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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장기 연구용 돼지 지노

생명 앗아가는 거부반응 해결할 희망

6000명. 미국에서 이식받을 장기가 부족해 매년 사망하는 사람의 수다. 1만 8000명. 한국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은 다름 아닌 이종(異種)장기이식(xenotransplantation)이다.



‘인간 이외의 동물에서 유래된 세포, 조직,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거나 이런 물질과 인
체 외부에서 접촉했던 체액, 세포, 조직, 장기를 이식하는 과정’.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종장기이식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동물조직을 사람 몸에 이식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면역거부반응이다. 인체가 동물조직을 몸의 일부가 아닌 이물질로 인식하기 때문에 각종 방어메커니즘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종장기이식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면역거부반응 해결이 급선무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된 결과, 이제 이종장기이식은 사람의 장기기증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노를 만든 이유

다른 동물의 세포나 조직, 장기를 이식하면 사람의 면역시스템은 단 몇 분 안에 이를 파괴한다. 이 과정을 ‘초급성(hyperacute) 면역거부반응’이라고 부른다. 이 반응을 일으키는 건 동물세포 표면에 붙어 있는 당 성분이다.

돼지세포 표면에는 갈락토오스라는 당 분자 2개로 이뤄진 ‘알파 1,3-갈락토오스’가 붙어 있다. 줄여서 보통 ‘알파갈’이라고 부른다. 사람 세포에는 알파갈이 없다. 돼지 세포가 들어오면 인체는 바로 이 알파갈 때문에 이물질로 판단하고 면역시스템을 가동시킨다. 면역시스템이 만들어낸 항체는 핏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면역단백질인 보체를 활성화시킨다. 보체는 돼지 세포에 구멍을 뚫어 세포를 파괴한다. 이식후 수분~수시간 안에 일어나는 이 같은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은 이식된 장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강력하다.



돼지 세포에 알파갈을 붙이는 역할은‘알파 1,3-갈락토실트랜스퍼레이즈’라는 효소가 한다. 보통 ‘알파갈 합성효소’라고 불린다. 알파갈 합성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다면 돼지 세포에 알파갈이 결합되지 못한다. 결국 면역거부반응 없이 이식하려면 알파갈을 제거한 돼지의 장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는 돼지 세포의두 염색체(부계와 모계)에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올 4월과 6월 태어난 ‘지노’와 ‘지노2’는 모두 이 두 유전자 가운데 하나만 제거한 미니돼지다. 보통 집돼지는 몸무게가 300kg이 넘어 사람보다 장기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이식에 적당하지 않다. 반면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몸무게가 100kg을 넘지 않아 사람과 장기 크기가 비슷하며, 장기의 생리작용도 사람과 유사하다.

지노와 지노2의 출생 방식은 동일하다. 교육과학기술부 바이오신약장기사업단은 무균 상태에서 자란 미니돼지 체세포에서 두 개의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 중 하나를 제거한 다
음, 핵을 제거한 일반돼지 난자에 주입해 복제수정란을 만들었다. 이를 대리모(일반돼지)
에 이식한 결과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 하나가 없이 태어난 미니돼지가 지노와 지노2다.
지금까지 알파갈이 제거된 돼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건 미국과 호주, 일본 3개국의 총 5
개 연구팀뿐이다. 이 중 미니돼지로는 미국 미주리대 연구팀에 이어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했다.



돼지 심장 넣은 원숭이 179일 살아

지노와 지노2에 이은 다음 연구는 같은 방식으로 만든 암컷 미니돼지와 여러 차례의 번식과정을 거쳐 알파갈 유전자 두 개가 모두 제거된 돼지를 얻는 단계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이에 연구단은 다른 방식의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노와 지노2의 체세포를 채취해 시험관에 넣고 배양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알파갈 유전자를 마저 제거한 다음 이를 일반돼지의 난자에 주입하는 복제과정을 통해 부계와 모계의 알파갈 유전자가
모두 제거된 돼지를 생산하려는 방식이다. 이 돼지가 태어나면 초급성 면역거부반응 문
제는 거의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주리대 연구팀은 알파갈 유전자가 제거된 돼지의 신장과 심장을 바분원숭이에 이식해 봤다.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는 83일간, 심장을 받은 원숭이는 179일간 각각 생존했다. 원숭이를 부검한 결과 연구팀은 이식된 심장에서 ‘지연성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났고, 혈전(혈액세포가 뭉친 덩어리)이 생겼음을 알아냈다.

초급성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미주리대를 비롯한 세계 여러 연구팀은 이제 초급성 면역거부반응뿐 아니라 지연성 면역거부반응과 혈전생성을 추가로 억제할 수 있는 복제미니돼지를 만드는 데 나서고 있다.

