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모기다. 다른 동물이 짝짓기 철에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면 몸을 화려하게 꾸미거나 힘을 과시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사랑을 표현하듯이 모기도 이상형을 만나면 '노래'를 부른다. 특이하게도 모기가 '노랫소리'를 내는 부위는 입이 아니라 날개다. 모기는 1초에 400~500번 날개를 저으며 노래한다.
지난 2월 초 미국 코넬대 신경생물학 및 행동학과 로널드 호이 교수팀은 이집트 숲모기(Aedes aegypti)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이들이 짝짓기를 할 때는 날갯짓 진동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재미있는 점은 암컷과 수컷이 날갯짓 진동수의 최대치를 서로에게 맞춘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암컷 모기는‘솔’음에서 반음 올린‘솔#’음과 비슷한 400Hz(헤르츠,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 수컷 모기는 ‘레#’ 음과 비슷한 600Hz의 진동수로 날갯짓을 한다. 그러나 짝짓기를 할 때는 암컷과 수컷 모두 1200Hz의 진동수(수컷이 내는 음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로 날갯짓을 했다. 이 숫자는 암컷이 만드는 날갯짓 진동수와 수컷이 만드는 날갯짓 진동수의 최소공배수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결혼에 골인한 암컷 모기는 다른 수컷과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암컷 모기는 짝짓기를 평생에 딱 한 번 한다. 그럼 알을 한 번만 낳는 것일까. 아니다. 모기는 평생 동안 알을 13번 정도 낳으며 한 번에 약 150개씩 낳는다. 암컷은 수컷의 정자를 수정낭에 담아뒀다가 산란기 때마다 꺼내 쓸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짝짓기를 한 암컷 모기는 수컷을 싫어한다.
사람은 모기의 세레나데를 들을 수 있을까. 호이 교수는 “모기의 짝짓기 소리는 암컷 모기가 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보다 진동수가 3배나 더 크기 때문에 잘 들린다”며 “사람에게는 사랑의 속삭임이 아니라 귀찮고 짜증나는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 옮기는 모기로 말라리아 퇴치한다?!
모기가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이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지만 모기에게 잔뜩 뜯기고 귀에서 윙윙대는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고 나면 모기란 생명체가 왜 존재하나 화가 나기까지 한다.
전문가들은 “모기를 잘만 활용하면 의학적, 과학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모기의 생태를 연구해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을 역으로 예방한다거나 모기 신체구조를 본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기를 활용해 퇴치할 수 있다고 기대되는 전염병은 바로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얼룩날개 모기(Anopheles sinensis) 암컷이 옮긴다. 이 병에 걸리면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이고 폐렴이나 저혈압 같은 합병증도 일으킬 수 있다. 해마다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은 100만~300만 명이나 된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조지 크리스토피드 박사팀이 지난 3월 5일‘사이언스’온라인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모기의 면역시스템을 활용해 말라리아를 완벽 퇴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모기가 가진 면역단백질 LRIM1과 APL1C는 말라리아균을 찾아 구멍을 뚫어 죽이는 TEP1 단백질을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모기 몸속에 침입한 말라리아균의 약 90%를 죽인다. 모기가 사람을 물면 살아남은 10%의 말라리아균이 사람의 몸속으로 침입해 병을 일으키는 셈이다. 크리스토피드 박사는 “모기의 면역시스템 효율을 높여 모기 몸속으로 침입한 말라리아균을 모두 죽이면 사람을 물더라도 말라리아가 전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기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암세포만 찾아 죽이는 특성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뉴욕대 의대 대니얼 메루엘로 박사팀은 “모기를 감염시키는 신드비스 바이러스에 형광 유전자를 넣고 생쥐 몸속에 주입해 바이러스의 위치를 추적한 결과 암세포에서만 발견됐다”는 논문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2004년 1월호에 실었다. 연구팀은 이 바이러스가 암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수용체에 쉽게 들러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첨단 태양전지 안에 모기 눈 있다?!
모기의 생태뿐만 아니라 생김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명품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 화학공학과 지흥 선 박사와 포틀랜드주립대 수학통계학과 빈 지앙 박사팀은 모기 눈을 본떠 태양전지를 개발해 지난해 2월 응용물리 분야 국제학술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온라인판에 실었다.
모기 눈은 사람 눈과 달리 각막이 매끄럽지 않고 작은 털들이 규칙적으로 나 있다. 그래서 모기는 각막에서 빛이 반사되지 않아 밤에 돌아다녀도 천적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은 햇빛을 받을 때 반사시키지 않고 최대한 흡수해 에너지로 사용하는 태양전지의 조건과 딱 맞아 떨어졌다. 연구팀은 모기 눈의 구조와 특성을 이용해 태양광을 흡수하는 비율을 높인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기판을 회전시키는 이유는 실리카 입자들이 일정한 배열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제작 방법을 ‘스핀 코팅’이라고 부르는데, 천천히 회전하는 상자 안에 구슬을 여러 개 넣고 흔들면 구슬들이 스스로 정렬돼 일정한 구조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각막에 일정한 배열로 잔털이 나 있는 모기 눈과 닮게 된다. 지앙 박사는“기존 태양전지에 비해 제작과정이 간단할 뿐 아니라 반사율이 2% 미만으로 우수하다”며“비용이 저렴
하기 때문에 조만간 상용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서는 2004년 모기 눈이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특성을 본떠 ‘슈퍼블랙’이라는 새로운 색깔의 섬유를 개발하려고 시도했다. 일반 섬유 표면에 마이크로미터(μm) 단위의 홈을 규칙적으로 파모기 눈 구조처럼 만들면 빛이 대부분 흡수되면서 섬유가 기존 검정색보다 더 진해진다는 원리다.
모기 침을 닮은‘아프지 않은 주사바늘’도 있다. 모기가 무는 순간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침이 크기가 8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밖에 안 되는 부드러운 키틴질로 세포에 상처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조지아공대 바이오분자가공학과의 마크 프로스니츠 박사팀은 지름 1~1000μm인 실리콘 마이크로 주사바늘을 개발해 ‘저널 오브 메탈스’에 발표했다. 프로스니츠 박사는 “이 주사바늘은 아주 가늘어 신경 말단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지 않다”며 “약을 세포 단위로 넣거나 펌프 시스템으로 연속적으로 넣어야 할 때 편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기 다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연구팀도 있다. 중국 달리안기술대 첸웨이 우 박사팀은 2007년 모기 다리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털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모기는 이 털 덕분에 물에 젖지 않고 표면장력이 생겨 물 위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자기 몸무게의 23배만 한 힘에도 저항해 벽에 오래 붙어 있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미국 물리학 학술지인‘APS저널’에 실었으며 모기 다리를 모방해 물 위에 떠다니는 나노로봇을 개발할 예정이다. 흡혈귀로 알려진 모기가 의학 연구를 돕는 일부터 태양전지, 나노로봇 같은 여러 발명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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