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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살에 닿아 가볍게 스칠 때처럼 견디기 어렵게 자리자리한 느낌.’

사전에 적힌 간지러움의 정의는 이렇다. 여기서‘자리자리하다’는 피가 돌지 못해 저린 느낌을 말한다. 상처가 난 부위에 딱지가 생기거나 벌레에 물리면 자리자리한 느낌이 들어 저절로 손이 간다. 긁고 싶은 충동을 참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시대에는 ‘간지럼 고문’이 있었다.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해 죄인 대부분은 순순히 죄를 자백했다고 한다.

가려움은 간지러움과 그 느낌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실 권오상 교수는“가려움은 피부를 긁거나 문지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간지러움은 불쾌한 감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웃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 중 일부는 간지러움이 해소되지 않고 심할 경우를 가려움이라고 정의한다.

잘 씻으면 오히려 가렵다?

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가을과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이면 가려움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유독 많아진다. 초이스피부과 양성규 원장은“가을부터 겨울 사이 가려움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여름철보다 2배가량 늘어난다”고 말했다. 건조한 날씨 탓에 피부가 함유한 수분이 줄어들며 피부건조증이 쉽게 생기기 때문이다. 피부건조증은 피부과 질환 중 가장 흔한 질병으로 가려움을 유발한다.



피부건조증은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땀샘에서 분비되는 땀이 줄어 피부의 표피와 진피로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피부에 있는 기름샘인 피지선이 위축될 때 생긴다. 피지선에서 분비되는 피지(皮脂)는 피부표면에 지방 막을 형성해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가을이나 겨울에는 습도가 낮아 피부에서 증발하는 수분이 많아져 피부가 더 쉽게 건조해진다. 양 원장은 “일반적으로 촉촉하고 매끄러운 피부는 수분 함량이 15∼25% 정도인데, 날씨가 건조하면 수분 함량이 10% 이하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지나치게 깨끗함을 추구하는 습관도 가려움증을 일으킨다. 누군가 몸 여기저기를 북북 긁는 모습을 보면‘안 씻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쉽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던 과거에는 실제로 그랬다. 피부에 기생하며 피를 빨아 먹는 이나 옴벌레가 일으키는 전염성 피부병인 옴 때문에 가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나옴 때문에 가려움증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목욕 중에 때 타월로 세게 때를 밀어 피부의 각질이 심하게 벗겨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각질은 피부의 상피구조를 형성하는 단백질의 하나로 외부의 물리·화학적 자극에서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양 원장은“피부의 각질이 심하게 벗겨지면 피부가 민감해지고 습진이나 피부염에 걸려 가려움증을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각질이 손상되면 세균이나 꽃가루, 곰팡이, 먼지 같은 알레르겐 이 피부 안쪽의 진피까지 쉽게 도달한다. 그 결과 세균성 습진이나 염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가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알레르겐이 체내로 유입되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몸에서는 항체 중 하나인 면역글로불린E(IgE)가 분비된다. 그런데 면역글로불린E는 진피에 존재하는 비만세포(mast cell)를 활성화한다. 비만세포는 면역세포의 하나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주원인이다.

이 세포의 표면에는 면역글로불린E가 붙을 수 있는 표면인자가 있는데, 알레르겐이 면역글로불린E와 결합하면 비만세포가 활성화된다. 이렇게 활성화된 비만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인 히스타민을 분비해 신경말단을 계속 자극하며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가려움 느끼는 제5 수용기 있을까

우리 몸의 피부에는 접촉에 의한 자극을 인지하는 촉각 수용기, 따뜻함을 느끼는 온각 수용기, 차가움을 느끼는 냉각 수용기, 통증을 인지하는 통각 수용기 네 종류의 감각 수용기가 있다. 각각의 수용기는 피부에 점으로 분포하는데, 피부 1cm2당 촉각 점은 25개, 온각 점은 0∼3개, 냉각 점은 6∼23개, 통각 점은 100∼200개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려움을 느끼는 감각 수용기나 가려움을 인식하는 경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통증과 가려움이 같은 신경반응이며 자극의 세기가 약하면 가려움으로, 강하면 통증으로 뇌가 인식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가려움과 통증은 별개의 감각이라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의대 마취과 첸 저우펭 교수는 통증과는 별개로 가려움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세포(뉴런)가 척수에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첸 교수팀은 쥐 척수신경세포에서 가려움증 전달과 관련된 GRPR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해 사포린이라는 독성물질을 투입했고 2주가 지나자 GRPR을 가진 척수신경세포가 75% 이상 파괴됐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히스타민을 비롯해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물질 6가지를 쥐의 피하지방에 주입했다. 그 결과 GRPR이 파괴된 쥐 10마리 가운데 8마리는 가려움을 일으키는 물질을 주입해도 몸을 긁지 않았다. 반면 GRPR이 파괴된 쥐들은 통증이 약하더라도 반응했다. 첸 교수는 “GRPR을 가진 척수신경세포는 가려움만 뇌에 전달하는 특이 신경세포”라며 “가려움과 통증은 전혀 다른 신경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가려움만을 느껴 뇌로 전달하는 제5의 수용기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북북’ 긁으면 시원한 이유

가려운 부분을 북북 긁으면 마치 더운 여름 날 차가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다. 그 이유는 뭘까. 지난 4월 미국 미네소타대 글렌 기슬러 박사팀은 가려운 부분을 긁을 때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척수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활동을 멈추면서 가려운 느낌이 뇌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기슬러 박사팀은 원숭이의 척수와 뇌의 시상하부를 연결하는 신경다발인 척수시상로(STT)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섬유에 전극을 부착해 전기신호를 측정했다. 연구팀이 히스타민을 원숭이에게 주입하자 원숭이는 가려움을 느끼고 몸을 긁기 시작했고 잠시 후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사라지는 현상이 관측됐다.

그러나 20~40초 정도가 지나자 신경세포는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기슬러 박사는 “가려운 부분을 긁고 나서 잠시 후 또 가려운 이유는 신경세포가 활동을 멈추는 시간이 20~40초로 짧기 때문” 이라며 “몸을 긁고 난 뒤 신경세포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시 가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칠 듯이 가려움이 계속된다면 긁어서 해결하기보다는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편이 좋다.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나는 히스타민에 의한 가려움은 알레그라, 유세락스 같은 항히스타민제로 치료할 수 있다. 초이스피부과 양성규 원장은 “가려움증이 나타날 때 계속 긁으면 각질이 손상돼 습진으로 악화될 수 있다”며 “가려움이 심하지 않을 때는 샤워를 하거나 보습제를 바르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의 유혹이 계속된다면 때로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신경성 피부염 같은 피부질환에는 자외선을 이용한 광선치료요법이 쓰인다. 양 원장은 “피부의 독소물질을 제거해 염증반응을 완화시키면 가려움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양모 같은 자극적인 소재로 만든 옷은 피하는 편이 좋다. 또한 긴장이나 불안 등은 가려움증을 악화시키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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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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