지연성 면역거부반응은 초급성 반응 이후 여러 가지 복잡한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 각종 면역반응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들 반응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몸속에 염증 같은 면역반응이 생기면 혈관을 싸고 있는 내피세포가 손상돼 혈관에 있던 혈액응고 촉진물질이 나와 혈액을 딱딱하게 굳혀 혈전을 만든다. 전문가들은 장기를 이식하면 이와 비슷한 이유 탓에 혈전이 생기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임상시험 규제 필요” 국제사회 한 목소리

심장이나 신장, 간 같은 장기를 이식하려는 시도는 20세기 들어 시작됐다. 1900년대 초, 토끼와 양, 원숭이의 신장 일부를 떼어 사람에게 이식했지만 사람은 대개 10일 이상 생존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기를 이식했을 때 일어나는 거부반응이 면역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은 1945년에 와서야
밝혀졌다. 이로써 면역억제제가 개발됐고,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심장이나 간을 이식받은 사람이 면역억제제를 투여받으면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9개월까지 생명을 연장했다. 특히 1984년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던 생후 2주 된 영아에게 바분원숭이의 심장을 이식해 3주 동안 생명을 연장한 사건은 과학적, 의학적, 윤리적 측면에서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종장기이식 시도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1994년 스웨덴 당뇨병 환자 10명이, 2005년 중국 당뇨병 환자 20명이 각각 돼지 췌도를 이식받았다. 1997년 일본에선 급성 간부전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의 간을 돼지 간에 연결해 이식용 사람 간이 준비될 때까지 3일간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했다.2007년 미국 FDA는 생명공학회사 젠자임이 개발한 배양상피세포(CEA)를 생명이 위험한 화상 환자에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실제 화상 환자에게서 떼어낸 손상된 피부조직을 실험실에서 생쥐세포와 함께 배양해 회복시킨 뒤 화상 부위에 다시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최초의 이종 간 조직이식제품이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도 일부 화상환자에게 쓰이고 있으며, 의학적으로 특별한 부작용에 대한 보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이종장기이식은 대부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치료법이 없고 이식용 사람 장기도 없을 때 마지막 희망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연구수준에서 시도돼왔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임상시험이 지나치게 자주 시행되는 것을 경계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종장기이식 연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는 지난 해 11월 중국에서 이종장기이식 연구가 활발한 19개국(한국 포함)을 모집해 회의를 열고 ‘이종이식 임상적용규제’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다. 이 의정서는 장기 공급원인 돼지를 위생적으로 관리할 것, 동물실험으로 먼저 효능과 안전을 철저히 확인할 것, 이식받은 환자를 계속 추적 조사할 것, 임상시험은 연구결과가 많은 췌도와 심장, 신장, 간의 순서로 시행할 것이라는 4가지 권고사항을 담고 있다.

국내 이종장기이식 연구는 국제사회의 권고사항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종장기이식은 사람을 위해 동물이 희생돼야 한다는 점에서 동물보호단체와의 견해차를 원활히 해소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물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의 정체성 문제, 평생 추적조사를 받아야 할 고충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또 인수공통질병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세밀하고 꾸준한 역학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동
물의 장기를 이식하기 전에 방사선으로 바이러스를 죽이긴 하지만 일부가 살아남아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혜택은 당뇨병 환자에게 뉴질랜드 생명공학기업 리빙셀테크놀로지(LCT)는 최근 돼지 췌도를 고분자로 이뤄진 캡슐에 싸서 복강에 이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람의 면역세포와 돼지 췌도의 접촉을 최소화해 면역거부반응을 줄이는 방법이다. 캡슐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영양분과 산소는 들어가고 췌도세포가 생산한 인슐린만 밖으로 나온다.



LCT는 현재 러시아에서 당뇨병 환자 7명을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환자들은 모두 이식받은 췌도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해 혈당수치가 낮아졌다. 그 가운데 2명은 더 이상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회복됐다.이종장기이식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혜택을 받게 될 질병은 당뇨병일 가능성이 크다.

당뇨병의 발생 장소인 췌도가 다른 장기에 비해 알파갈이 적기 때문이다. 또 지노가 나오기 전부터 일반적인 무균돼지로 임상시험이 일부 진행된 사례도 있다.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의 췌도를 원숭이에 이식하고 적절한 면역억제제를 투여한 결과 약 180일간 정상 혈당을 유지했다는 연구결과가 2006년 의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보건복지가족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을 중심으로 미니돼지의 췌도와 심장, 각막을 영장류에 이식하는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안전성과 효능이 확인되면 오는 2013년경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준호, 심호섭 교수는 바이오신약장기사업단에 소속돼 면역거부반응 조절이 가능한 돼지와 이종장기이식용 면역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다. 박정규 교수는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에 참여해 무균 미니돼지의 유지관리, 이종장기이식의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적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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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정준호 서울대 의대 교수 · 박정규 서울대 의대 교수 · 심호섭 단국대 의대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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