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사막.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단어다. 그러나 최근 ‘바다의 사막화’ 란 역설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주변 바다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갯녹음현상’ 을 일컫는 말이다.
‘백화(白化)현상’ 이라고도 불리는 갯녹음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왜 바다의 사막화라고 부르는지 실감이 난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보기 어려운 곳이 사막이듯이 갯녹음을 앓고 있는 바다 밑바닥은 해조류가 듬성듬성 물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 허연 밑바닥이 끝없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해안과 동해안 일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줄 알았던 갯녹음현상이 청정해역으로 알려진 독도 연안까지 진행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독도 앞바다에서 갯녹음 징후를 처음 확인한 것은 5년 전인 1999년이다. 당시 필자의 연구팀은 울릉도와 독도의 연안 생태계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울릉도 어촌계의 관계자는 “5년 전에 비해 전복 해삼 성게 소라 같은 해양 부착동물들의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필자는 울릉도 연안을 배로 한바퀴 둘러보고 난 뒤에야 그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중뿐만 아니라 연안의 암반은 하얀 띠로 둘러 싸여 있었고 암반 위에 붙어 있는 파래와 개도박 같은 해조류의 엽상체도 이미 색소가 탈색돼 제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지난해 여름, 필자의 연구팀은 독도의 갯녹음 현황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두번째로 독도를 찾았다. 예상은 했지만 독도 연안의 환경은 4년 전보다 더 악화돼 있었다. 1999년만 해도 독도 연안은 갯녹음이 막 진행되고 있는 초기단계였지만, 2003년 현장에서 수중탐사를 해본 결과 연안의 암반 위는 대부분 우윳빛으로 덮여 있었다.
수온상승이 주범
갯녹음현상이 어떻게 아직까지 비교적 청정해역을 유지하고 있는 독도 연안까지 확산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갯녹음현상은 연안 암반에서 자라나는 미역과 다시마 같은 엽상체가 넓은 거대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석회질로 구성된 무절산호조류가 흰색을 띄며 암반을 덮어 버려 바다가 사막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말 그대로 바다 밑에서 살던 해조류가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의 사막화가 진행되면 해조류의 엽상체 위에 알을 낳는 어류나 해조류를 먹고사는 해양부착동물인 전복 해삼 성게 소라 등이 먹이와 서식지를 잃게 돼 이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 한편 연안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결과는 어획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어민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갯녹음의 원인은 아주 복합적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온실효과로 인한 수온의 상승과 수중으로의 이산화탄소 유입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바닷물 속의 칼슘이온(${Ca}^{2+}$)이 고체인 탄산칼슘(CaCO₃)으로 바뀌면서 이를 섭취해 살아가는 무절산호조류가 잘 자라게 한다. 그밖에 해조류를 포식하는 해양동물의 지나친 증식이나 담수 오염원과 함께 바다로 유입된 곰팡이나 해양미생물의 병원성이 해조류의 서식을 방해할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메커니즘이 규명되지 않아 생태계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는 독도가 아직까지 울릉도에 비해 청정해역에 속함에도 갯녹음이 진행되는 것으로 봐서 온실효과의 결과인 이산화탄소 농도증가와 수온상승이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낮은 수온에서는 대기 중의 산소가 물에 더 잘 녹는다. 따라서 수온이 올라가면 용존 산소량이 줄어드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물 속의 수소이온(H₃${O}^{+}$)농도가 증가한다. 이런 변화는 바다 속에 녹아 있던 칼슘이온이 고체인 석회질, 즉 탄산칼슘으로 바뀌는 과정을 가속화시킨다.
한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바다로 유입되는 양도 늘어나 수중의 탄산이온(${CO₃}^{2-}$) 농도가 높아지는데, 이것도 탄산칼슘 합성을 촉진한다. 바다로 유입된 오염원도 탄산칼슘이 석출되는 과정에 부분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독도 연안을 조사했을 때만 해도 이러한 연안의 석회질화가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즉 갯녹음의 초기 진행과정이라 할 수 있는 일반 해조류의 감소와 무절산호조류의 증가가 관찰됐다. 무절산호조류의 경우 아직 고유의 색상인 분홍빛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울릉군청의 지원으로 실시된 현장 수중탐사에서는 연안의 암반 위는 대부분이 우윳빛으로 확산돼 있었다. 무절산호조류도 분홍색 색소가 탈색된 채 허연 석회질 덩어리로 변한 상태였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92km, 육지(포항)에서 약 2백67km 떨어진 우리나라 최동단에 위치한 섬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바위섬이 많이 포진해 있다. 독도의 지정학적인 특징과 변화가 심한 해상으로 인해 독도의 해산 식물에 대한 연구는 육지 연안이나 제주도에 비해 부진한 편이다. 1960년대 들어서야 독도의 해조류 연구가 학계에 처음 보고 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 이후 독도 연안의 해조류 생태의 변화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관찰돼 오고 있다.
이처럼 해조류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이들이 해양 생태계에서 1차 에너지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초 생물체로서 해양동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수의 영양염 등을 직접 흡수해 바다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막는 조절자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해양생물 자원이다.
