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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혼’은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영혼이 여고생인 윤하나(임주은 분)에게 빙의된 뒤 살인자에게 복수한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범죄심리분석 전문요원인 프로파일러 신류 박사(이서진 분)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정신 상태를 판별하는 법정신의학 전문의 이혜원(이진분)이 범죄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과학적인’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과거 범행과 현장 단서가 프로파일링 근거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만을 노린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신류는“용의자가 20~30대 남성으로 혼자 살며 성격은 내성적이고 겉으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바로 옆에 있어도 살인범인지 모를 사람”이라고 범인의 특성을 분석한다.

젊은 여성을 향한 지나칠 정도로 잔혹한 공격성에서 또래 여성에게 이루지 못한 성적 욕구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납치한 뒤 마지막 순간까지 폭력성을 감춘 점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간파한 것이다.



‘범죄현장에 남겨진 단서나 유추할 수 있는 범인의 행동 특징을 바탕으로 범인의 성격이나 성별, 학력, 심리, 정신 상태, 전과관계, 범행동기 등을 추정해내는 심리수사기법인 프로파일링의 결과물이다.

프로파일링의 역사는 19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프로파일링은 197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행동과학부가 설립되며 시작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60년대부터 전통적 수사법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연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프로파일링이 시작됐다. 프로파일링에는 미국의‘흉악범죄자체포프로그램(VICAP)’이나 캐나다의 ‘흉악범죄연관성분석시스템(VICLAS)’같은 데이터베이스와 프로파일러가 필요하다.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과거에 해결된 사건 가운데 피해자의 특징이나 살해도구, 결박 방법 등이 유사한 사건을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범인의 특징을 파악한 뒤 수사에 활용한다.

그런데 이때 놓쳐서는 안 될 범죄심리학의 철칙이 있다. ‘모든 사건은 새롭다. 심지어 같은 범인의범행이라도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재 발생한 사건의 범인과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범인이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1960년대 미국 보스턴에서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연쇄강간살인범 ‘보스턴의 교살자’를 프로파일링했던 당대 최고의 프로파일러 제임스 브루셀 박사는 과거의 유사한 사례를 근거로 범인의 특성을 추정했다.



하지만 범인 알버트 드살보는 프로파일링 결과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인물로 밝혀졌고 브루셀 박사는 프로파일링 실패를 시인한 뒤 프로파일링계를 떠났다. 이처럼 프로파일링에서 기존의 데이터는 매우 중요하지만‘참고사항’에 불과하다.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프로파일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경찰도 ‘강력범죄분석시스템(SCAS)’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동시에 전문 프로파일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의식은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쌍둥이 동생인 두나(지연 분)가 참혹하게 살해된 뒤 매일 밤 하나는 고통스러운 꿈과 환각에 시달린다. 이런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신류는 최면요법을 사용한다. 최면요법의 기원은 정신분석학이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경험이나 지각,느낌은 대부분 무의식에 축적된다.

두렵거나 괴로웠던 기억,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때때로 돌출돼 나오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나 우울증, 불면증, 악몽, 심할 경우 정신질환까지 일으킨다. 꿈의 해석이나 최면요법으로 이런 무의식의 문제를 끄집어내 원인을 해석하면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실제 범죄수사에서도 최면수사기법을 사용한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분명히 보거나 들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경우, 너무 짧은 순간에 벌어진 사건일 경우, 크게 충격을 받았거나 혹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기억하지 못할 경우에 최면수사기법을 쓴다.

최면으로 다른 기억이나 의식의 방해를 없애면 특정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3월 대구지방경찰청은 뺑소니 교통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가 도주차량의 색상이나 종류, 차번호를 기억하지 못하자 최면수사기법을 사용해 범인을 검거했다.

최면을 이용한 치료나 기억을 재생하는 일 이외의 최면효과는 대부분 거짓이다. 최면요법으로 전생을 떠올리도록 하거나 최면상태에 빠진 상대를 마음대로 조종해 로봇처럼 부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신류가 고통스러워하는 하나의 증상을 최면요법으로 파악한 뒤 치료하는 모습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신류가 최면에 걸린 하나와 간호사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모습은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허구일 뿐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죄수의 딜레마 깬 옥에 티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된 두나. 살인범의 뒤를 쫓는 신류. 해결점이 보이지 않던 사건은 신류가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하며 전환점을 맞는다. 살해현장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동영상에 고등학생 2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던 것. 하지만 범행의 우두머리를 밝히라는 신류와 형사들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결국 신류는 이들을 서로 분리된 조사실에 넣은 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처하게 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유죄를 인정할 경우 형량이 줄어드는 상황. 공범 중 1명이 범행을인정하고 다른 1명은 범행을 부인할 경우 범행을 인정한 사람은 증인이 돼 무죄 방면되지만 범행을 부인한 사람은 징역 10년 형을 받는다. 만약 둘 다 범행을 인정하면 정상을 참작해 둘 다 징역 5년을 받는다. 반면에 2명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증거가 부족해 둘 다 징역 6개월을 받는다.

