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일부터 내가 원하는 대로 인터넷을 쓸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보고 싶은 영상을 못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면? 1982년 한국 최초의 인터넷으로 평가받는 SDN이 설치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망 사 용료 논쟁처럼 아직도 인터넷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인터넷의 어떤 점이 문제일까? 답을 찾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인터넷에는 주인이 있을까?”
인터넷은 [ ISP]의 것이다?
지난 9월 29일, 미국 아마존의 인터넷 방송 중계 서비스인 트위치(Twitch)는 한 국을 대상으로 최대 해상도를 1080p에서 720p로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망 사용료 명목으로 국내에서 트위치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내린 결정으로, 이 발표는 이전부터 한국 인터넷 업계의 뜨거운 화두였던 ‘망 사용료’ 논쟁을 격화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도처에 깔린 무선 와이파이를 사용하노라면 인터넷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인터넷은 와이파이 공유기와 모뎀, 서버, 이들을 이어주는 광케이블과 같은 기반 시설로 구축된 물리적 세계다. 이 거대한 기반 시설을 관리하고 인터넷 접속 수단을 제공하는 곳이 SK텔레콤(SKT), 케이티(KT), 엘지 유플러스(LG U+)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이다. 우리나라의 ISP 측은 넷플릭스나 메타(페이스북), 유튜브, 트위치처럼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며 수익을 내는 ‘콘텐츠 제공자(CP)’를 상대로 ‘인터넷 망을 사용한 만큼 망 사용료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2021년 4분기 기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7.2%를 차지하고 있으니, 망접속료에 추가로 인터넷을 많이 사용한 만큼의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콘텐츠 제공자는 이 주장이 인터넷의 기본 원리인 ‘망중립성’을 침해한다고 반박한다. 망중립성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데이터의 내용이나 사 용자 에 상관없이 데이터를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비영리 법인 오픈넷의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중립성은 인터넷을 구성하는 네트워크들이 서로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해 만든 원칙으로, 망사용료를 부과하면 요금 지불 여부에 따라 누군가는 빠른 인터넷을, 누군가는 느린 인터넷을 쓰게 돼 자유로운 인터넷이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망사용료 논쟁은 우리가 공기처럼 사용하는 인터넷이 실은 누구의 것인지에 관해 다시금 고민해보도록 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에서 과학사를 연구하는 최형섭 교수는 “인터넷의 주인이 없다는 것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개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케이블 기반 시설을 소유한 주체가 바로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라고 밝혔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망사 용료를 내라고 청구할 수 있는 것도 이 업체들이 케이블과 라우터, 서버 등 인터넷의 물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주인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인터넷은 [ IT기업]의 것이다?
한국에서는 ISP의 반대편에서 망중립성을 수호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콘텐츠 사업을 하는 IT 기업이라고 인터넷의 자율성 침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메타가 저소득 국가를 주 대상으로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인 프리 베이직스(Free Basics)가 그 주인공이다. 프리 베이직스는 인도와 아프리카 등 인터넷 접속이 쉽지 않은 저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무료 인터넷 접속을 도와주는 서비스다. 2013년 8월부터 모바일 데이터 요금을 내지 않고 무료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의미는 좋아 보이지만, 프리 베이직스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는 한정되어 있다. 메타의 서비스 중 하나인 페이스북이 아닌 다른 사이트를 보려 시도하면 접속이 제한되거나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인 마이크 엘간은 프리 베이직스로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은 전체의 겨우 20억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메타가 더 많은 고객과 유료 데이터 사용자를 만들기 위해 프리 베이직스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한국 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에 참여해 온 최은창 위원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29억명은 아직 인터넷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메타의 인터넷 서비스는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 국가 국민들에게 불평등한 인터넷의 모습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 베이직스는 자유로운 인터넷 세계가 아니라, 메타가 이윤 추구를 위해 인터넷의 일부를 사유화한 모습에 가까운 셈이다.
인터넷은 [ 국가]의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범위에서 살펴보면, 한 국의 망중립성 논쟁은 인터넷의 자 율성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인터넷의 자율성은 국가가 개입할 때 가장 심각하게 침해받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인 올 3월 초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허위 정보가 유포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고 발언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통제 조치에 가까 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 내부와 해외 네트워크를 이어주던 인터넷 회사 들도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러시아 인터넷망은 외부와 고립된 상태가 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검열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시민들은 정보에서 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떨어져 고립된 러시아의 인터넷이 이미 확고한 검열망이 작동하는 중국의 인터넷 네트워크를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만리방화벽’으로 불리는 시스템을 개발해 2009년부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서비스 접근을 차단했다. 자유로운 접속은 물론 의견 표출도 거의 불가능한 중국의 인터넷에 대해 최 위원은 “인터넷이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이라 평했다.
인터넷은 [ 모두]의 것이다?
인터넷은 정말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거대 IT기업, 혹은 국가의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자유의 공간 인터넷’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인터넷은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부터 어디에서든 똑같이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습니다.”
이동만 KAIST 전산학과 교수의 대답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 거버넌스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설립된 민관 협의체 다자간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KIGA)의 의장을 맡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은 1969년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 (DARPA)가 연구 데이터를 주고 받기 위해 함께 연구하던 네 연구기관의 컴퓨터를 연결하며 만들어진 아파넷(ARPAnet)에서 시작됐다. 이후 이 네트워크에 더 많은 컴퓨터가 연결되며 점점 몸집을 불려나갔다.
이 교수는 “당시의 선구적 인터넷 연구자들은 모든 컴퓨터가 평등하게 연결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서로의 컴퓨터를 연결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누군가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자신의 네트워크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인터넷이 더욱 넓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연구자인 빈튼 서프가 만든 인터넷 기기들의 소통 언어인 TCP/IP 프로토콜은 컴퓨터 가 어떤 곳에 있든 모두가 평등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체계다. 현재의 인터넷에 평등이라는 가치와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이 녹아있는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케이블, 서버 등 물리적인 기반은 물론, 인터넷을 만드는 규칙과 약속까지도 인터넷의 일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 위원의 말이다. 누구든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유로운 인터넷 세상이 가능한 셈이다. 이 관점에서 망 사 용료를 생각해 보자. 전 세계의 ISP가 각자 망 사용료를 걷는 순간 인터넷 사용료는 치솟을 것이고,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인터넷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ISP가 관리하는 케이블 망 같은 물리적 기반은 물론, 망중립성 같은 사용자 사이의 약속까지 더해져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2022년의 인터넷은 처음 과학자들이 연구실 서버를 연결하며 만든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많은 국가와 기업이 인터넷을 유지하는 기반 시설에 투자하면서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의 인터넷을 만드는 데 공헌했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
최 위원은 “평등한 인터넷을 위해서 국가와 기업만큼 시민단체, 연구자, 기술자,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인터넷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이 교수는 인터넷은 모두의 것이므로 미래 세대가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주길 당부했다. “인터넷은 이제 철도나 전기처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민주적 인터넷 환경을 잘 갖추어 미래 세대에 넘겨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