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깜빡일 때 따갑지 않은 이유, 유리 위에서 스케이트를 못타는 이유, 자동차 페인트가 차량부식을 방지하는 이유, 피부특성에 따라 화장품이 달라야 하는 이유, 이 모든 것이 계면현상과 관계있다.
현대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재료공학의 눈부신 발전이 오늘날 풍요한 물질문명의 원동력이 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물질(고체 액체 기체)의 각종 특성을 다루는 재료과학(materials sciences)의 발전에 표면공학 또는 계면공학(界面工學, surface or interfacial sciences & engineering)이 기여해온 바 또한 지대하다.
각종 산업에 사용되는 재료들의 대부분은 고체나 액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의 내부에 있는 원자들은 전후 좌우 상하에 모두 동일한 원자들을 갖고 있으나 표면에 있는 원자들은 전후 좌우 및 하 방향에만 이웃 원자들이 있고 상 방향에는 이웃원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들 표면 원자들은 근본적으로 내부 원자들과 여러가지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계면공학은 이와 같은 표면원자나 표면분자들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물체중에는 기체도 있으며, 또한 절대 진공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고체나 액체의 표면 뿐만 아니라 기체도 포함시켜 이들 세가지 형태의 계면에서 일어나는 물리 화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을 보편적으로 계면공학이라 일컫는다.
물체의 표면에서 발생하는 각종 계면특성의 예로는 물리적 특성(표면강도 경도) 광학적 특성(색 굴절률 편광률 복굴절) 열특성(표면열전도성 팽창률) 자기특성(자기모멘트자화율) 전기특성(표면전기전도성 반도체특성 압전기성 초전기성) 결정특성(결정성장률 용해율) 표면장력(표면자유에너지) 표면확산성 표면취부성 표면전기화학적 특성 표면 취수성(접촉각 소수성 친수성) 그리고 정전기 표면전하특성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각종 계면특성들은 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분자 구조상 해당 물체의 내부 특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 특징이다.
유리 위에서 스케이트 못타는 이유
각종 신소재의 응용이 오늘날 첨단기술 산업을 이끌어 왔음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연구개발만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각 산업별로 주요한 계면공학 응용분야를 살펴보면 전자 통신 컴퓨터산업 같은 반도체 응용산업(신소재개발 표면처리) 철강산업(합금 제품의 각종 표면처리) 자동차산업(정전기도장, 부식방지, 초고자성체를 이용한 소형모터 또는 발전기개발, 그리고 알루미늄 세라믹 플라스틱 등 대체재료개발) 조선 및 중공업(신재료개발, 효과적 용접, 부식방지) 섬유산업(신화학섬유개발, 염색 등 섬유사의 각종 표면처리) 화학공업(유기 무기 화공재료생산, 특수염료 및 페인트, 특수세척제개발) 정유공업(정유촉매제, 특수내열윤활유 등 개발) 생명공학(표면특성을 이용한 유전자 분리) 제약산업(제약원료정제 배합) 인체의료기구산업(인체에 무해한 신소재 개발) 환경공해처리산업(미립자처리 산업 폐기물처리) 농업(토양에 비료와 수분의 흡 수, 농약 흡착) 임업(살충제살포, 임산물 방부처리) 광업(광물탐사 선광 제련 및 정련)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련되어 있어 계면공학의 범용성을 실증하고 있다.
계면공학이라 하면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계면현상들을 이용하여 살고 있다.
우리 몸안에서 일어나는 몇가지 계면현상의 예를 들어보면, 눈을 깜박일 때마다 우리 몸 안에서 생산되는 계면활성제(surfactant)가 얇은 수막으로 씻어주고 보호해 준다. 또 우리의 생명을 이어주는 호흡작용을 담당한 허파꽈리 벽면의 건조를 막아주는 특수한 계면활성제, 우리 신체의 여러가지 세포막을 통하여 영양분과 산소를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신진대사 등이 모두 우리 생명활동과 직결되어 있는 계면현상들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계면현상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지난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스케이팅쇼트트랙 경기에서 영광의 금메달을 땄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스케이팅 선수들이 그렇게 날렵하게 빙판 위를 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몸의 하중으로 인한 압력으로 얼음이 녹아, 얼음과 스케이트 날 사이에 얇은 물의 막이 생겨서 미끄럼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계면현상이 없는 유리 위에서는 아무리 그 면이 '유리알 같이' 고울지라도 스케이팅은 할 수 없다.
