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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보다 값진 물 - 동해 심층수

식수는 기본, 의약품·피부미용까지 활용

석유는 우리 생활의 기반인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발전연료로 사용된다. 또한 휘발유나 경유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돼 직접 이용된다. 현재 휘발유는 1L에 약 1천2백원, 경유는 약 8백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든 쉽게 구해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물 중에 이런 석유보다도 값진 것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환경오염이 문제되지 않았다면 거의 공짜에 가까울 물 값은 현재 천양지차다. 수돗물 값은 1t에 4백-7백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먹는 샘물인 생수는 이보다 1천-2천배 정도 비싼 1L에 7백-1천원에 이른다. 해양심층수로 만든 생수의 경우는 1L에 8천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휘발유나 경유와 비슷하거나 10배 정도 비싼 가치의 물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해양심층수를 처리하는 비용은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해양심층수의 가치는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양심층수는 생수의 원료일 뿐만 아니라 희소금속 등 귀중한 용존물질이 3.4% 정도 들어 있다. 또한 온도가 낮아 에너지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해양심층수가 석유보다 귀한 물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다는 의미다.


바닷속 수심이 깊어지면 햇빛 이 도달하지 못한다. 수심 2백 m 이상 암흑 세계에 존재하는 바닷물이 바로 심층수다.


2백m 아래의 2천년 전 보물

해양심층수란 일반적으로 태양광이 도달하지 않는 수심 2백m 이상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물을 가리킨다. 이런 물은 유기물이나 병원균 등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연중 안정된 저온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장기간 숙성되면서 해양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염류가 풍부해진 해수자원이다. 이와 같은 해양심층수의 특성은 해양생태계에서 먹이사슬에 의한 유기물과 무기물의 순환·축적과 밀접히 관련된다.

태양광이 충분히 투과하는 바다의 표층에서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조류 등이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생산한다. 이런 유기물은 먹이사슬을 통해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어류 등으로 이어진다. 표층수의 수질은 생물작용뿐 아니라 기상, 인간 활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시간적·공간적으로 변화한다.

표층 아래에는 빛이 도달하지 않는 무광층이 존재한다.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 등 표층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은 무광층으로 가라앉으면서 박테리아 등의 작용으로 산화되고 분해된다. 생물체를 구성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같은 유기물은 질소, 인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영양염 원소로 변환된다. 여기서는 광합성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들 원소가 점점 축적돼 풍부해진다.

유기물을 영양원으로 삼는 미생물은 해양심층수에 이르러서는 크게 감소한다. 사실 유기물은 심층수에 이르는 사이에 영양염 형태로 분해가 완료된다. 수심 2백m 이상의 심층으로 가라앉아 해양심층수의 특질을 가지게 되기까지 보통 보름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해양심층수는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청정하며, 수질이 일정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최근 해양심층수가 2천년 동안 숙성된 신비한 바닷물로 선전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해양심층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자.

지구규모의 해수순환은 ‘벨트 컨베이어’설로 설명된다. (그림1)
 

(그림1) 지구규모의 해수순환(벨트 컨베이어설)


그린란드의 외해에서 겨울철 냉각된 고염분의 표층수가 가라앉으면서 심층수가 형성된다. 이 심층수는 대서양을 따라 남하하면서 남극의 웨델해에서 생성된 심층수와 만난다. 이렇게 합류한 심층수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심층으로 이동하는데, 북태평양의 북부 해역에서는 상층의 따뜻한 해수와 혼합되면서 표층 근처로 부상한다.

침강으로부터 부상까지는 1천5백-2천년 정도 걸리는 것(방사성 동위원소법으로 측정 결과 약 1천6백70년이라는 보고가 있음)으로 추정된다. 부상한 해수는 표층을 통해 다시 북대서양의 북부 해역으로 되돌아간다. 심층수의 생성 및 이동 과정에 상층의 유기물이 분해돼 무기화된 영양염이 계속 축적되기 때문에 북대서양보다도 북태평양의 심층에서 영양염 농도가 높다.

