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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기르는 SW로 아프리카 굶주림 해결”

'학생 IT올림픽' 이매진컵 우승한 한국팀 '와프리'

“사실 알고 보면 곤충은 엄청난 영양 덩어리입니다. 대표적인 식용 곤충인 사슴벌레 유충 3마리에는 아프리카인 한 끼 배급량에 맞먹는 영양분이 들어 있죠. 아프리카인 누구나 곤충을 길러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가 개발한 사슴벌레 사육장비의 목표입니다.”

올해 7월 3일~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학생 소프트웨어(SW)경진대회인 ‘이매진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팀 ‘와프리(Wafree)’의 신윤지 팀장(미국 컬럼비아대 응용수학과 1년). 그는 “곤충을 기르는 기술이 기아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물음에 이처럼 당찬 답변을 내놓았다.

이매진컵은 2003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최하고 있으며 기아 해결, 자연 보호 등 공익적인 주제를 소화하는 SW를 개발한 팀을 뽑아 시상한다. 전 세계 124개국에서 30만 명이 예선에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와프리팀은 사슴벌레를 기르는 기술로 임베디드(정보기기를 움직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지난해 단편영화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지만 임베디드처럼 주요 경쟁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와프리팀에는 총상금 2만 5000달러(약 3000만 원)가 주어졌다.

신 씨와 팀원 김기범(동양대 컴퓨터공학과 4년) 씨, 대회에 함께 참가해 기술적인 조언을 한 ‘멘토’ 유신상(인하대 컴퓨터공학과 4년) 씨를 서울 삼성동 한국MS에서 7월 31일 만났다. 또 다른 팀원인 박영부(인하대 전자공학과 4년) 씨는 이날 개인 사정으로 출국한 상태여서 인터뷰에는 이들 3명이 참석했다.

아프리카인들의 기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인을 두고 메마른 기후, 체계적이지 못한 농법, 자본의 부족 등으로 다양한 진단이 나온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매년 아프리카에 막대한 양의 식량을 원조한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린다. 왜일까.

신 씨는 “아프리카에선 정치 권력을 쥔 군부 세력이 주민을 통제하는 도구로 식량을 활용하는 일이 많다”며 “한 해 아프리카에 투입되는 식량 원조액이 무려 40억 달러(5조 원)에 이르지만 기아가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되지 않은 군부에서 공평한 식량 분배를 기대하긴 어렵다. 힘없는 일반 주민들은 식량을 미끼로 한 이들에 조종되면서도 늘 굶주릴 수밖에 없다.

경작 때 필요한 물 500분의 1이면 곤충 사육

와프리팀은 이런 아프리카의 여건에선 각 가정마다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소규모 시스템을 구축해야 기아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부의 ‘선처’를 바라지 않고도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고민했던 것. 이것이 와프리팀이 작은 냉장고만 한 사육 장비를 각 가정에 들여놓아 딱정벌레의 일종인 사슴벌레를 기르는 기술을 개발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곤충이 과연 식량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보통 한국인에게 곤충은 어류나 육류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다. 하지만 신 씨는 음식이냐 아니냐는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만났던 르완다 친구가 하루는 이러더군요. ‘만약 내가 곤충을 먹으며 자라지 않았다면 벌써 굶어 죽었을 거야. 곤충은 아프리카에서 훌륭한 음식이거든’이라고 말입니다. 내전이 극심한 르완다에선 곤충이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실제 와프리팀원들은 대회 참가 전 여러 논문을 찾아 200종에 가까운 벌레가 식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엔(UN)도 곤충을 최고의 대체 식량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신 씨는 “번데기는 먹으면서도 사슴벌레엔 고개를 가로젓는 건 음식이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증거”라며 “해외에선 곤충을 재료 삼아 조리하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와프리팀이 곤충에 집중한 이유는 또 있다. 곤충을 키우는 데에는 작물을 기를 때보다 훨씬 적은 물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인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밀을 경작할 때 필요한 물의 500분의 1, 토지의 3000분의 1만 있으면 1년간 먹을 사슴벌레를 기를 수 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사슴벌레를 기르는 것이 각종 비용을 절약하는 길인 셈이다.

