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가장 성공적이고 대중적인 세티(SETI,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전 세계 누리꾼들이 자신의 개인용 컴퓨터(PC)에서 남는 전산자원을 원격으로 제공해 관측자료 분석에 직접 참여하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엔 한국 사람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세티 프로젝트에 천문학자를 비롯한 한국 과학계 인사들이 참여하거나 기여한 일은 거의 없었다. 1980년 중반, 국제천문연맹(IAF) 산하 생물우주학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조경철 박사가 세티 학술회의에 참여하면서 세계 과학자들과 교류했던 정도가 역사적 시발점이었다. 조 박사는 국내에 ‘아폴로 박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 뒤에도 간헐적으로 개인 차원에서 학술회의에 참여하는 일이 있었을 뿐 국내 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세티 프로젝트에 가담한 적은 없었다.
필자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우주에 관한 20부작 3차원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한국교육방송(EBS)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국과 호주의 세티 관련 기관들을 모두 방문하고 관련 학회에 참여했으며 대표적인 세티 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같은 취재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서 세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한 기초적인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지원을 받은 연세대 연구팀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되는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검출할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바로 이 작업이 한국에서 수행된 첫 번째 과학적인 세티 연구라 할 수 있다.
한국천문학회 산하에도 최근 행성과학분과가 결성돼 우주생물학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본격적인 연구와 교육을 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세티를 향한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고 있는 한국 과학계의 현황과 미래 전망을 짚어본다.
미국 세티연구소도 주목
올해는 천문학에 있어 특별한 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한 지 400년 되는 해를 기념해 IAF가 세계 천문의 해를 선포했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다.
세티에도 올해는 특별하다. 과학적 세티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논문이 국제 학술지‘네이처’에 발표된 지 50년이 됐고, 세티 연구의 본산인 세티 연구소가 창립된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게다가 혹시 있을지 모를 외계인에게 지구문명의 요점을 날려 보낸 ‘아레시보 메시지’가 구상성단 ‘M13’으로 향한 지 35년이 되는 해이다. 무엇보다 세티앳홈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티 연구 분야에서 가장 특별한 올해를 보낸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역시 한국 과학자들이다. 우선 한국천문연구원의 새로운 전파망원경 시스템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 (Korean VLBI Network, KVN)에 소속된 전파망원경 3대가 시험 관측에 돌입하면서 본격 가동을 하기 위한 진용을 갖췄다. 또 KISTI는 세티앳홈처럼 그리드 컴퓨팅이라는 기술을 통해 PC로 세티 관련 자료를 분석하는 ‘코리아앳홈(Korea@Home)’ 플랫폼을 적극 가동하기 위한 방침도 세웠다. KISTI는 이미 2002년부터 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 연구팀이 개발해온 인공적인 전파신호 검출 프로그램도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KVN의 전파관측자료를 재활용해서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코리아앳홈 플랫폼을 통해서 배포하고, 그리드 컴퓨팅 시스템을 활용해 분석하는 방안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0월 중순 대전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도 국내 세티 과학자들에게는 자극제가 됐다.이 행사에서 진행된 세티 관련 심포지엄은 저명한 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그들의 지적 자원을 풀어놓는 계기가 됐다. 마침 세티 프로젝트는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의 중점 사업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조건들은 한국형 외계 지적생명체 탐색 계획, 즉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한국 과학자들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적극 활용해 올해부터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를 본격 시작하기 위한 기본 전략을 수립했다.
그 전략의 핵심으로 한국 과학자들이 사전에 천명했던 것이 있다. 바로 독자적인 알고리즘과 코리아앳홈 플랫폼을 활용할 것, 한국의 새로운 전파망원경에서 얻은 관측 자료를 재활용할 것, 과학대중화와 교육에 적극 기여할 것, 국제협력을 통한 도약을 이룰 것이 그것이다.
이 계획은 지난해 가을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세티 심포지엄에서 발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세티 연구소 질 타터 소장은 이 심포지엄 이후 열린 세티 학술회의에 발표자로 나설 때마다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한국 과학자들이 내놓은 ‘선언’은 현재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지난 6월 17일 한국천문연구원, KISTI,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세티 연구에 불을 붙이기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KVN 관측자료를 세티 연구에 재활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고, KISTI는 코리아앳홈 플랫폼을 활용해서 이 자료를 분배·배포하며,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세티 홍보와 교육에 기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위원회도 구성돼 명예위원장에 조경철 박사가 추대됐다.
