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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하나뿐인 돼지 ‘지노’

생후 2개월, 하루 생활비 200만 원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축산길 77 오목천동 564 국립축산과학원 ‘바이오장기 SPF 미니돼지 생산연구동’. 이 건물에 있는 가로 154m, 세로 90m의 인큐베이터 안에 ‘사람보다 귀한’ 돼지가 산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몸이 너무 깨끗해서 밖으로 나오면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의 공격에 금방 시름시름 앓게 될 게 뻔하니 말이다. 그의 이름은 ‘지노(Xeno)’. 이종장기이식을 의미하는 영어단어(xenotransplantation)의 앞 4자를 따서 지었다.

34억 원짜리 돼지

올 4월에 태어난 지노는 많이 자랐다. 몸무게가 20kg 가까이 나간다. 한눈에 봐도 인큐베이터가 비좁다. 8월 안에 지노는 새 집으로옮겨간다. 지노를 위한 특수 SPF 돈사가 거의완공돼 이제 소독하는 단계만 남았다.

‘SPF(Specific Pathogen Free)’는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없는 상태로 유지된다는 뜻. 어미돼지의 자궁 속과 비슷한 환경이다. 모든 물품이 소독돼 들어오고, 공기 정화장치가 24시간 돌아간다.

지노가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장기 연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노에게는 보통의 돼지가 갖고 있는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가 없다.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치명적인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유전자를 제거한 것이다.

기자가 연구원들과 함께 인큐베이터에 다가가자 누워 있던 지노가 벌떡 일어났다. 한 연구원이 장갑을 낀 채 인큐베이터 안으로 손을 뻗어 지노의 온몸을 쓰다듬어 준다. “이렇게 놀아주지 않으면 화를 내요. 가끔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장갑을 물어뜯기도 하죠.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지노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바이오공학과 우제석 연구관의 설명이다. 지노와 놀아주고 먹이를 챙겨주는 게 이곳 연구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24시간 지노를 관찰하기 위해 CCTV가 돌아가고, 밤에도 꼭 한두 명씩 지노 곁을 지킨다.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를 만든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4곳뿐이다. 그만큼 지노는 ‘귀한 몸’이다. 지노가 출생할 때까지 약 5년간 34억 원이 넘는 연구비가 들었다.

소리에 민감하고 성격 거칠어

귀한 몸인데다 성격도 예민하고 ‘약골’로 태어났다. 그동안 연구원들이 오죽하면 가족보다 지노에게 더 마음을 써야 했을까. 출생 당시 몸무게는 460g. 일반 미니돼지 평균 몸무게의 70%에 불과했다. 꼼짝 않고 죽은 듯 축 늘어져 잠을 자는 통에 연구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생후 몇 주 동안은 문 여닫는 작은 소리에도 지노가 깜짝 놀라 잠을 깨곤 했어요. 소리에 무척 예민한 거죠. 안 되겠다 싶어 하루 종일 FM 라디오 방송을 틀어줬어요. 그랬더니 점점 적응했는지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당시를 떠올리는 우 연구관의 표정에는 “십년감수했어요”란 말이 씌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사람으로 치면 어느덧 어른이 다 됐다. 생식기관도 거의 성숙돼 곧 연구용으로 쓸 정액을 채취할 예정이다. 지노는 요즘 정액이 잘 생기게 하기 위해 비타민E가 많이 든 영양제도 먹는다.



성체가 되고 나니 이제는 특유의 본래 성격이 나오고 있다. 지노는 고기로 쓰이는 돼지품종인 요크셔와 달리 몸에 검은색 무늬가 있다. 이런 유색 돼지는 일반적인 민무늬 돼지에 비해 성격이 거칠고 새끼도 적게 낳는단다. 사진 촬영이 길어지자 아니나 다를까, 지노가 좀 화가 난 듯 보였다. 인큐베이터 벽에 몸을 쾅쾅 부딪치며 뛰어올랐다. 그러다 지쳤는지 이번엔 배를 깔고 누워 꼼짝도 않는다.

“어릴 땐 덮고 자라고 멸균한 수건을 깔아줬어요. 하지만 이제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죠. 물어뜯어 먹어 버리니까요. 예민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줘야 해요.”