너무 더우면 자동으로 바람개비‘씽씽’

와프리팀은 왜 하필 곤충 가운데에서도 사슴벌레를 선택했을까. 사슴벌레의 애벌레는 식용으로 쓰이는 많은 곤충 가운데에서도 단백질 같은 영양소가 풍부하기로 정평이 높다. 아프리카인들은 사슴벌레에 특별한 양념을 치지 않고 그대로 구워 먹는다. 함유하고 있는 기름이 많아 조리 기구에 식용유를 두를 필요도 없다. 와프리팀은 이번 대회에서 사슴벌레를 과자처럼 요리해 풍미를 조금 더 높였다.

“시중에서 파는 비스킷과 비슷한 맛이 납니다.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맛도 있다는 거죠.” 사육 장비 설계와 제작을 주로 맡은 김기범 씨는 식량으로서 사슴벌레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사슴벌레에는 중요한 문제점이 있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사육을 하면 폐사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자연에서 사는 사슴벌레는 강한 햇볕이 비치면 그늘로 이동하고, 습기가 많으면 마른 땅으로 기어갈 수 있지만 우리에 갇혀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육 장비의 환경을 사슴벌레가 좋아할 수 있도록 수시로 관리하면 되지만 그런 사육 장비는 대개 조작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기술에 관한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와프리팀은 이 때문에 사람이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사슴벌레를 알아서 키워주는 기능을 갖추는 데 기술 개발의 초점을 맞췄다.

“와프리팀이 개발한 사육 장비는 사슴벌레가 크는 데 딱 좋은 온도, 습도, 바람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갖추고 있습니다. 센서가 사육 장비에 내장된 컴퓨터에 내부 환경의 상황을 보고하면 필요한 조치가 내려진다는 얘기죠.”

이미지 인식과 네트워크 기술을 주로 다뤘던 유신상 씨는 와프리팀이 사실상 완전 자동화된 장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육 장비 안이 너무 더워지면 사람이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람개비가 돌아가 바깥과 안쪽 공기가 순환되는 식이다. 사람은 사육 장비에 설치된 물통을 가끔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 각 가정에 들어간 사육 장비는 중앙 관리소와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어 고장이 나도 현지 주민은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유 씨는 소개했다.

이 사육 장비를 와프리팀은 대당 40~50달러(5만~6만 2000원)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대한 값이 싼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난하더라도 약간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 집안에 든든한 식량 창고를 들여놓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슴벌레는 6개월이면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이 장비가 보급되면 아프리카 주민들은 1년 내내 먹을거리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다.

MS서 자금 지원 검토, 내년 시범 보급할 계획

와프리팀이 대회 주요 부문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인하대의 한 동아리방에서 매일 모여 준비를 한 이들은 지난 4월부터 대회에 참가했던 7월 초까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밤을 자주 샜다. 대개 딱딱한 나무 의자를 붙여 놓고 잠자리에 들다 보니 아침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기도 했다. 잠깐 눈을 붙이려고 따뜻한 햇볕이 드는 야외 벤치에 누웠다 몇 시간씩 잠드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와프리팀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장비가 아프리카인들에게 작은 희망의 싹이 된 사실에 “그동안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이 기술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한 MS는 본사 차원에서 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MS는 투자자 모집에 나설 방침이다. 신 씨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대에서도 이 기술에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에는 아프리카의 일반 주민들에게 사육 장비를 시범 보급하고 싶습니다. 일단은 현지에서 장비를 테스트하는 수준이 되겠지만 저희 팀이 내걸었던 목표가 아프리카인들에게 더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계획입니다.”

와프리(Wafree)는 세계(World), 아프리카(Africa), 자유(free)를 합성한 말이다. 팀의 슬로건이 ‘음식을 통한 자유, 자유를 위한 음식’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음식으로, 기술로 이역만리 타지의 인류를 도우려는 한국 청년들의 열정과 꿈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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