에너지 위기 극복 노력으로 출발

1970년대에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세계 각국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각축을 벌였다. 이는 해양에너지의 개발과 이용에도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파도로부터 전기를 만들어내는 파력발전과 조류로부터 전기를 만드는 조력(류)발전이 관심을 모았고, 표층과 저층에 있는 해수의 온도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해양온도차 발전도 크게 진보했다.

해양온도차 발전은 태양에 의해 가열되는 따뜻한 표층 해수와 수심 수백m 이상의 심층 해수의 큰 온도차를 이용해 전기를 얻는 것이다. 따뜻한 표층해수를 이용해 끓는점이 낮은 암모니아나 프레온을 증발시키고 그 증기압에 의해 터빈 발전기를 회전시켜 발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사용된 가스는 심층 냉수로 응축시켜 재순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미국은 1979년에 정격출력 50kW급, 1993년에 2백55kW급 온도차 발전플랜트를 성공적으로 가동했다. 이런 노력은 석유가격이 폭등한 시점에서는 실용화를 목표로 활발하게 추진됐지만 석유가격이 안정화되자 경제성이 떨어져 시들해졌다. 미래를 대비한 기초연구로 전환된 까닭이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심층수를 취수하는 시설의 사후 활용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계획하게 됐다. 온도차발전뿐 아니라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농업, 수산·양식업, 가공업 등으로 적용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현재 미국의 하와이에는 온도차 발전연구의 주체였던 주립 하와이 자연에너지 연구소(NELHA)가 정부로부터 계속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NELHA는 해양심층수를 냉방, 대체에너지, 담수생산, 의약품, 수산·농업 분야 등에 활용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의약품 분야에서는 해양심층수로부터 기능성 미네랄 물질을 추출하거나 심층수에 미세조류 등 생명체를 배양해 의약용 물질을 생산하도록 연구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의 심층수 연구는 수산자원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해양과학기술센터(JAMSTEC)의 나카시마 박사는 심층수에 영양염이 풍부하다는 점을 주목해 식물성플랑크톤의 증식에 대한 기초연구를 1976년부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실용화하기 위한 아쿠아마린 계획을 제안해 1986년부터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1989년에는 해양심층수의 육상형과 해상형 이용시설이 조성됐다.

일본의 노력은 해양심층수를 수산분야에 적용해 수산자원을 조성하고 관리하기 위한 시도였다. 육상에서의 심해성·냉수성 어패류의 사육과 배양연구, 해상에서의 기초생산 증대에 대한 실증연구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런 활용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익이 당장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늦었다.

일본에서 다양한 분야로 활용을 모색하는 산학연 공동연구가 진행되면서 1995년부터 주민과 지역기업에 해양심층수가 제공됐다. 이후 상품화가 추진되면서 지역사회에 직접적인 효과가 나타나자 급속도로 취수기반이 확산됐다. 심층수가 영양이 풍부한 값진 물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생수, 혼합음료에서 두부, 김치 등 식품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해양요법(tarasotheraphy)라는 말까지 등장하면서 피부관리나 화장품으로 심층수를 직접 이용하거나 추출물을 활용한다. 현재 시장규모는 1년에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예상된다. 취수기반 조성을 위해서는 2백억-6백억원이 소요되지만 최근까지 10개소가 완료됐으며 앞으로도 매년 1-3개소가 추가로 조성될 계획이다.

동해 그릇에 담긴 고유수

우리나라 동해에도 석유보다 귀한 물, 해양 심층수 자원이 풍부한 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동해 전체 해수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다. 최근 해양학계에서는 동해를 ‘미니 대양’이라고 부르며 주목하고 있다. 해양심층수도 지구규모의 현상이 축소돼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의미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그림2)
 

(그림2) 동해의 해수순환과 심층수


바다에는 유동이 있어 인접한 바다의 유입과 유출을 통해 해수교환이 이뤄진다. 동해의 주요 유입구는 쓰시마난류가 들어오는 남측의 쓰시마 해협과 리만한류가 들어오는 북측의 타타르해협이다. 유출구는 쓰가루난류와 소야난류가 빠져나가는 쓰가루해협과 소야해협이다.

