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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생명체를 기다리며

우주를 향한 지구인의 고독한 꿈

지난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때맞춰, 무인 탐사선 패스파인더는 우주 개척사상 처음으로 움직이는 로봇 탐사차를 태우고 7개월간의 긴 항해 끝에 화성에 도착했다. 패스파인더가 도착한 곳은 아레스 계곡. 과거에 아마존 강의 1천배에 달하는 물이 흘렀으리라 추정되는 곳이다. 만약 화성에 생명체가 살았다면 이곳에 퇴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패스파인더의 착륙지점으로 선정됐다. 9월 중순 화성의 궤도에 진입한 우주선 마르스 서베이어호는 화성의 지형을 자세히 관측하고 있다.

과연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가 또는 살았는가에 대한 의혹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화성은 그 표면이 붉은 빛을 띠고 있어서 불과 재난을 상징한다 하여 ‘전쟁의 신’인 마르스(Mar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지구를 침공한 문어 괴물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이 불길한 행성에게서 생명의 고독에 대한 위안을 받아왔다. 화성은 약 24시간의 하루와 사계절을 가지고 있고, 약간의 대기가 있으며, 공전궤도면과 자전축이 이루는 각이 지구와 거의 같다. 다시 말해서 지구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 행성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1666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카시니에 의해 화성의 극지방에서 극관이 발견됐는데, 영국의 천문학자 허셜은 그것이 얼음일지 모른다는 대담한 주장을 폈다.

그렇다면 화성에도 지구처럼 생명의 바다가 잉태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 망망하고 쓸쓸한 우주의 대양에서 지독하리만치 외로운 생명의 섬 지구에 갇힌 인간들은 동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웰스의 SF소설 ‘우주전쟁’을 비롯해서 1950년대를 풍미했던 화성인의 침략을 다룬 SF 영화들과 그것으로부터 영향받은 ‘화성침공’과 같은 최근의 SF 대작에 이르기까지, 화성 생명체에 대한 애정과 공포는 한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는 1877년 화성 표면에서 40여개의 줄무늬를 관측했다. 그는 이 줄무늬를 이탈리아어로 자연적 수로를 의미하는 ‘카날리’(canali)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canal’, 즉 화성인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운하’로 둔갑해버렸다. 구한말 주한공사를 지내기도 했던 외교관 출신 과학자 퍼시벌 로웰은 화성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며 1백60개나 되는 화성의 ‘운하’를 찾아냈다.

화성에 대한 로웰의 집념은 영국의 SF소설가 H.G. 웰스가 1898년에 발표한 SF소설 ‘우주전쟁’에 의해 결실을 맺게 된다. 소설은 문어처럼 흉측하게 생긴 화성인들이 지구를 공격해서 쑥밭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에 감염돼서 전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38년 10월 30일 오손 웰스는 이 소설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해서 방송했다. 이때 화성인이 침공하는 장면이 너무 실감나게 방송된 탓에, 수백만의 미국인들은 진짜 화성인이 공격해온 것으로 착각해 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53년 미국의 조지 팰과 바이런 해스킨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우주전쟁’으로 말미암아 괴물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영화들이 대량으로 제작됐다.

종교적 색채를 띤 작품도 있다. 1913년 영국에서 제작된 후 여러 차례 영화화됐던 ‘화성에서 온 메시지’는 원래 연극으로 공연되던 작품으로, 화성인이 지구에 와서 못된 심성을 가진 사나이를 교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풍선껌 카드에서 힌트

화성인의 지구 침략을 다룬 최근작인 팀 버튼 감독의 ‘화성침공’ 원전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2년 토프스사는 55종의 ‘풍선껌 카드 세트’(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따조’처럼 풍선껌에 끼워줬던 카드의 일종)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열렬한 인기를 모았다. 이 카드에는 화성인의 지구 침략에 관한 이야기가 각 장마다 그림과 함께 등장해서 이것을 연결하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팀 버튼은 또래 세대의 강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카드의 내용을 원전으로, 초록색 피부와 대뇌가 밖으로 드러나 있는 엉성한 화성인들을 등장시켜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화성침공’이 그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화성에서 출발한 비행접시가 지구를 향한다. 미국의 대통령을 위시해 인간들은 그들에게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지구에 도착한 그들은 환영 인파를 무참히 몰살하고 일부를 납치해 간다. 그들은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횡포와 학살을 점점 거듭해 나간다. 그러다가 ‘슬림 휘트먼’의 음악을 들으면 외계인의 뇌가 터져버린다는 것을 알게 된 지구인들이 결국에는 화성인을 무찌른다는 이야기다.

