장은 “폭이 가장 넓은 곳은 535m이고, 높이는 36m”라며 “이곳에 들어간 돌과 모래의 양은 길이가 418km인 경부고속도로 4차선을 13m 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양”이라고 알려줬다.
방조제 안쪽은 서울의 3분의 2 면적이라는데, 정말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래 이곳에는 농업용지를 만들 계획이었지만, 중간에 계획이 많이 변경됐다. 지난 1월 28일 발표된 ‘새만금 내부개발 기본구상 및 종합실천계획’에 따르면 전체의 70% 정도는 관광용지나 생태환경용지, 과학연구용지, 신재생에너지용지, 농업용지 등의 복합적인 토지로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호수로 꾸민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부분이 방조제 내부의 수질인데, 새만금사업단은 새만금으로 강물이 흘러드는 동진강과 만경강의 상류에 오염처리 시설을 설치하고, 방조제 내부에는 자연정화 기능이 있는 생태환경용지를 건설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부개발공사는 내년부터 시작해 2020년에 완료된다고 하니 그때쯤이면 이 도로를 달리면서 도시와 호수, 그리고 바다를 동시에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래로 더 단단하게 짓는다?
규모와 경치에 감탄하다 보니 금세 3공구사업소에 도착했다. 방조제는 지어진 순서대로 1공구부터 4공구까지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인터뷰를 하기로 한 오 소장은 3공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 소장을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내려 발을 굴러봤다. 방조제가 튼튼한지 괜히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기자의 모습을 봤는지, 오 소장은 “비행기가 착륙해도 끄떡없다”고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구성진 전라도 억양이 이곳에서 보낸 18년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 방조제만큼 튼튼한 방조제는 없을 겁니다. 1000년에 한 번 불어올까 말까 하는 센 바람과 높은 파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거든요. 게다가 바닷모래를 썼으니 오랫동안 안전할 겁니다.”
방조제를 모래로 지었다는 말이 처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됐다. 모래성은 작은 파도에도 힘없이 무너져 버리지 않는가. 기자의 표정을 본 오 소장은 “방조제의 뼈대는 사석이라는 큰 바위로 만들고 그 위에 바닷모래로 살을 입힌 것”이라며 “모래는 잘 다져 놓으면 돌처럼 튼튼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방조제를 지을 때는 모래 대신 흙이나 진흙을 이용한다. 특히 진흙은 물을 막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모래보다 적은 양으로 방조제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진흙은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으면 점점 강도가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오 소장은 “군산 앞바다의 섬을 깎은 돌과, 2공구와 4공구 방조제 앞쪽 바다에서 파낸 바닷모래로 방조제를 지었다”며 “타지에서 진흙을 가져와 짓는 것보다 훨씬 친환경적이고, 파낸 부분은 수년 내로 다시 메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방조제 전체를 바닷모래로 지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정밀한 모형실험으로 돌 크기 결정
그래도 바닷물이 계속 흐르는데, 어떻게 모래가 떠내려가지 않고 쌓여 있을까. 오 소장은 “평상시에 이곳 서해는 바닷물의 속도가 초당 1m 정도지만, 공사가 진행돼 물이 드나들 수 있는 폭이 좁아진 상태에서 조류가 빠른 시기가 되면 1초에 7m 정도까지 빨라진다”며 “바닷물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방조제 축조 공사는 여러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방조제를 건설할 자리에 지반 매트를 깔고 무게가 2~3t인 큰 바위를 쌓아 방조제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것을 ‘바닥보호공’이라 한다. 그 위에는 또 다른 큰 바위(사석)를 쌓아 ‘방조제의 뼈대’인 ‘1차 사석제’를 만든다. 뼈대를 만든 뒤에는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방조제 바깥쪽 단면을 ‘근고공’으로 보강하고, 안쪽 단면에는 ‘필터석’을 설치한다. 이때 필터석은 방조제 안쪽으로 갈수록 돌 크기가 작아지도록 쌓아야 한다. 필터석의 끝부분에는 폴리에틸렌 재질의 매트를 놓는다.
필터석과 매트는 바닷물이 바위틈으로 들어오더라도 모래가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근고공과 사석, 필터석을 모두 쌓으면 그 위는 ‘피복석’으로 덮는다. 피복석의 크기는 파도의 높이나 바닷물의 유속을 고려해 결정한다. 그 다음으로 모래를 쌓아 방조제에 차수층을 만든다. 차수층은 이름처럼 바닷물을 막는 역할을 한다. 차수층의 끝부분은 다시 사석을 쌓아 마무리한다. 바닥보호공은 공사 초반 물살이 세지기 전에 전체적으로 시공하지만 나머지 공사들은 200~300m씩 순차적으로 진행하며 조금씩 방조제 길이를 늘려 나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철저한 모형실험을 해서 계획합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어촌연구원에는 가로, 세로가 100m인 큰 수조가 있는데, 여기에 실제로 방조제 모형을 세우고 밀물과 썰물을 재현해요. 그 결과로 파도의 높이를 계산한 뒤에 방조제의 높이와 사용할 재료의 크기를 결정하죠.”
