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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모델앙상블로 날씨 변덕 잡는다

'나비효과' 극복하는 기상예보 기술

“브라질에 있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현상이 결국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 개념은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측하기 힘든 이유가 지구 어디선가 일어난 작은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나비효과는 훗날 카오스이론의 토대가 됐다.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기온이 상승하며 기후가 변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이 약 1.7℃ 상승하며 예전과 다른 패턴의 기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7월 장마철 강수량이 줄고 장마가 끝난 8월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더니 올해 7월 찾아온 장마는 전국 곳곳에 집중호우를 퍼부으며 예전의 강수기록을 갈아치웠다.

미분방정식으로 ‘푸는’ 날씨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비가 반가울 리 있을까. 지난 7월 한 달 동안 한반도를 찾아온 게릴라성 호우에 우산 대신 신문지나 가방으로 비를 막은 채 갈 길을 재촉하거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사람이 많았다.

한반도 날씨 변동 폭이 커져 기상예보 기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기상청에서는 기상예보모델로 날씨를 예측한다. 기상예보모델은 대기운동과 기상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미분방정식으로 표현한 일종의 프로그램인데, 이를 슈퍼컴퓨터가 풀어낸다.

이때 미분방정식을 풀기 위해 입력해야 할 수치들을 초기입력장이라고 한다. 초기입력장에는 기상위성이 분석한 구름영상과 기온, 습도, 일조시간, 일조량, 항공기가 관측한 대기 상태, 선박이나 해양부표가 수집한 수온 등의 데이터가 있다. 전국의 유·무인지상기상관측소에서는 기온, 습도, 강수량, 바람, 하늘상태 등의 기상요소를 3시간마다 관측한다. 심지어 인간의 경제활동과 태양의 활동까지도 초기입력장에 포함된다. 날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고려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날씨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표면으로부터 약 70km까지의 기상을 관측한 ‘고층기상관측’ 데이터다. 우리가 사는 지상의 날씨는 상층 대기의 영향을 받는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려면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고층기상관측에는 라디오존데가 쓰인다.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 기체가 든 풍선에 관측 장비를 매달아 올려 보내 고층기상을 파악하는 장치다. 라디오존데는 대기 상층의 기압, 고도, 기온, 습도 같은 데이터를 수집한 뒤 소형의 무선발신기를 통해 지상의 관측소로 보낸다. 최근에는 라디오존데에 상층 대기의 풍향과 풍속을 관측하는 장비인
‘라디오윈드’를 결합한 레이윈존데도 많이 쓴다.

지구 덮는 3차원 그물로 비 샐 틈 없앤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는 지구 전체를 동서남북과 연직방향의 3차원으로 나눈 격자 각각에서 기온이나 강수, 습도, 풍향 같은 물리량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할지 계산한다. 격자는 직육면체나 삼각기둥 모양으로 분포하며, 격자 간격을 좁히면 예보의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그물코가 좁은 그물을 사용하면 작은 물고기까지 빠트리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처럼 격자 간격을 좁히면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요소까지 빠트리지 않고 계산할 수 있어 각 지역에 더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계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크게 늘어난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격자 간격을 20~30km까지 좁힐 수 있다. 그런데 격자 간격을 20km까지 좁히면 슈퍼컴퓨터로 하루 날씨를 예상하는 데 짧게는 4~5시간에서 길게는 하루가 걸린다. 정확성만 좇다 보면 신속함이 생명인 일기예보 정보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상청은 3일 정도의 단기예보를 할 때 격자 간격을 40~50km로 설정한다.



2주일보다 먼 미래를 예측하는 장기예보에는 변수가 더 많아 계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격자 간격을 110km로 넓힌다. 그 대신 기상청은 각 지역마다 격자 간격을 다르게 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심지는 격자 간격을 조밀하게 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지나 바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주변지역은 격자 간격을 넓히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정확히 기상예보를 하는 일은 어렵다. 지난 수십 년간 기상예보모델이 계속 발전해왔지만 기상현상 중에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분방정식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수많은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기후예측과 윤원태 과장은 “기상현상에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인 선형적인 요소가 85%라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인 비선형적인 요소가 15%”라며 “비선형적인 요소에서 오차를 줄일 수 있는 기후예보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는 격자 간격을 좁혀 계산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더 빠른 슈퍼컴퓨터도 필요하다.

