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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 선수가 초반부터 빠르게 치고 나오는가 싶더니 다른 선수들과 10m 이상의 여유 있는 격차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경기 뒤 우승 세리모니를 하는 세메냐를 보며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남자같이 단단한 상체 근육, 크고 선이 굵은 얼굴, 중저음의 목소리, 수염이 난 듯 거뭇한 턱. 세메냐의 겉모습은 여자라기보다는 남자에 더 가까웠다.

결국 그녀는 뛰어난 운동 실력과 특이한 외모 때문에 10년 전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성판별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 그녀는 남성의 생식샘을 가진 불완전한 여성임이 밝혀졌다. 그녀에게 정상적인 여성이라면 있어야 할 난소와 자궁 대신, 남성의 생식샘인 고환이 발견됐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는 일반 여성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았다.

그녀가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세메냐는 당당히 성판별 검사에 응했고, 계속해서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봐 그녀는 검사 전까지 자신이 불완전한 여성임을 몰랐을 확률이 높다) 그녀의 내부 생식기는 모두 남성의 특징을 띠었다. 과연 그녀의 신체는 의학적으로 어떤 상태인 것일까. 혹 남성성을 지닌 덕분에 그와 같이 뛰어난 운동실력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남성 고환에 여성 외부 생식기?!

보도된 대로 그녀의 염색체가 남성형인 46XY이고, 양측에 고환이 있는 대신 자궁과 난소가 없다면 그녀는‘남성가성반음양(male pseudohermaphroditism)’의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가성반음양이란 Y염색체의 영향으로 남성의 생식샘인 고환이 만들어졌으나 이후 생식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상이 생겨 여성의 생식기가 발달한 경우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세메냐의 상태를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모두 갖고 있는‘양성자(兩性者)’라고 표현했으나 엄밀히 얘기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메냐의 경우는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성분화는 3단계에 걸쳐 일어난다. 첫째, 염색체(X 또는 Y)가 결정된다. 둘째, 이 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자에 따라 남성의 생식샘인 고환 또는 여성의 생식샘인 난소가 만들어진다. 셋째, 생식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따라 내부와 외부의 생식기관이 발달한다.

특이한 점은 Y염색체 안에 있는 유전자와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하면 남성으로 분화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여성으로 분화한다는 점이다. 남성의 생식기관은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뮐러관억제인자와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이 두 물질이 없으면 생식기는 자동으로 여성화가 된다. 뮐러관억제인자는 자궁과 자궁관 등 여성 내부 생식기관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물질이고, 고환에서 나온 테스토스테론은 부고환과 정관 등 남성의 생식기관을 만드는 호르몬이다. 임신 5주까지 태아는 염색체는 결정되나 생식샘은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므로 이 과정에서 이 호르몬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메냐처럼 모호한 성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세메냐는 고환까지는 만들어졌으나 남성호르몬이 충분하지 작용하지 못해 남성화가 완성되지 못한 경우로 보인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았거나,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정상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메냐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으므로 수용체에 결함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수용체가 차단된 정도에 따라 외부 성기의 모양이 결정된다. 완전 차단되면 완전한 여성의 생식기를, 부분적으로 차단되면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가 합쳐진 모호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유전적으로는 정상적인 난소를 가진 여성이지만 생식기가 남성화되는 경우도 있다(여성가성반음양). 그 이유는 태아가 자궁 속에 있을 때 남성호르몬이 증가된 환경에 노출됐기 때문. 태반을 통해 남성호르몬이 들어가거나, 임신부가 남성호르몬을 생성하는 난소 종양을 가졌거나, 임신 중 남성호르몬제제를 복용한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한다.

종종 정상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터너증후군과 비교되는데, 그 발생 원인은 다르다. 터너증후군은 염색체형이 45XO로 정상 X염색체가 1개 모자라 태아기에 난소가 생성됐으나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터너증후군은 전형적으로 작은 키, 짧고 넓은 목, 방패형 가슴에 넓은 유두 간격 등을 보인다. 대부분 무월경 증상을 보이며 사춘기 징후가 나타나지 않아 터너증후군은 늦게 발견된다. 외부 생식기관이 모호하지 않기 때문에 소아기에 터너증후군을 발견하기 힘들다.