방조제는 실제로 각 구간마다 높이와 피복석이 다르다. 1공구는 파도가 방조제의 수직 방향으로 세게 치기 때문에 높이를 10.2m로 설계한 반면, 3공구는 방조제 앞쪽에 섬이 있어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높이를 8.5m로 설정했다. 중국 쪽에서 파도가 가장 크게 밀려오는 4공구는 방조제 높이가 11m다. 이런 높이 차이를 자동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3공구는 4공구에 비해 피복석도 작다. 3공구의 피복석은 1t 내외지만, 4공구 피복석은 약 3t 정도다.
가장 힘들었던 끝막이 공사, 돌망태로 마무리
돌망태 공법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다. 돌망태는 큰 바위를 구하기 어려울 때 대신 사용할 수 있고, 큰 바위와 달리 모양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공간에 알맞게 채워 넣을 수 있다. 또 큰 바위는 모서리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물의 저항을 많이 받는 반면, 돌망태는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물의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잘 떠내려가지 않는다. 오 소장은 “유속이 같고 무게가 동일하면 돌망태가 바위보다 3배 정도 잘 버틴다”고 설명했다.“끝막이 공사 때도 이 돌망태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공사 막바지라 큰 바위들이 많이 부족했는데, 돌망태들을 여러 개 묶어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죠.”
“24만 개가 넘는 돌망태를 들이부었습니다. 여기 우리가 있는 사무실부터 저쪽 기념탑이 세워진 데까지가 전부 돌망태를 쌓아놨던 땅이에요.”
오 소장이 가리키는 곳에는 전망대와 공원으로 꾸며진 넓은 부지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넓은데, 거기에 돌망태가 가득 쌓여 있었다고 상상하니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끝막이 공사 때였던 것 같아요. 한 번 실수하면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 엄청 준비를 했죠.”
오 소장은 3월 17일부터 4월 21일 중 유속이 가장 느린 세 기간(소조)을 정해 끝막이 공사를 계획했다. 바닷물이 너무 세서 끝막이 부분을 두 구간으로 나눠서 진행하는데, 두 구간을 동시에 정확히 막는 게 관건이었다. 두 구간을 일정한 속도로 채우지 못하면 어느 한 구간에 바닷물이 쏠려 그쪽 바위들은 물론 기초 지반까지도 모두 떠내려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꼼꼼히 분석하고, 위험요소에 미리 대책을 세워놔야만 했다. 오 소장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유속에 따라 재료가 쓸려 내려가는 정도를 파악한 뒤, 1초에 얼마만큼의 돌을 쏟아 부어야 하는지, 이때 바위와 돌망태는 어느 정도의 비율로 써야 하는지 세밀하게 공정 계획을 세웠다. 실제 공사 때는 계산한 양보다 재료를 30% 정도 더 준비했다. 시공팀은 이날 172만 9000m2의 바위와 돌망태를 사용해 끝막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는 15t 덤프트럭 22만 대 분량이다. 35t 이상의 대형 덤프트럭 16대와 15t 트럭 150대가 이날 가동됐다.새만금 방조제는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공사였다.
인도나 네덜란드처럼 간척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국가들은 직접 새만금 방조제를 방문하기도 했다. 오 소장은 “국내 방조제 건설 기술은 세계 수준”이라며 “해외 기술자들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기술을 빼내 가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이런 대규모 간척사업을 해외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배와 물고기가 오가는 길
그 이후의 인터뷰는 오 소장과 함께 방조제 위를 걸으면서 계속됐다. 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방조제 내부에 고인 물을 바깥으로 빼내는 수문이 있었다. 이름이 ‘배수갑문’이라는데 인공폭포라고 해도 될 만큼 크고 멋있었다. 오 소장은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홍수에 대비해 만든 수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가 신시배수갑문입니다. 폭이 300m, 높이는 15m나 되죠. 부안군 쪽에는 가력배수갑문이 있어서 새만금 방조제에는 배수갑문이 총 두 개입니다. 수문 두 개를 합치면 1초당 방류할 수 있는 물의 양이 1만 5862t이에요. 소양강 댐의 3배죠.”
새만금 방조제의 엄청난 규모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배수갑문 한쪽에는 문이 또 있었다. 오 소장은 배가 드나드는 ‘통선문식어도’라고 설명했다. 통선문식어도에는 방조제의 안쪽과 바깥쪽에 수위 차가 생길 것을 대비해 작은 문이 여러 개로 설치돼 있었다. 문이 차례로 열리면서 배가 서서히 방조제 밖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였다. 통선문식어도는 신시배수갑문과 가력배수갑문에 각각 한 개씩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연다고 한다.
“통선문식어도는 물고기들이 오고가는 문이기도 해요. 어종을 보호해야 되니까요. 배수갑문 아래로는 긴 관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만약 방조제 안쪽 바닥에 더러운 물이 고이면 이 관으로 빼낼 수 있죠. 사실 방조제 곳곳에 환경을 생각해서 만든 부분이 많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환경단체와 법원을 드나들다 보니(웃음)….”
모든 것을 초탈했다는 듯이 웃는 그를 보면서 환경단체든 정부든 어느 한쪽도 마음이 편한 쪽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튼튼하게 지었으니, 경제를 발전시키는 역할은 제대로 하면서 환경피해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와 헤어지고 김제역으로 돌아오는 길. 방조제 뒤로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새만금 방조제는 바닷모래와 돌망태가 아니라 오 소장 같은 사람들의 땀과 국민의 기대로 세워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