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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입맛 사로잡은 먹을거리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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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물고기는 엄밀하게 말하면 아가미를 갖고 물에서 사는 척추동물(어류)이지만 연재 '밥상에 오른 물고기'에서는 쭈꾸미, 꽃게, 오징어처럼 물에서 살면서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도 다룬다.


외국 사람 중에는 생김새가 이상하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오징어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오징어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획량 1, 2위를 다툴 정도로 대중적인 수산물일 뿐만 아니라 밥반찬이나 간식거리, 술안주로 가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말린 오징어를 그대로 뜯어 먹기도 하고,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오징어를 잘게 썰어 초장에 찍어 먹거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연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 동해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오징어순대는 오징어 속을 긁어내고 여기에 내장과 다릿살, 김치 등을 잘게 다져 넣어 삶은 요리로 독특한 모양과 풍미를 자랑한다. 이 밖에도 양념구이, 전기구이, 찜, 불고기, 젓갈, 덮밥처럼 오징어로 만들 수 있는 요리의 목록은 끝이 없다.

오징어 집안의 가계도

오징어는 두족강(頭足綱)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여러 동물의 총칭이다. 오징어 무리에는 몸길이가 2.5cm인 꼬마오징어에서 18m나 되는 대왕오징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종은 살오징어 (Todarodes pacificus)라고 보면 거의 틀림 없다.‘거의’라고 말한 이유는 살오징어와 비슷하게 생긴 몇몇 종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피둥어꼴뚜기라고도 불리는 살오징어는 가장 많이 잡히고 소비되는 종이다. 몸통이 둥그스름하고 지느러미가 삼각형이며 열 개의 다리가 머리 밑에 달려 있는 살오징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오징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살오징어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몸 크기가 훨씬 작은 종류는 흔히 꼴뚜기라고 불리는데, 대체로 화살꼴뚜기과에 속하는 종들이다.

지금이야 살오징어에게 대표 자리를 뺐겼지만 예전에는 오징어라고 하면 누구나 참오징어(Sepia esculenta)를 떠올렸다. 참오징어는 몸속에 뼈가 들어 있어 갑오징어라고도 불리며, 이름에 걸맞게 맛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참오징어는 살오징어와 달리 몸이 타원형이며, 지느러미가 몸 옆면을 따라 넓게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편의상 앞으로 살오징어를 오징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다리인지 팔인지 아리송해

영화‘괴물’에서 아버지(변희봉)가 아들(송강호)에게 다리가 9개인 오징어를 들이대며, 오징어 다리 하나를 떼어 먹었다고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물어 봐도 오징어 다리가 10개라는 사실쯤은 쉽게 대답한다. 그러나 사실 오징어 다리에는 여러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오징어가 속해 있는 두족강은 머리에 발이 있다는 뜻이고, 십완목은 팔이 10개란 뜻이다. 다리인지, 발인지, 팔인지 아리송하기만 한데, 지금은 ‘팔(腕)’이란 의견이 대세를 굳히고 있다. 오징어 팔 중 한 쌍은 나머지 네 쌍보다 훨씬 길게 발달해 있다. 이는 촉수 역할을 한다고 해서 촉완이라고 하며, 먹이를 사냥하는 데 사용한다.

오징어 수컷의 오른쪽 네 번째 팔은 생식팔이라고 불린다. 오징어 수컷은 생식팔로 몸속에 든 정자 주머니를 암컷의 몸속에 집어넣거나 정자를 저장하는 기관이 있는 암컷의 입 주변에 붙여 놓는다. 정자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정자가 난자를 만나 수정을 하면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오징어는 육식성으로 작은 물고기, 새우, 게 등을 먹지만 한편으로는 큰 물고기, 바다거북, 고래, 물범 등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오징어는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개발했다. 우선 오징어는 피부 밑에 있는 색소주머니를 조절해 카멜레온처럼 몸 빛깔을 변화시킬 수 있다. 흥분하거나 위험을 느끼면 순식간에 자신의 몸 빛깔을 바꿔 적에게 혼란을 준다.

