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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경칩날을 아는 비결

3월6일은 경칩이다. 흔히 땅 속에 숨은 벌레가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달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2월 4일에 입춘, 19일에 우수라 쓰여 있고, 3월 6일에 경칩, 21일에 춘분이라 표시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왔던 절기인데, 실상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표시하는 특별한 날들이다. 절기는 1년에 모두 24개가 있는데, 약 15, 16일 간격으로 하나씩 배치되는 셈이다.
 

경칩


봄기운에 놀라 깬다는 날

조상들이 옛날부터 써 온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절기가 음력에 따라 매겨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절기는 본래 양력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다.

양력이란 태양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는 말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데, 이때 지구가 공전궤도의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계절이 달라진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태양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계절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움직이면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때를 동지, 그 반대편을 하지라 정했다. 그 밖의 다른 절기들은 태양의 궤도를 나누어 차례로 배치했다.

새알죽이라 불리는 동지죽을 먹는 날은 늘 12월 21일이거나 22일이고,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는 6월 21일, 혹은 22일이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이 날짜는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양력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에 따라 하루쯤 차이가 나는 것은 태양운동이 약간 불규칙하고, 정확한 지점을 특정 날짜에 배당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입춘, 춘분과 함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봄 절기는 경칩일 것이다. 한자로는 놀랄 경(驚)움츠릴 칩(蟄)인데, 뜻 그대로 잔뜩 움츠린 채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봄기운에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다. 절기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이때쯤 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동물들이 많았다는 알 수 있다.

날씨에 속은 '미친 개나리'

동면은 신체가 호르몬의 작용에 따라 호흡과 맥박수를 줄이고 에너지의 발산을 최대한 억제해서 대사적 적응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 동면 유도체(HIT)인데, 이를 원숭이 같이 겨울잠을 자지 않는 동물에 주입하면 동면에 빠진다.

근래 미국의 의사들은 장기 이식수술에 이 동면유도물질을 이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식할 장기에 이 물질을 주입해서 보관하면 장기를 훨씬 건강한 상태로 오래 보관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동물의 신체에서 먹이로 얻는 에너지량과 활동으로 소모하는 에너지량의 균형이 깨질 것을 알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은 체온을 낮추고 대사를 조절해서 동면이 시작된다.

그러나 신체 내에서 동면 유도물질이 기능하게 하는 외부 환경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 온도와 습도, 먹이, 일조시간 등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이 동면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생리적, 물리적인 적응을 할 수 있기에 따로 동면기술을 진화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은 환경에 자유자재로 적응하지 못하므로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어려운 시기를 넘기려 하는 것이다.

동면은 기온에 가장 많이 영향받는 것 같지만, 이상기온이 있듯이 기온은 변덕이 심하다. 흔히 '미친 개나리'라고 해서 제철도 아닌데도 날씨가 조금 따뜻하다고 꽃을 피웠다가 날씨가 추워져 얼어죽은 일이 종종 있다.

이들을 보면 온도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진나라 때의 '여씨춘추'에는 '겨울이 되었는데도 춥지 않아 움츠렸던 벌레들이 다시 나왔다'는 서술이 있다. 동물들도 이상기온에 속아 겨울잠을 깨는 일이 예로부터 관찰됐던 것이다.

정확한 스케줄 관리

적당한 시기가 되지 않았는데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동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체를 특정한 상태로 만들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 동면에서 깨어나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매우 많다. 박쥐의 경우 동면하는 동안 이를 방해해서 깨우면 다시 동면에 들어가더라도 대다수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잠시나마 동면에서 깨어나면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날씨의 변덕에 구애를 받지 않고 조금더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동면에 들어가고 깨어날 필요가 있다. 일부 동물들은 계절변화에 맞추어진 생체시계나, 일광주기를 동면의 신호로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람쥐를 컴컴한 방안에 가두고 온도를 3℃ 정도로 유지해 주었을 때 1년을 주기로 겨울잠을 되풀이했다.

일광주기는 특히 곤충들에게 동면의 가장 중요한 신호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광주기는 지구의 운동에 따른 규칙적인 계절변화의 지표일뿐 아니라 온도, 습도, 먹이의 양 등이 모두 이에 관련돼 있다.

어쩌다 이상기온이 생긴다 해도 이에 속지 않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일광주기를 겨울잠의 신호로 삼는 것은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올해 경칩날은 낮의 길이가 11시간 33분이다. 매년 경칩날은 낮의 길이가 11간 30분 근처다. 동물들은 종일 볕이 드는 시간을 감지해서 새 생활의 약속 날짜인 경칩날을 아는 것이다.

IMF 시대의 겨울잠 지혜

사람들은 동물의 겨울잠을 조용한 휴식 정도로 여기는 일이 많다. 처소에 틀어박혀 외부활동을 전혀 안할 때 곤충들의 겨울잠을 본떠 '칩거'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동물들의 겨울잠은 휴식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이다.

개구리, 뱀 등은 겨울동안 얼지 않을 곳을 찾아 몸을 웅크린 채 인내하며 봄을 기다린다. 만일 기온이 떨어져 0℃ 이하로 내려가면 여지없이 얼어죽고 마는 위험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곰은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먹이가 충분하고 기온이 따뜻하면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동물에게 겨울잠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혹독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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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전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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