한 달 뒤 날씨 예측하는 비결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한 달 뒤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나비효과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상예보의 오차는 커진다. 2주일 뒤 또는 한 달 뒤의 날씨를 예측하는 장기예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하지만 기상청은 기후예보모델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단기예보의 정확성뿐 아니라 2주일 이상의 장기예보 정확성도 높일 수 있는 멀티모델앙상블(MME) 기법을 개발했다. 윤원태 과장은 “기상청은‘세계 기상기구(WMO) 의 장기예보 멀티모델앙상블 선도센터’로 선정돼 2007년 7월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43개 국가에 장기예보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러시아 등 장기예보기술이 뛰어난 나라 12개국 가운데 한국이 선정된 만큼 우리 기상청의 장기예보기술을 세계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MME 기법은 세계 각국에서 쓰는 기후예측모델들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보완한 최신의 장기예측기술이다. 윤 과장은 “여러 가지 모델 가운데 지금까지 예보의 정확성을 바탕으로 가장 잘 맞는 모델에 가중치를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난 수십 년간 모델이 예측한 결과와 실제 날씨를 비교해 특정 지역에서 A라는 모델의 정확도가 높다면 그 지역의 날씨를 예측할 때는 A모델에 가중치를 줘 계산하는 방식이다. 모델 자체가 경험을 쌓으면 스스로 발전하는 진화 알고리즘도 도입해 정확성을 높였다. MME는 2주일 뒤 미래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미분방정식을 푸는 과정이 단기예보보다 더 많이 포함된다.

대기는 경계가 없어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다른 지역의 날씨에 영향을 미친다. MME를 이용하면 한층 변덕스러워진 한반도의 여름 날씨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윤 과장은 “우리 기상청이 사용하는 기후예측모델 하나로 예보하는 것보다 MME를 이용할 경우 더 정확히 여름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초 기상청은 기상예보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올 여름 한반도에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 발달한 찬 기단이 계속해서 한반도 상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그 아래로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불어오는 시기가 겹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측대로 한 달 내내 게릴라성 호우가 쏟아졌다. 세계 각 지역의 기상현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변덕스러운 한반도 날씨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길이다.
 
게릴라성 호우 잡는 이중편파레이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많은 비를 뿌리는 게릴라성 호우가 늘고 있다. 기상청은 7월 장마가 끝나더라도 올해 역시 예년처럼 8월에 게릴라성 호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점차 횟수가 증가하는 집중호우를 잡으려면 도플러레이더 방식의 기존 단일편파레이더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이중편파레이더가 필요하다.

단일편파레이더는 비나 구름에서 부딪혀 돌아오는 신호의 세기인 ‘반사도’로 강우량을 계산한다. 수평파만을 보내 돌아오는 신호를 수신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강우량 예측에 오차가 크다. 구름 형태를 층운형(수평 모양)으로 고정해 놓고 구름이나 입자 모양에 관계없이 강우량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릴라성 호우는 적운형(수직 모양) 구름에서 많이 내린다.








이에 비해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연구가 시작된 이중편파레이더는 전파를 수평파와 수직파로 동시에 보낸다. 물방울의 수직축과 수평축 길이를 알아내 입자의 크기와 모양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강수량을 산출해 게릴라성 호우와 일반 강수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위상차는 레이더의 오차나 기타 잡음 같은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아 더 정확히 강수량을 예측할 수 있다. 그 이외에 수평파와 수직파의 교차상관계수를 이용하면 강수의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 교차상관계수는 값이 높으면 신뢰도가 높다는 의미인데, 수년간 강수형태별로 값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잡음이나 메아리의 교차상관관계계수는 0.7 이하, 이슬비나 약한 강수는 0.9 이하, 우박은 0.9~0.95, 집중호우는 0.95 이상이다.

이처럼 이중편파레이더를 이용하면 단일편파레이더에서는 구할 수 없는 새로운 변수를 얻어 강수형태를 정확하게 구분해 강수량을 산출할 수 있다. 게릴라성 호우의 감시는 물론 짧은 시간에 발생하는 악(惡)기상을 예측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중편파레이더는 지형 때문에 생기는 메아리, 이상전파와 같은 잡음의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도 지난 7월 1일부터 차량에 설치한 이동식 이중편파레이더를 도입
해 시험운영을 시작했다. 장비 운영의 안정화 기간을 거치고 난 뒤에는 강수구름을 추적하면서 관측해 좀 더 정확하게 강수구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011년 백령도 기상레이더를 최첨단 이중편파레이더로 교체할 계획이며 추후 다른 곳도 점차 이중편파레이더로 바꿔 나갈 방침이다. 게릴라성 호우와의 ‘게릴라전’을 끝낼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도플러레이더 : 파원과 관측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는 파동의 진동수가 더 높게, 거리가 멀어질 때는 더 낮게 관측되는 도플러 효과를 이용한 레이더다.


이동인 교수는 부산수산대를 졸업한 뒤 일본북해도대에서 지구환경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부경대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환경대기연구실에서 레이더기상학과 구름 및 강수의 미세물리학을 연구한다. ‘편파파라미터 차등위상을 이용한 편파레이더 강수감쇄 보정방법’에 대한 특허도 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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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 이동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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