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뿐 아니라 동물도 자신의 몸 곳곳에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나이테는 자신과 환경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는 기록장이다.
흔히 ‘연륜을 쌓아 간다’ 라는 말을 한다. 이때의 연륜(年輪)이란 한해 한해 쌓아올린 역사를 의미하는 것.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해를 나타내는 고리’가 된다. 해(나이)를 나타내는 고리, 우리말로 나이테다. 해가 거듭되면서 늘어가는 나이테가 추상적인 의미로 발전된 것이다. 나무는 나이테를 통해 나이뿐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동물도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나이테를 몸안에 지니고 있다.
겨울과 봄의 경계
나이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줄이 명확히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줄이라기 보다는 밝은 색의 띠와 어두운 색의 띠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줄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밝은 색의 띠로 보이는 부분의 세포는 크기가 크고 세포벽이 얇은 반면, 어둡게 보이는 부분은 세포의 크기가 작고 세포벽이 두껍다.
나무는 부름켜에서 세포를 만들어 부피생장을 한다. 나무가 활발히 생장하는 시기인 봄부터 여름까지는 물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세포가 팽창을 많이 하여 크기가 커진다. 그러나 부름켜(형성층)에서 세포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미처 두껍고 튼튼한 세포벽을 만들지 못해 세포벽의 두께는 얇아진다. 반면 늦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시기에는 물공급이 적어져 세포가 충분히 팽창하지 못하므로 크기가 작아진다. 그러나 부름켜에서 세포를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에 세포에 살을 찌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 세포벽은 두꺼워진다. 겨울이 되면 생장은 거의 정지상태에 있다가 봄이 오면 다시 생장을 시작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생기는 세포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겨울과 봄 사이에 생긴 세포들은 거의 정지했다가 활발히 생장을 재개한 것이므로 그 차이가 커 쉽게 구분된다. 이러한 세포 형태의 차이가 띠로 보이게 되고 이것이 나이테인 것이다.
산불의 흔적도 기록
나이테는 이처럼 환경변화에 따른 생장속도의 차이에 의해 생기므로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지역에서는 한 해에 두 개 이상 생기는 경우도 있고, 열대지방과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곳에서는 나이테가 아예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지역에서도 환경조건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예외적으로 한 해에 두 개의 나이테가 생기기도 하고, 환경이 열악한 때는 세포의 분열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 나이테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한 해에 한 개의 나이테가 나타난다.
나이테는 나이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자랄 당시의 환경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연륜연대학을 연구하는 박원규 교수(충북대 산림자원학부)는 “나이테에 나타난 생장교란점을 찾아냄으로써 생육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이테를 분석해보면 나이테가 동심원상으로 배열되지 않고 한쪽으로 찌그러진 형태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이는 토양이 침식되거나 산사태가 일어나 수목이 기울어져 자란 결과다. 기운 채로 자라면 중력을 받는 쪽이 더 많이 생장하므로 나이테가 동심원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보통의 연륜과 달리 송진이 차있거나 불완전한 모양의 상해연륜이 나타나면 서리나 산불이 일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유물의 연대 추정
나이테를 이용하면 나무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사용된 목재 조각의 사용연대까지 파악할 수 있다(그림1).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나이테의 폭은 당시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나므로 폭의 넓고 좁음을 그래프로 작성하면 변화패턴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살아 있는 나무의 나이테 변화 패턴과 이미 사용된 연대를 알고 있는 목재들의 나이테 변화 패턴을 수집하여 퍼즐을 짜맞추듯 서로 겹치는 부분과 빠진 부분을 연결하면 수 천년 동안의 변화패턴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나이테의 변화패턴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면 사용연대를 알지 못했던 목재조각도 그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미국 남서부 인디언 유적에 적용돼 그 비밀을 밝히는데 큰 공헌을 했다. 박교수는 우리나라에서의 연륜연대기의 작성은 아직 미비한 상태이며, 장차 완성된다면 문화재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물고기의 나이 판정
동물은 몸 속 어디에 자신의 성장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까. 어류의 경우 이러한 기록은 비늘, 이석(otolith), 혹은 등뼈 등에 나타난다. 이 중 나이를 판단하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이석이다(그림2). 이석(耳石)은 물고기의 두개골에 위치한 뼈의 일종으로 사람의 귀뼈에 해당한다. 탄산석회로 이루어졌으며 물 속 소리의 진동을 뇌로 전달하고 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이석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여기에도 식물의 나이테와 비슷하게 고리모양의 띠가 나타난다. 수온의 변화에 따라 봄과 여름철에는 어류가 활발히 성장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성장이 느려져 두 시기에 만들어진 조직구조가 다르다. 이 차이가 나이테로 보이는 것이다. 비늘의 경우도 원리는 동일하다. 그러나 비늘은 어류의 나이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비늘보다는 이석이 더 널리 이용된다.
조개껍질의 연륜
동물의 몸 중에서 나이를 판단할 수 있는 구조는 내부의 대사활동 같은 생명활동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대사활동 결과 생긴 산물이 다시 재흡수되거나 시간에 따라 그 구조가 변해서도 안된다. 이런 면에서 조개의 패각(껍질)은 훌륭한 기록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종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패각의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거나 손으로 쓸어보면 반들반들한 부분과 거친 부분이 반복된다. 성장이 활발한 시기에 형성된 부분이 부드럽고 그렇지 않은 시기에 형성된 부분이 거친 것이다. 이것을 단면으로 잘라 관찰하면 연륜을 뚜렷이 볼 수 있다.