지노 연구팀이 지노 출생 직후부터 약 2개월(4월 3일~6월 5일) 동안 든 연구비를 계산해봤다. 1억 70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단순히 날짜 수로 나누면 하루 생활비가 200만 원도 더 드는 셈이다. 보통 사람의 100배 가까운 비용이다.

식성 까다로운 동생

지노가 사는 인큐베이터 옆에는 또 다른 인큐베이터가 있다. 여기엔 지노의 동생 '지노2'가 산다. 올 6월 25일 태어난 지노2 역시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가 제거된 돼지다. 지노2와 지노는 모두 수컷이다.

국립축산과학원 박수봉 동물바이오공학과장은 “지노에 이어 지노2 생산에도 성공한 것
은 알파갈 합성효소 유전자 제거 기술이 안정화됐다는 의미”라며 “지노2와 지노가 자라 8~14개월이 되면 정액을 뽑아 미니돼지 암컷과 인공수정을 해 알파갈이 제거된 장기이식용 미니돼지를 대량생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노는 보통 돼지용 사료를 멸균해서 먹고, 물은 역시 멸균한 걸로 하루에 8~10L 정도 쓴다. 어른이 됐으니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잔다. 하지만 지노2는 그러기엔 아직 어리다.

“2시간 간격으로 식물성 분유를 먹여요. 간혹 자는 걸 깨워서라도 먹여야 할 때도 있죠. 이제 곧 분유 대신 사료로 바꿔야 할 시기입니다. 지금은 별도로 물을 안 주는데,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 멸균한 물도 넣어 줘야죠. 그런데 이 놈 입이 짧아서 걱정이에요. 지노는 사료를 남기는 법이 없는데, 지노2는 먹는 양도 적은 편이거든요.”

지노2의 출생 당시 몸무게는 428g. 지노보다 더 약골로 태어난 데다 6주가 지난 지금2.48kg으로 지노에 비해 성장 속도가 좀 느리다. 아무래도 먹는 양 때문인 것 같다는 게 연구팀의 추측이다. 지노는 6주 때 2.54kg이었다. 몸무게나 식성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지노2는 지노와 성장과정이 비슷하다.

지노2의 인큐베이터 내부 온도는 한여름인데도 30℃ 가까이 된다. 생후 첫 주에는 32℃로 유지하기도 했다. 앞으로 온도를 조금씩 더 낮출 예정이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외부 온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2시간 이상 일하면 현기증

지노와 지노2가 사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공간을 연구팀은‘아이솔레이터실(격리실)’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하면 간혹 약간 어지러운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격리실에 양압(陽壓)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양압이 걸리는 장치를 가동하면 공기가 안에서 밖으로만 나간다. 외부 공기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얘기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미생물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병원성 미생물을 다루는 연구기관에서는 이와 반대인 음압(陰壓)을 가하기도 한다. 음압 장치에선 안의 공기가 밖으로 못 나가 미생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우 연구관은 “격리실을 오가며 일하는 연구원은 계속해서 이곳에서 나오는 압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연구원들에게 한번에 2시간 이상은 머물지 말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지노와 지노2, 격리실 건물, 연구원들은 모두 3개월에 한 번씩 미생물 검사도 받는다. 병원성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돼지들은 백신을 맞아야 하고 나을 때까지 특수 SPF 돈사에 들어가지 못한다.

단 내인성 바이러스(PERV)는 예외다. PERV는 태어날 때부터 돼지의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 바이러스. 현재 기술로는 제거가 불가능하다. 바로 이 바이러스 때문에 이종장기이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PERV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정확
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병원균 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 역시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분유나 사료는 모두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으로 멸균해서 먹인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모든 물품은 자외선을 쪼이고 2시간 이상 소독약(모노퍼설페이트 화합물)에 담갔다 쓴다.

모노퍼설페이트 화합물 원액은 피부에 묻으면 허물이 벗겨질 정도로 강력하다. 인큐베이터나 사료용기, 실험도구처럼 소독이 필요한 물품이 대부분 스테인리스로 이뤄져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보통 철은 이 소독약에 닿으면 새까맣게 부식된다.

지노와 지노2는 곧 인큐베이터를 벗어나 낯선 환경을 만난다. 특수 SPF 돈사에서도 물론 소독과 위생관리는 철저히 이뤄진다. 지노와 지노2, 새로운 집에서도 건강하게 쑥쑥 자라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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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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