자동차와 계면공학
눈을 돌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문명의 이기가 돼버린 자동차에 관련된 몇가지 계면 현상들을 살펴보자.
우선 가슴설레며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를 살 때 중요한 조건의 하나로 꼽는 것이 색상이다. 이와 같은 고운 색상을 내는 데 사용되는 것이 페인트인데 페인트로 도장하는 또 다른 목적은 자동차 차체의 표면부식을 방지하는 것이다.
차체의 부식은 겨울철의 대부분을 제설작업의 일환으로 염화칼슘을 살포하는 캐나다나 북구같은 추운 나라에서는 매우 심각한 사항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차체 전체를 특수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강판으로 제조하기도 한다.
부식방지를 요하는 것은 비단 자동차 차체만이 아니다. 요즘 우리들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지하철선로 및 송배전시설, 선박 비행기 같은 대형 운송기관, 철도 교량 건물 같은 대형철제구조물 등의 부식은 직접 경제적 손실은 물론 우리 안전에도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이다.
자동차를 도색하는 기술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재래식 습식분무 도장시 휘발성 유기용제로 인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를 위하여 개발된 건식 정전기분말 도장 방법은 계면활성을 이용한 좋은 예다.
최근에는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자동차를 가능한 한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동차 경량화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가지 신소재 대체물질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경량화 재료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각종 플라스틱으로 이들은 대개 그 용도에 따라 여러가지 재료들을 섞어쓰는 복합 플라스틱들이다. 복합 플라스틱 물질의 각종 특성은 바로 여기에 사용되는 각종 원자재간의 계면특성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마그네슘 휠커버같은 부품들은 무전해 도금 등 여러가지의 표면처리를 하지 않고는 표면산화가 심하여 사용할 수가 없다.
차체 경량화를 위하여 미국 GM 자동차회사는 보통보다 약 20배의 강도를 갖고 있는 희토류 초강자석을 이용하여 발전기와 시동 모터를 소형화했다. 이와 같은 희토류 초강자석 소재개발에는 계면공학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에는 피스톤이나 각종 베어링같은 접촉 마찰부문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간의 마찰을 적게 해주는 윤활유도 계면현상을 이용한 좋은 예다. 최근에는 윤활유에 고체상태의 흑연 또는 몰리브덴 분말을 섞어 이들을 피스톤 내부의 훼손된 곳에 붙여서 윤활효율을 높이는 특수 윤활유도 개발되어 사용하고 있다. 흑연이나 새로 개발된 산화보론 등은 계면결정구조상 윤활성이 커서 고온 고압하의 특수 윤활제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자동차 유리창 세척용 부동액과 라디에이터용 부동액 등에 여러가지 계면활성제를 첨가하여 그 효능을 높이기도 한다.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대기공해를 줄이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배기촉매청정기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도 1988년 이후에 생산된 차에는 모두 이와 같은 배기청정기가 부착되어 연료의 완전연소를 도와준다. 이들 청정기내의 촉매반응이 바로 계면현상일 뿐 아니라, 촉매인 규산화물 표면에 백금이나 파라디움 같은 촉매제를 입히는 작업도 계면반응이다. 아울러 폐차시 이들 배기촉매청정기에서 백금이나 파라디움같은 귀금속을 회수하는 작업도 계면현상을 이용해야 한다. 이렇게 자동차 하나만을 놓고 생각해 보더라도 각종 계면현상을 응용하는 부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매끄러운 촉감을 주는 활석
많은 여인들이 매일 정성들여 얼굴을 곱게 단장할 때 사용하는 여러가지 화장품을 생각해보자.
우선 개인의 피부특성에 따라 적합한 화장품이 각각 다른 것이 바로 계면현상의 결과다. 대부분의 크림성 화장품의 기본 제조공정은 물에 녹지 않는 각종 유지성분을 콜로이드 상태로 오랫동안 있도록 처리하는 것으로서 이때 사용되는 여러가지 계면 활성제가 물과 기름의 분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도 크림이나 파우더에는 여러가지 고체 첨가제를 사용하는데, 이때 많이 사용되는 활석은 그 표면 결정특성상 매우 매끄러운 촉감을 준다. 이 또한 결정계면현상의 하나다.
요즘 제약업계에서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지속성 투약효과 약품의 개발은 지속성 비료의 개발과 함께 동일한 계면현상을 이용하여 흡수된 약품이나 비료가 천천히 녹아 나오도록 하는 것. 여러가지 제약 재료들의 혼합 제환 당의입히기 같은 표면처리 공정에도 여러가지 계면현상들이 필수적으로 응용된다.