연안 해조류 다양성 감소
지난해 조사 결과 독도 연안에서 발견된 해조류의 총종수는 45종이었다. 이 가운데 녹조류가 11 %, 홍조류가 60%, 갈조류가 29%로 홍조류의 종수가 훨씬 많았다. 종의 수는 채집시기나 채집장소, 채집방법, 해수의 환경 등에 따라 편차가 클 것이다. 따라서 한두차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조류 생태변화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행해졌던 조사자료를 검토해보면 공통적으로 홍조류의 종수가 가장 많았고 갈조류, 녹조류, 남조류의 순으로 종수가 줄어드는 유형을 보였는데, 지난해 결과도 이와 일치했다. 한편 종수는 1999년 이후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조사지점의 지리적 특징과 채집방법, 시기에 따라 종수에 변동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갯녹음현상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독도의 해조류 분포가 남해구나 제주구에서 분리된 독립구역으로 존재한다는 과거의 주장이 설득력을 점차 잃고 있다. 이 지역의 해조류 생태계가 바뀌고 종이 많이 감소돼 독도의 해조상이 남해구나 제주구와 유사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 연안의 해조류 생태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는 빛의 투과도와 강도에 따라 해조류가 고유한 색상을 띠게 된다. 빛이 많이 투과하는 얕은 바다에서는 육지식물의 잎과 색이 비슷한 녹조류가 우점해 띠를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녹조류로는 파래와 갈파래, 잎파래가 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긴 파장의 빛이 제대로 투과하지 못하므로 좀더 아래쪽에는 주황색과 노란색을 주로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홍조류가 서식한다. 김, 개도박, 우뭇가사리 등이 대표적인 홍조류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갈수록 짧은 파장, 즉 청색의 빛을 흡수하는 미역과 다시마 같은 갈조류가 우점을 하게 된다.
즉 연안에서 밑으로 내려감에 따라 해조류의 우점종이 녹조류에서 홍조류를 거쳐 갈조류로 변한다. 한편 해조류의 서식 환경은 태양광선뿐 아니라 영양염과 수온 등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생육조건이 돼 건강한 연안 생태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번 조사 결과 밝혀진 우점종, 즉 독도 연안 해조류를 대표하는 종류를 살펴보자. 먼저 녹조류로는 잎파래와 대마디말류, 청각이 있었다. 홍조류는 게발류와 혹돌잎, 산호말류, 서실류, 우뭇가사리, 쇠털붉은실이 우점했다. 갈조류는 대황과 감태, 모자반류가 주를 이뤘다. 한편 독도 연안의 대표적인 다년생 갈조류인 대황 군락 아래 수심 20m 부근에서 감태가 거대 군락을 이루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갯녹음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이들 해조류의 서식밀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암반 위가 석회질로 덮임에 따라 뿌리에 해당하는 부착지(附着枝)가 잘 발달한 대황이나 감태, 모자반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착동식물이 착생하지 못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갯녹음으로 해양 생태계의 조성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로 인한 오염도 한몫
한편 사람들의 활동으로 인한 오염도 독도 연안 갯녹음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독도 연안은 경사가 가파른 암반이 해수면에 연결돼 있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리적 환경이다. 그러나 최근 어민들의 잦은 출 입항과 독도 경비대원들의 생활 필수품 운반을 위한 선박 왕래, 선박에서 방류되는 오·폐수와 기름의 유출, 이들의 생활 오수로 독도 연안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게다가 파도로 인해 먼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쓰레기도 골칫거리다.
지난해 조사지 3곳 중에서 동도와 서도 사이, 선착장에 가까운 지점이 특히 갯녹음현상이 심각했다. 즉 지구온난화란 자연요인에 인위적인 환경오염까지 겹쳐 사태를 더 악화시킨 셈이다.
지금 독도에서 문제가 되는 갯녹음현상의 근본원인이 되는 수온상승은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지구전체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라 당장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독도에서 방류되는 오염원을 줄이기 위해 기본정화시설을 설치하거나, 입도 인원을 최대한 제한하고, 독도 인근 해역에 접근하는 어업 선박에서 유출되는 기름 및 오·폐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인위적인 오염원이 제거된다면 아직까지 울릉도에 비해 비교적 청정해역이라 할 수 있는 독도 연안의 자생력으로 바다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 생태계를 잘 보존하는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은 노력은 독도를 지키려는 우리들이 해야할 몫이다. 이를 위해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자생적인 연안 생태계 보존 방법을 강구하면서 독도에 대한 학술조사가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엽상체
해조류는 육상식물처럼 줄기, 잎, 뿌리 기관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지 않고 영양분과 물을 수송하는 관이 없다. 대신 육상식물의 잎과 비슷한 모양의 엽상체가 있는데 잎과 마찬가지로 엽록소가 있어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무절산호조류
마디가 없는 산호초 모양의 홍조류로 혹돌잎류 등이 있다. 수중 탄산칼슘이 증가하면 성장이 활발해져 다른 해조류의 자리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