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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경우인데, 외국인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여성이 대부분이다. 이런 다문화가정은 매년 크게늘어나고 있다. 2008년 국제결혼은 3만 8000여 건으로 전체 결혼의 11%를 차지할 정도다.

특히 2014년에는 결혼 적령기의 남녀 성비 불균형이 더 심해져(남성이 38만여 명 더 많음) 결혼 적령기 남성의 약 20%가 외국에서 신부를 찾아야 한다. 이제 ‘한반도 단일민족’이란 표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듯하다.

사실 ‘한반도 단일민족’이라는 관념 자체가 확실한 근거가 없는 얘기다. 한반도에서만 한국어가 쓰이고 거주하는 사람들의 외모도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들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을까. 아직까지 이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그 실체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동남아 살던 인류, 중국과 한국으로 북상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 12월 11일자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민족의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게놈연구회(HUGO) 아시아지역 컨소시엄은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73개 집단에서 1900여 명의 염색체를 조사해 각 민족들의 이동 경로를 알아냈다고 ‘사이언스’ 논문에서 밝혔다. 아시아 민족의 이동 연구가 대규모로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2004년부터 한국, 싱가포르, 중국 과학자들이 주도해 시작됐으며 일본, 필리핀, 태국 등 11개국의 40개 연구기관에서 93명의 과학자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국립보건원과 한국생명공학 연구원, 숭실대 등이 참여했다. 컨소시엄을 이끈 싱가포르게놈연구소 에디슨 리우 소장은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인이 기획해 아시아인이 돈을 대고 아시아인이 실행해 완결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주제는 아시아 민족이 어떻게 이동하고 분화됐는지다. 연구자들은 염색체 위에 있는 단일염기다형성(SNP)자리를 5만 곳 이상 비교해 각 집단의 유전적 특징을 파악했다.

SNP란 개인마다 염기서열이 다른 부분이다. SNP의 차이가 많을수록 두 집단은 유전적으로 서로 거리가 멀다는 의미다. 연구 결과 SNP 분석을 통한 각 집단 사이의 유전적 친소관계는 현재 사용하는 언어나 살고 있는 지역의 분포와 대체로 일치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 집단은 같은 알타이어에 속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일본인집단과 가장 가깝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편 유전적 다양성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두드러지게 줄어든다. 즉 동남아에 도착한 여러 그룹 가운데 일부만이 동북쪽으로 이동해 한반도 주변에 정착한 셈이다. 그 결과 동아시아 집단에서 발견되는 유전적 변이의 대다수는 동남아시아 집단에 서도 볼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동아시아는 동남아시아의 부분집합인 셈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 나갔다. 대략 5만~6만년 전 인도 북부에 도착한 이들은 험준한 티베트 고원을 피해 동남아시아로 이동했다.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 정착한 아시아인 중 일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동하고, 다른 집단은 북쪽으로 향해 중국과 한국, 일본에 정착했다. 그동안 동아시아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었다.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류가 바로 동아시아로 왔다는 설과 먼저 동남아를 거친 뒤 동아시아로 이동했다는 설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숭실대 생명정보학과 김
상수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두 번째 가설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며 “그림만 놓고 보면 인류가 남쪽 해안을 따라 돌면서 한반도까지 왔다는 뜻”이라고 말했
다. 연구팀은 그 증거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동아시아 사람들보다 유전적으로 훨씬 다양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그만큼 동아시아 사람들이 최근에 분화됐다
는 의미다.

한·중·일은 형제나 마찬가지

이번 논문에 참여한 국립보건원 김형래 원장은 “각 민족의 염색체를 비교한 결과 인류가 중국에서 한반도, 다시 일본으로 이동한 경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현생 인류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뒤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당시 한국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염색체 분석을 맡았던 박종화 테라젠 바이오연구소장은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은 다른 민족과 비교했을 때 매우 닮았다”며 “연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를 100%라고 했을 때 중국인과의 차이는 5%, 일본인과는 4.2%에 불과하다. 반면 유럽인과는 58%나 차이 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전체 인류 안에서는 형제라고 할 정도로 유전자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경기 안성과 안산시 주민 90명의 염색체를 분석했으며, 일본은 도쿄, 오키나와 등에 사는 사람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북방계 민족의 이동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완의 연구라는 지적도 있다. 컨소시엄에 몽골 등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 연구진들이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다른 연구를 보면 현생 인류 일부가 북쪽으로 이동해 동아시아로 온 것도 맞을 것”이라며 “한국인은 남쪽과 북쪽에서 온 인류가 합쳐진 민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컨소시엄은 이런 가능성에 답하기 위해 2차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중앙아시아와 태평양 섬나라도 포함한다. 2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좀 더 정밀하게 아시아 인구 이동을 보여주는 지도가 탄생할 전망이다.이번 연구에서는 말레이시아 북부와 필리핀 등에 아프리카 흑인과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는 흑인 계열 민족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국립보건원 형질연구과 이종영 과장은 “민족 사이의 유전자 차이를 알면 특정 민족에게 잘 듣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를 맞춤 의약이나 법의학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1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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