거북의 각질판
인간못지 않게 수명이 긴 거북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거북도 나이테를 지니고 있다. 보통 등딱지라고 하는 각질판에 성장륜(growth layer)이 기록된다. 이 또한 서식환경, 온도, 강수량, 일사량, 먹이의 종류와 섭취할 수 있는 먹이의 양에 따라 성장속도가 달라져 생긴다. 한 개의 나이테가 정확히 1년에 해당하지는 않으므로 정확한 나이를 산출하기는 힘들지만 대략의 나이는 추정할 수 있다. 단 물에서 주로 사는 수생종은 대개 정기적으로 각질판을 탈피하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면 초기의 성장륜이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없어져 버려 연령추정을 확실히 할 수 없다. 각질판을 가지고 있는 거북은 자신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기록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최고의 연륜 정보는 이빨에
동물의 건강상태나 나이를 한눈에 알아보려면 치아를 조사한다. 이빨이 몇 개나 났으며 마모정도가 어떤지에 따라 대략적인 나이와 건강상태를 추측할 수 있다. 치아에도 나이테가 들어있다. 치아의 어디에 나이테가 숨어 있는 것일까. 치아를 횡적으로 잘라 단면을 보면 상아질과 백악질이 성장하면서 생긴 나이테가 보인다.
치아의 구조를 간략히 살펴보자. 이빨의 겉면을 싸고 있는 것이 법랑질 또는 사기질이라고 하는 에나멜층이다. 이는 석회화된 조직으로 인체조직 중 제일 단단하다. 법랑질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상아질(dentin)이다. 치아를 가장 많이 형성하고 있는 조직으로 법랑질 다음으로 단단한 석회조직이다. 상아질의 안쪽은 치수강(pulp cavity)으로 신경, 혈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 빈 공간이다. 잇몸의 아래쪽 맨 바깥은 백악질(cementum)이라고 하는 조직이 둘러싸고 있다. 백악질의 내면은 상아질에 단단하게 접착되고 외면은 치근막에 연결돼 치아를 턱뼈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장을 하면서 상아질과 백악질은 안쪽으로 점차 자라나 치수강을 메워나간다. 이 중 상아질과 백악질은 일생 동안 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성장륜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장륜은 치아를 종적으로 혹은 횡적으로 잘라 그 단면을 염색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관찰할 수 있다.
이빨의 나이테를 잘 볼 수 있는 것은 이빨고래이다. 고래는 먹이를 섭취하는 방법에 따라 이빨고래와 수염고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빨고래의 치아에 나이테가 나타난다. 바닷물 속에서 생활하므로 계절에 따른 수온변화에 따라 한 해에 한 개씩의 성장륜이 생긴다. 수염고래는 이빨대신 고래수염(baleen)이라고 하는 뻣뻣한 섬모를 가지고 있다. 이빨로 먹이를 씹는 대신 수염판(baleen plate)으로 물을 여과해 물 속의 먹이를 걸러 먹는다. 이빨이 없으므로 이들의 나이는 다른 방법으로 알아낸다. 이어플러그(ear plug)에 있는 층상구조가 나이를 말해준다. 보통 한 쌍의 밝은층과 어두운층이 1년을 나타낸다.
이빨고래를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이빨에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계절변화에 따른 성장속도의 차이에 따라 나이테가 나타나므로 특히 겨울잠을 자는 동물의 경우 성장륜은 한 해에 하나씩 생기게 된다. 그러나 성장륜이 나이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동물도 있다. 이는 환경변화와 같은 외적요인의 변화 사이클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이클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 사이클이란 주로 번식과 관련된 것으로 번식시기나 분만, 출생 등을 의미한다.
치아로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지만 뿔이 있는 동물의 경우에는 뿔이 나이를 말해 주기도 한다. 산양이나 소의 경우 뿔의 밑둥에 연륜이 형성되어 이 연륜의 개수로 나이를 알 수 있다. 사슴은 뿔의 가지수로 나이를 판단할 수 있다. 2-3년 사이에 첫번째 가지가 나오고 두번째 가지는 그 다음해에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연륜
사람은 어떨까. 현대의 인간은 먹이나 생활환경이 계절변화와 같은 외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런 인간에게도 나이테가 나타날가. 사람의 치아 단면에도 상아질과 백악질 층에 나이테 모양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나이와 일치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아질이나 백악질의 두께와 성장륜의 개수가 나이와 비례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나이를 산출하기에는 무리다.
고고하게 서있는 사슴의 아름다운 뿔,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보호해 주는 거북의 각질판, 장엄한 아름드리 나무… 이들은 오랜 시간 가혹한 환경과 맞서 생존한 결과물임과 동시에 자신과 환경의 역사를 담고있는 생생한 기록장이다. 사람의 경우 이빨에 나타난 나이테 외에 어디에 자신의 연륜을 기록하고 있을까. 젊은 시절 인기있었던 여배우가 노년에 가진 인터뷰와 사진촬영에서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여기 주름이 잘 나오게 찍어 주세요. 만드는데 수십년이 걸렸거든요.”
전자주민증 가진 에버랜드 동물들
동물마다 겉모습으로 정확한 나이를 알아내기는 힘들다. 따라서 문서로 동물에 대한 정보들을 관리하지만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이것도 별 효용이 없다. 호랑이처럼 몸집이 큰 동물은 사육사들이 구분을 하지만, 다람쥐 원숭이와 같이 작은 동물의 구별은 힘들다. 그래서 사용되는 것이 일종의 전자주민등록증. 에버랜드 동물원의 이기환 수의사에 따르면 볼펜 끝의 볼처럼 생긴 마이크로칩에 동물에 관한 정보를 담아 주사기로 어깨에 주입한다고 한다. 이 정보를 읽고자 할 때는 바코드를 읽는 것과 같이 판독기를 이용한다. 조류의 경우에는 정보를 담은 고리를 다리에 채워 놓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