생후 18개월 전에 치료해야

흔히 성분화 이상을 겪은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발견된다. 이런 환아의 외부 생식기는 남자의 것인지 여자의 것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하지만 이때 의료진이 빨리 성을 결정해주지 않으면 가족들은 당황하게 된다. 누구나 아기가 출생하면“아들이냐 딸이냐”를 묻게 되는데, 의료진이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다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성분화 이상은 자라는 과정에서 알게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이차성징이 나타나지 않거나, 불임을 진단받을 때이다. 얼마 전 필자의 병원에는 28세 여성이 방문했는데, 그녀는 키가 크고 외모도 여성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생리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랫배 양쪽에는 만지면 잡히는 덩어리가 있었다. 검사결과 놀랍게도 아랫배에서 만져진 것은 고환이었다. 또 염색체는 46XY로 나타났다. 그는 외형적으로 완전히 여성이지만 염색체가 46XY인 남성이었던 것이다.

성분화 이상을 진단할 때는 먼저 생식샘과 음경, 낭의 발육 정도를 살피는 신체검사부터 한다. 음낭이 비대칭적이면 주머니가 크고 색깔이 진한 쪽에 고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면 염색체 검사와 생화학 및 내분비학 검사가 이뤄진다.

골반 내에 자궁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하기도 한다. 사실 성분화 이상, 즉 비정상적인 성분화 발달은 드물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병은 아니다. 손가락 성장이 잘못되면 육손이 되듯이 성분화 이상은 생식기 계통의 발달이 미완성돼 발생하는 병이다. 따라서다른 병처럼 치료하면 충분히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환자의 성을 결정할 때는 여러 전문의와 상의해 이상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이는 성을 결정하는 인자 중 가장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성 정체성은 생후 18개월 전후에 굳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아무리 늦어도 30개월까지는 확고하게 형성된다. 따라서 이 시기 이후에 그동안 지켜오던 성을 바꾼다는 것은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므로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

신생아 때 성분화 이상의 증상을 보이면 음경의 크기로 남성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한다. 남성으로서 살아가기에 적절한 크기의 음경으로 자랄 수 있을지 측정한다. 남성의 외부 생식기를 가진 여성가성반음양의 경우라면 잠재적인 임신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여성으로 키워야 한다. 하지만 심하게 남성화된 음경을 가져 남아로 키워왔다면 성결정에 중요한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계속 남아로 키우도록 한다.

만약 46XY형의 염색체를 가졌는데, 생식샘(고환)에서 발달장애가 일어났다면 남아 있는 생식샘이 악성종양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제거하고 여성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메냐의 경우처럼 음낭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수용체 결함이 있다면 고환을 음낭으로 내려서 남성으로 성을 결정할 수도 있다. 성을 결정한 뒤에는 성과 일치하지 않는 생식샘과 내부생식기관을 제거하고, 성에 맞게 외부 생식기관을 성형한다.



세메냐, 여자 선수로 자격 없나

그렇다면 세메냐는 여자로 봐야 할까, 남자로 봐야 할까. 과연 그녀는 여자선수로 뛸 자격이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회적 인식, 문화적인 요인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 결정해야겠지만 의학적으로만 대답하면 여성으로 대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여자냐 남자냐 하는 것은 염색체가 XX냐, XY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난소를 가졌냐, 고환을 가졌냐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종적인 외음부 신체상태가 중요한 결정 요인이다. 객관적으로 완전히 여성으로 형성돼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여성선수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근육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남성 호르몬 수용체가 완전히 차단된 경우라면 발달한 근육이 테스토스테론 덕분이라고 보기 힘들다. 또 성분화 이상 환자의 대부분은 호르몬에 의한 영향과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뼈가 원활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때문에 환자의 대부분은 성인이 돼도 키가 작다. 일부에선 세메냐가 남성성을 가졌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스포츠를 잘하기 위한 심폐기능 등이 모두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만큼,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김건석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전임의 겸 울산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아 비뇨기질환을 전문 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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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건석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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