공범 A는 공범 B가 범행을 부인하거나 침묵할 것으로 생각될 경우 자백하는 편이 유리하다. 공범 B가 자백할 경우에도 A는 자백해야 형량을 줄일 수 있다. 공범 B 역시 A와 같은 상황이므로 A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백하는 편이 유리하다. 따라서 결국 A와 B는 모두 자백해 결국 5년씩 복역하게 된다. 대부분의 죄수는 상대방의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모두가 범행을 부인해 6개월을복역하는 것보다 나쁜 결과를 선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 ‘혼’에서 두 고등학생은 서로 인접한 조사실에 신문을 받는 도중 두 조사실 사이에 설치된 투명한 창을 통해 입 모양으로 ‘말하지 마’라는 의사를 전한다. 수사진에게 유리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수사진 스스로 깨버린 셈이다. 결국 두 고등학생은 무죄로 풀려났다가 두나의 혼이 빙의된 하나에게 처참히 살해당한다.

신류가 두 고등학생이 복수를 당해 죽게 할 목적으로 의사소통을 알고도 허락했다는 설정이 아니라면 옥에 티인 셈이다. 실제로 범죄자의 심리를 이용해 진술을 받아내는 범죄심리학적 신문기법에는 ‘인지신문기법’과 ‘리드 신문기법’이 있다.

인지신문기법은 진술자 기억의 정확성과 신빙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가까운 기억부터 떠올리도록 시간의 역순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리드신문기법은 신문자가 개입해 적절한 질문을 던져 진술자가 타인의 관점에서 진술하도록 만드는 기법으로 대부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빙의는 다중인격장애?

고통과 절규 속에 비참하게 살해된 쌍둥이 동생 두나의 영혼이 언니 하나에게 빙의되는 초자연적 현상. 빙의는 바로 드라마 ‘혼’을 이끌어가는 스토리의 핵심이다. 드라마처럼 초인적인 힘이 생기고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이 부여되지는 않지만, 현실 속에서도 빙의와 관련된 논란은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어린 소녀가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목소리를 내거나 전혀 다른 인물이 돼 이상한 행동을 하는 현상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나 동양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에서도 영혼이나 귀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오는 현상을 ‘귀신 홀림(ghost possession)’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법정신의학자 이혜원이 말했듯이 과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빙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 정신분석학자들은 빙의를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본다. 우리가 흔히 다중인격장애라고 알고 있는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해리성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평균 5~10가지 다른 인격을 갖는다. 그런데 이들 인격 사이의 전환이 매우 급작스럽게 이뤄져 대부분의 환자들은 각각의 성격에서 경험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빙의와 유사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 ‘혼’은 단순히 공포만을 불러일으키는 기존의 드라마와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드라마는 사실성을 담보할 때 의미가 있지만 그 본질인 재미와 감동을 버리면서까지 사실성만 좇을 필요는 없다. ‘혼’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범죄심리수사기법과 프로파일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신류는 슈퍼 프로파일러



 

프로파일러는 1991년 개봉한 영화 ‘양들의 침묵’의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 분)과 잭크로포드(스콧 글렌 분), 2000년 개봉한 영화‘본컬렉터’의 링컨 라임(덴젤 워싱턴 분) 등을 통해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직업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파일러는 현재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프로파일링을 하는 권일용 경위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를 공포에 빠트렸던‘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가 실패한 일을 교훈 삼아 홀로 범죄심리학 책을 읽고 미국 FBI의 프로파일링 훈련교본을 공부했다.

그는 두 번 다시 화성 연쇄살인사건 같은살인마의 광란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강간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면담해 프로파일링 기법을 연마한 순수 토종 프로파일러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붙잡힌 뒤 경찰청에서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학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를 특채해 체계적으로 프로파일러로 양성하고 있다. 경찰청범죄정보지원계에서 활약하는 여성 프로파일러 강은경 주임도 경찰대와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프로파일러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월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검거할 때에도 수원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의 프로파일러인 이상훈 팀장과 이유라 경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현장을 뛰는 프로파일러가 드라마 속 신류처럼 반드시 박사 학위 소지자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파일링을 포함한 범죄심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프로파일러들은 현재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나 경찰대 그리고 일부 사립대에 교수로 있다. 이처럼 ‘경찰 외부’에 있는 프로파일러들은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뛰는 프로파일러들과 협력해 사건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장조사와 프로파일링을 하며 동시에 경찰수사까지 지휘하는 드라마‘혼’의 신류와 같은 인물은 현실에 없다. 신류는 현실에서 경찰 내외에 있는 프로파일러와 경찰수사간부의 역할을 모두 모아 만든‘슈퍼프로파일러’인 셈이다.

 


표창원 교수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영국 엑시터대에서 경찰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아시아 경찰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1년부터 현재까지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을 연구하며 저서로는 ‘한국의 연쇄살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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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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