오징어는 홍길동처럼 갑자기 적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능력도 있다. 평소에는 다리를 모아 앞으로 하고 몸통 가장자리에 있는 지느러미를 이용해 조용히 헤엄치지만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몸속에 머금었던 물을 한꺼번에 내뿜어 그 반동으로 튀듯이 움직인다. 이 동작이 너무나 재빨라 천적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효과를 낸다. 오징어 최후의 방어수단은 먹물이다. 먹물을 뿜어 물을 흐리며 몸을 숨길 뿐 아니라 흐릿한 형체를 만들어 적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동해 대표종, 서해에서 잡히는 사연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 연안의 밤바다는 오징어잡이배들이 밝힌 집어등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인간과 오징어의 쫓고 쫓기는 한판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어등 불빛은 그 자체가 오징어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고, 불빛을 보고 모여든 치어나 갑각류 새끼들도 오징어를 불러 모으는 데 도움을 준다.

오징어떼가 충분히 모여들고 나면 어부들은 배 아래로 낚시를 드리우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고패질’을 시작한다. 오징어낚시에는 형광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짜 미끼를 쓴다. 인공적으로 만든 이 미끼가 집어등 빛을 반사해 번쩍이면 호기심 많은 오징어가 이를 건드리다 수십 개의 바늘이 박혀 있는 낚시에 몸이 꿰여 올라오게 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전어지’에서 “어부들이 구리로 오징어 모양을 만들고, 여기에 갈고리를 다리처럼 달아 놓으면, 진짜 오징어가 이것을 보고 스스로 와서 갈고리에 걸린다”라고 기록한 바 있다. 이를 보면 가짜 미끼를 이용한 오징어잡이의 역사가 꽤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서해안을 다니다 보면 종종 집어등을 주렁주렁 매단 오징어배를 만나게 된다. ‘오징어는 동해’라는 공식에 익숙한 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서해안에서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해안의 오징어는 10여 년 전만 해도 전체 어획량 중 10위 안에도 들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제 멸치와 굴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징어가 서해안의 주된 먹을거리로 급부상한 셈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오징어를 냉수성 어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오징어는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온수성 어종이다. 여름에 많이 잡히는 이유도 오징어가 따뜻한 물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오징어의 어획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지구 온난화 현상과 관계가 깊다. 과거 동해안에서는 명태, 도루묵, 꽁치, 정어리 등 냉수성 어종들이 주로 잡혔다. 그러나 동해의 수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냉수성 어종은 사라지고, 대신 오징어와 같은 온수성 어종이 늘어나고 있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오징어가 최근 서해에서 잡히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해보다 수온 변화 폭이 큰 서해가‘따뜻한 바다’의 결과를 낚시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징어를 통해 신속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바다에 아열대성 물고기와 해파리가 넘쳐나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아온 수많은 냉수성 어종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걱정이다.


 
까마귀를 해치는 물고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징어란 이름을 순우리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오징어가 한자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이 오늘날 학계의 정설이다. 오징어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오적어(烏賊魚)라는 이름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사용돼 왔다는 사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오적어는 까마귀를 해치는 물고기란 뜻이다.

오징어가 왜 까마귀의 적인가.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오징어가 바다에 죽은 척하고 떠 있다가 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까마귀를 다리로 휘감아 물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우리 속담 중에도 “오징어 까마귀 잡아먹듯 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은 동양문화권에서 꽤 보편적이었던 모양이다.

이보다 더욱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옛 문헌을 보면 까마귀가 변해서 오징어가 된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렇게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변하는 것을 ‘화생(化生)’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사물 간의 유사성을 찾아내고 상징을 부여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문학 하는 사람들도 이런 작업에 익숙하다.

그러나 예전 사람은 스스로 부여한 상징에 실제적인 의미를 덧입혔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고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화생신화’가 더해진 결과 오징어가 까마귀를 잡아먹는다거나 까마귀가 변해 오징어가 된다는 생각이 탄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오징어는 까마귀와 어떤 점이 비슷할까. 오징어를 먹다 보면 까만 각질의 물체가 씹힐 때가 있다. 근육조직으로 둘러싸인 이 부분을 흔히‘오징어의 눈’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눈이 아니라 이빨이다. 이 부분을 잘 살펴보면 꼭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 오징어 배를 갈라 보면 시커먼 먹물이 튄다. 까마귀와 같은 색이다. 이 특징들이 바로 오징어와 까마귀를 연결짓는 고리다.

‘뱃속에서 새 부리와 까만 먹물이 나오는 것을 보니 까마귀를 잡아먹은 것이 틀림없구나’‘아, 까마귀가 오징어로 변하고 있구나’라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이태원 교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전통 문헌에 나타난 과학 관련 내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기행문식으로 정리한 ‘현산어보를 찾아서1~5’(청어람미디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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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원 서울 세화고 생물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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