서울, 울산, 제주 21m 망원경으로 초대형 망원경 효과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세티 프로젝트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몇 대의 망원경을 지역적으로 띄엄띄엄 떨어뜨려 운영하는 방법을 쓴다. 서울 연세대, 울산 울산대, 제주 탐라대 교내에 각각 설치된 지름 21m짜리 KVN 전파망원경 3대가 그 주인공이다. 이 전파망원경은 주로 활성은하의 중심부 활동이나 나이가 많은 별의 표면에서 나오는 전파신호를 세밀하게 관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각 전파망원경으로 동시에 관측한 자료를 한데 모아 분석하는 ‘상관 작업’을 거치면 자료는 하나로 거듭난다. 이 작업을 마치면 전파망원경 3대가 지역적으로 서로 떨어진 거리만 한 지름의 초대형 망원경이 구축된 효과를 낼 수 있다. 지름이 수백km에 이르는 전파망원경의 분해능이 구현되는 셈이다. 분해능이란 망원경에 맺힌 상이 명확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정도다.
각 전파망원경으로 수집된 원자료는 1초당 1GB(기가바이트, 1GB=109B)) 정도씩 기록되는데, 한 번 관측할 때마다 쌓이는 자료의 양이 각 전파망원경당 10TB(테라바이트, 1TB=1012B)를 쉽게 넘어설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상관 작업이 끝나면 각각의 KVN 관측 원자료는 일정 기간 보관한 뒤 폐기 처분한다.
그 이유에는 막대한 양의 자료를 계속 보관할 저장장치를 유지할 수 없는 사정도 한몫한다.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에서는 이렇게 폐기 처분되는 KVN의 관측자료를 확보해서 재활용하는 전략을 통해 기존 KVN 과학 관측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가운데 연구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KVN 시스템이 갖는 특징인 관측 자료의 고속샘플링, 즉 1초에 10억 회 정도 자료를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서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전파신호 현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KVN의 원 관측자료는 4MB(메가바이트, 1MB=106B) 정도의 작업단위로 나뉘어 코리아앳홈 사용자들에게 분배된다. 코리아앳홈 플랫폼 사용자들이 보유한 PC의 여유 공간을 활용해서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그 결과는 코리아앳홈 서버에 보고된다.
주기 짧은 인공전파 찾는다
세티 코리아의 특징은 또 있다. 세티앳홈과 같은 기존 세티 프로젝트에서는 전파의 주파수 채널을 아주 세밀하게 나눠 전파신호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천체에서 오는 자연적인 전파신호와 구별되는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찾는 작업을 주로 했다.
하지만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는 100만 분의 1초부터 0.1초 사이의 지속시간을 유지하는, 아주 짧은 전파신호를 찾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 주기가 가장 짧은 전파신호를 내는 펄서가 0.001초 정도의 주기를 보이므로 이보다 짧은 시간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검출해 보자는 뜻이다. 이러한 짧은 시간주기 영역은 아직 체계적으로 살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이 때문에 인공적인 전파신호뿐만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천체의 탐색에도 이 방법이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티 코리아의 또 다른 특징은 3대의 전파망원경에서 관측한 자료를 같이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확인 관측이 수행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전파신호의 검출 여부를 자체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다. KVN 시스템은 22·43·86·129GHz(기가헤르츠, 1GHz=109Hz) 주파수 대역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시스템이다. 기존의 세티 관측이 주로 중성수소 영역인 1.42GHz 대역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지금까지 탐색하지 않았던 주파수 영역을 살펴보는 의의가 있다.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도록 구축된 인프라는 검출된 전파신호의 물리적 특성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세티 코리아 ‘이륙’
지난 10월 13일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한국 최초의 세티 워크숍이 열렸다. 그 다음날에는 국제우주대회 제38차 세티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여기에 참가한 세티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세티 코리아 외국인자문위원회가 구성됐다. 10월 31일에 열릴 대한민국 별 축제 행사에서는 세티 코리아 선포식이 진행된다.
이날 코리아앳홈 플랫폼에서 실행될 KVN 재활용 관측자료의 처리 과정을 시각화한 프로그램이 공개되고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세티 코리아 홈페이지 코너가 개설될 예정이다. 본격적인 비상을 앞둔 세티 코리아 프로젝트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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