가정에서 늘 사용하는 각종 비누도 이와 같은 계면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비누에 들어 있는 각종 계면활성제들이 빨래나 몸에 묻어 있는 유지성 물질을 녹여 깨끗하게 해주고, 그 외의 고체상태 물질들은 세척시 발생하는 공기방울과 물간의 접촉작용에 의하여 2차적으로 제거된다. 경수에 빨래가 잘 안되는 현상은 바로 비누중의 계면활성제들이 물속의 칼슘이온과 먼저 작용하여 모두 소모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대기오염을 줄이는 일, 혼탁한 상수원을 처리하여 깨끗한 음료수를 공급하는 일, 가정용 폐수와 각종 산업 폐수를 처리하여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하는 일, 각종 산업 쓰레기를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소각 처리하는 일 등이 모두 계면공학을 응용하고 있다. 특히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연료유의 원천탈황(유황성분을 연료를 태우기 전에 미리 제거하는 것)을 적극 실시하고 있는 추세다. 석탄에 관해서도 종전의 연소 후 배연탈황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연소 전 원천 탈황을 적극 장려함이 바람직한 일이다.
반도체 표면처리에도 이용
섬유산업에 관련된 계면공학적 현상들을 살펴보자. 요즘 한창 개발되고 있는 고부가 섬유상품의 하나인 자외선차단섬유는 종래의 섬유에 여러가지 세라믹 재료를 혼합하여, 성층권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자외선 과다 흡수를 방지하여 피부암의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이 신섬유의 자외선 차단 효과는 섬유소와 세라믹 재료간의 계면특성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또 다른 고부가 섬유의 하나인 극미세사의 고압방출도 방사기와 섬유재간의 계면현상으로 가능하다. 옷감의 염색 및 탈색, 방수처리 등 여러가지 표면처리도 모두 계면현상을 이용하는 공정들이다.
현대 전자산업의 총아인 고집적 회로, 고화질 액정화면, 초고성능 광자기 기억장치 등의 개발은 그 기본 원리에서부터 이들의 생산 공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면현상을 이용한 것들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계면현상의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신제품 개발이 가능하게 됨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이 외에도 우리가 즐겨 쓰는 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 등에 사용되는 각종 신소재들은 플라스틱에 강력한 탄소섬유를 섞은 복합재료로 이들 각 소재간의 계면현상이 특성을 좌우한다.
계면공학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상품들을 생산하는 제조공정에 응용되는 범용기술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한 연구소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파급효과가 지대하다.
국내 첫 비영리 민간연구소로 출발한 한국계면공학연구소
"폐기물 정제기술, 석탄의 원천탈황기술, 지하철 송배전 부식방지기술 등 현실 수요가 큰 계면공학 응용기술을 먼저 개발할 계획"
지난해 12월 과기처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한국계면공학연구소(소장 문광순)는 사실상 국내 첫 민간비영리연구소다. 재단법인 형태로 된 민간연구소는 산업과학기술연구소와 목암생명연구소가 있지만 이들은 포철과 (주)녹십자가 기금 전액을 투자해 일반 민간연구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4명의 독지가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아무런 조건없이 10억원을 내놓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를 모델로 하고 있다. 거부 바텔의 유산을 기증받아 설립한 바텔연구소는 67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될 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대 이사장은 최형섭 전과기처장관, 초대소장은 캐나다 중앙에너지 자원연구소(CANMET)에 근무하던 문광순박사가 각각 맡았다. 재캐나다 한인과학기술자협회장이기도 한 문박사는 이 연구소 일에 전념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로부터 3년간 파견근무를 명받았다. 계면공학연구소는 CANMET와는 이미 기술교류협약을 맺었고 미국의 바텔연구소, 벡텔사, 캐나다의 원자력연구소 등 5개기관과 기술협약을 추진 중이다.
올해안으로 10억원을 추가로 모금하고 10명 정도의 연구원을 확보해 폐기물 정제기술, 석탄의 원천탈황기술, 지하철 송배전 부식방지기술 등 현실적으로 수요가 큰 계면공학 응용기술을 개발해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97년까지 5백억원의 연구기금과 1백명의 연구원을 확보하는 것이 문박사의 꿈이다.
"외국의 경우 민간인이 기부한 만큼의 기금을 정부가 지원한다든지, 기부금에 대한 세금공제혜택을 주어 비영리연구소를 육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지원이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문박사는 비영리 연구재단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람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한 한국계면공학연구소의 연락처는 516-97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