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엔 매우 낯선 것들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가 쓰레기 분리수거다. 플라스틱, 비닐, 종이, 음식물 등을 가정에서 철저히 분리해 내놓는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쓰레기 분리수거가 정착화된 나라는 손에 꼽는다. 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은 일부 주에서만 느슨하게 시행하고 있고, 중국도 2016년에야 도입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분리수거의 가장 큰 목적은 소각할 쓰레기와 재활용할 물품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분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양이 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흔히 음식물 쓰레기는 동물의 사료나 농경지 퇴비로 재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환경자원재생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사료가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전파하는 매개원으로 알려지면서 2019년부터 사료로 재활용할 수 없게 됐다”며 “현재 사료 생산시설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적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퇴비로 재활용하기도 쉽지 않다. 음식물 속 염분이 토양을 딱딱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태우는 방법도 있지만 폐기물관리법에 음식물 쓰레기는 태울 수 없다고 정해져 있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새로운 재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무산소 열분해로 오염 물질 저감… 발열량은 석탄급
김 선임연구위원은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재탄생시키는 방법에 눈을 돌렸다. 음식물 쓰레기 소각이 금지돼 있어 이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도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관련 기술을 개발해 두면 향후 법이 바뀌었을 때 환경과 에너지 두 분야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재활용할 때 관건은 두 가지다. 먼저 오염 물질 배출이 적어야 한다. 폐지, 농업폐기물, 폐목재 등을 연료로 활용해 큰 주목을 받은 바이오 고형연료제품(SRF)의 경우 최근 미세먼지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발전 중단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만들 경우에 비슷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음식물 쓰레기를 연료로 재활용하려는 시도가 대부분 실패한 이유도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팀은 음식물 쓰레기를 탄소가 농축된 고열량의 숯 덩어리(bio-char)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에 걸쳐 오염 물질을 빼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우선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열분해해 고분자 물질로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와 산소가 만나 연소하면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분을 제거했다. 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음식물 쓰레기 속에 있는 염분이 모세관 현상에 의해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빠져나와 결정화됐다. 결정화된 염분은 물이나 구연산으로 씻어 제거할 수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염분은 발전소 시설을 부식시키는 원인물질”이라며 “기존에 전기를 이용해 염분을 제거하는 방법은 폐수도 많이 발생하고 염분 함량도 3~5%까지만 낮출 수 있었지만, 이번에 개발한 방식을 이용하면 폐수 발생량을 줄일 뿐만 아니라 염분 함량도 0.2%까지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유발물질 발생도 크게 줄였다. 다른 바이오 고형연료에 비해 황 함유량은 0.2%, 나트륨과 칼륨 등은 50%까지 줄였다. 김 선임연구위원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정윤아 전임연구원은 “정확한 미세먼지 배출량 측정을 위해 부산대 청정화력발전연구센터와 함께 추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음식물 쓰레기 연료 개발 시 고려할 두 번째 조건은 발열량이다. 발열량은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열량으로, 실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화석연료에 준하는 발열량이 나와야 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이 개발한 음식물 쓰레기 고형연료는 이 기준을 충족했다. 1kg당 6200~6600kcal의 열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공식 인증받았다.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무연탄의 발열량이 1kg에 4500kcal, 유연탄이 5000~7000kcal인 것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연구결과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지난해 우수연구성과로 선정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여했다.
이번 결과는 5년으로 계획된 연구의 첫해에 일궈낸 성과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추가 연구를 통해 연료로서의 성능을 개선할 계획이다. 하나는 고형 연료로 만드는 과정에 투입되는 전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음식물 쓰레기를 열분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력이 투입되는데 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 전임연구원은 “열분해하는 시간을 줄이고, 또 열분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가스를 다시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태울 수 없다는 규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음식물 쓰레기를 소각할 수 없다는 규제가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바이오 고형연료도 발전소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발전소에서는 이 규제만 해결되면 당장이라도 정식 사용하고 싶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500MW(메가와트) 이상 규모의 대형발전소를 대상으로 전체 발전량의 일부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형발전소에서는 이 규정을 이행하기 위해 외국에서 값싼 목재펠릿을 수입해 석탄과 혼합해 연소하고 있다. 국내 5개 발전사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수입한 목재펠릿만 7625억 원어치에 이른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음식물 쓰레기 고형연료가 당장 석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어도 목재펠릿은 대체할 수 있다”며 “현재 각 부처와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활발히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