동해의 유입구와 유출구는 수심이 얕고 폭도 좁기 때문에 동해는 그릇 형상을 하고 있다. 쓰시마 난류의 두께는 2백m 이하 밖에 안되기 때문에 동해 연안에서 표층을 흐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동해의 심층수는 인접한 바다와 교환되는 양은 매우 적으며, 동해 내부에서 순환하고 있는 동해고유수라 할 수 있다.

동해고유수의 형성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생각되고 있다. 동해고유수는 주로 블라디보스토크 남동부 해역에서 형성된다. 이 해역의 육지 방향은 산맥이 끊어져 있어, 겨울철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으로부터 강한 북서계절풍이 불어 들어와 해면을 차갑게 한다.
차가워져 비중이 높아진 해수는 가라앉기 때문에 이 해역에서 아래와 위에 존재하는 물이 섞이는 연직대류가 생긴다. 해면에는 반시계 방향의 소용돌이 흐름(순환류)이 발생해 동해고유수의 상단면이 해면 부근까지 상승한다. 결국 연직대류가 더욱 일어나기 쉽고 해수는 더욱 깊은 곳까지 침강해 동해고유수를 보충한다.

동해고유수는 수온은 약 1℃ 이하고, 염분은 약 34.01‰ (퍼밀, 바닷물 1kg에 함유돼 있는 염분의 그램(g)수)이며, 용존산소는 약 5mL/L 전후다. 이런 동해고유수는 3백-7백년에 걸쳐 순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고유수는 무한정 사용해도 되는 자원일까. 해양심층수는 환경친화적인 순환재생형 해수자원이지만 순환재생의 흐름이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사용해야 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동해심층수를 5개소 이상에서 개발해 이용하는 일본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는 유입과 유출량의 차이 추정량의 7%에 해당하는 48억t/일은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한 곳에서 하루 수십만t 이상을 취수해 사용하고 배수한다면 문제가 있다. 연안환경에 대한 영향을 신중히 평가하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선행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개발과 이용을 보장할 수 없다.

한국은 다단계 이용시스템

자원 개발 여부는 그 시점에서의 경제성 및 안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개발을 통한 이익이 이용을 위한 비용보다 크지 않으면 안되며 계속적 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고품위의 자원을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저렴하게 얻는 기술의 개발이 중요하다. 또한 가치 높게 가공하고 이용하는 사회적, 산업적 기반이 중요하다.

현재 해양연구원은 해양수산부의 해양개발사업으로 ‘해양심층수의 다목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그림 3).
 

(그림3) 우리나라의 동해심층수 개발계획


육상형 시범개발 단지를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강원도 북부해역에 조성하고 있다. 이 지역은 취수거리가 짧아 현재 관점에서도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2006년부터 2010년에는 해상형 시범개발을 선정해 조성할 계획이다. 이런 실증연구를 토대로 2015년까지 7개소 이상에 육상형과 해상형 해양심층수 개발단지를 정부의 지원 하에 지자체와 민간이 개발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기술 지원을 계속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해양심층수의 이용은 개발 지역별 자연환경과 전통산업을 고려한 한국적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종합자원을 각기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자원적 특성을 단계적으로 고려해 이용하는 다단계 이용시스템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해양심층수를 냉방, 냉장 등에 활용한 후 적정 수온이 된 해수를 양식에 활용하고, 이후 연안에 방류해 연안 해조류 목장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해양심층수의 다단계 이용시스템은 이용효율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연안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동해에 존재하는 석유보다 귀한 해수자원 해양심층수는 식수 확보와 수산자원 조성관리 등을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또한 식품과 약품, 관광 등의 산업적 분야에서도 활용될 것이다. 종합자원으로 다목적 개발이 추진되면서 해양심층수가 우리 실생활에 다가오고 있다.

200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현주 해양심층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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