30년 전 풍선껌에 들어 있던 카드처럼 조악한 세트와 단순하고 엉성한 줄거리는 팀 버튼의 놀라운 상상력과 유머러스한 기괴함을 통해 개성적인 한편의 SF영화로 탄생됐다. 그러나 문어처럼 큰 머리를 가진 화성인이나 인간에겐 아무 해가 안되는 음악이 화성인에겐 치명적인 파멸을 부른다는 결말은 웰스의 ‘우주전쟁’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런 류의 외계인 침략 영화에서 항상 궁금한 것은 왜 외계인들은 똑같은 얼굴과 신체를 가졌느냐 하는 점이다. 인간은 다같이 눈, 코, 입, 귀를 가졌지만, 얼굴 생김새가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에 비해 외계인은 모두 한결같은 얼굴과 신체를 가졌다. 제작비의 문제만으로 ‘상상력의 빈곤’에 대한 화살을 피할 순 없다.

화성생명체와의 전쟁을 다룬 영화보다 더욱 흥미로운 영화는 화성을 식민지로 점유한 인간들이 화성을 무대로 싸우는 영화들이다. 폴 베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이 그 대표적인 영화다. 2075년 제3차 세계대전 후 화성 식민지를 부당하게 다스리고 주민을 위협하는 총독으로부터 생존권을 쟁취하려는 반란군의 싸움이 주된 내용이다.

사람들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해 살기 위해서는 화성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화성에는 대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해서 산소를 만들어야 한다. 오존층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외선에 의한 돌연변이를 막기 위해 자외선 차단 유리벽으로 돔을 둘러싸야 한다. 지구에서와 같은 중력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회전하는 원통형으로 제작해 원심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식민지 건설은 가능할까

‘토탈 리콜’은 산소와 유리벽의 운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식민지 총독과 힘없는 반란군의 싸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평소 화성을 가보고 싶어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가상 기억을 심어준다는 토탈 리콜사의 광고를 보고 그 회사를 찾는다. 주인공에게 화성여행의 기억이 기계를 통해 주입되자 주인공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과거에 식민지 총독의 오른팔이었음을 확인하지만, 반란군의 편에 서서 총독 일당을 물리친다. 영화는 기억이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화성 표면은 바이킹이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그러나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지금까지 화성 탐사가 24차례나 시도됐지만, 아직 화성 땅을 밟아본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는 최단 직선거리로 2억km 정도인데, 우주선을 타고 가는 경우 비행거리는 약 5억km에 달한다. 이 거리는 우주선이 연료를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하며 화성에 도착하는 ‘호먼궤도’를 따라 비행한 거리다. 지구와 화성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궤도를 따라 공전한다. 만일 지구가 공전하는 방향으로 화성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올리면 우주선은 공전속도를 이용해 가장 적은 연료를 들이며 화성에 도착할 수 있다. 이때 우주선이 비행하는 궤도를 호먼궤도라 한다. 이 궤도를 따라 화성에 도착하려면 대략 2백6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화성을 갔다 오는데 5백20일만 걸리는 것은 아니다. 돌아올 때 호먼 궤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화성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이 무려 4백45일이나 된다. 따라서 인간이 화성에 갔다 오기 위해서는 약 3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우주여행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3년간은 우주에서 먹고 마시고 숨쉬며 체류할 수 있어야 한다.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화성의 대기는 95%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나마 대기 자체도 희박한데다 중력도 약하기 때문에 대기층을 쉽게 만들 수도 없는 형편이다. 화성의 반지름이 지구 반지름의 2분의 1 정도인데 반해 질량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중력은 지구 중력의 40%밖에 안 된다. 이렇듯 무중력·저중력 상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우주선의 방호 기술, 물·공기·식량의 재활용기술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주 식민지 시대의 막을 올릴 수 있다.

몇해 전 미국과 캐나다에서 5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당신은 우주 여행에 흥미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0%가 흥미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 중 20대 성인 남자의 비율은 85%를 웃돌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지구의 푸른 빛을 먼 발치에서 목격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만약 기술적으로 우주 식민지 시대가 도래한다면 과학은 인간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흥미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99%가 ‘우주선의 안전성’을 문제로 삼았다고 하니, 오랜 우주 여행을 위한 안전한 우주선 제작도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영화에서는 화성이 지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환경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아무도 모를 일

1976년 미항공우주국이 화성을 탐사하는 ‘바이킹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을때 한 권위있는 신문 발행인이 저명한 천문학자에게 긴급 전보를 쳤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5백단어짜리 기사를 만들어 보내달라는 요청이었다. 천문학자는 순순히 응낙하고 곧 기사를 보내왔는데, 기사에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라는 두 단어만 2백50번이나 되풀이해 쓰여 있었다고 한다.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존재하는 한 또 다른 생명의 존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붉은 행성' 화성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에게 생명의 핏기로 발그레한 모습으로 아른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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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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