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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주는 눈을 감을 때 더 잘 보인다

어린왕자의 우주일기➊



천문학자인 내게 사람들이 종종 우스갯소리를 섞어 말한다. 별 볼일 있는 분이시네요. 그럼 나는 웃고 만다. 1996년 햐쿠타케라는 혜성이 지구에 매우 가까이 다가온 일이 있었다. 4km 크기를 가진 이 혜성이 만일 지구를 강타한다면, 지구는 6500만년 전 소행성과 충돌해 공룡을 포함한 대다수 생물이 멸종한 것과 같은 절멸을 다시 겪게 되었을 수도 있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거의 마치던 나는 자연히 이 혜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 아내에게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흥미로운 사건을 설명해 주고도 싶었다.

우리 부부는 차를 타고 근처의 어두운 지역으로 갔다. 이 혜성은 북극성 근처에 있다고 하고, 망원경 없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다고 해 용기백배 하여 나갔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 별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정말 창피한 것은 내가 북극성도 확실하게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별이 띄엄띄엄 있는 도시에선 쉬웠는데…. 결국 포기하고 처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다가 근처 대학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혜성관측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천문학도임을 숨기고, 달보다 더 큰 혜성의 꼬리에 감탄을 하며 햐쿠타케 혜성을 감상하였다.

나는 공상의 왕

나는 천문학자지만 사실 별 볼일이 별로 없다. 내 연구가 대부분 이론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때는 하도 공상을 많이 해 나 스스로 ‘공상의 왕’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잠깐 공부를 하면 꼭 그만큼 공상을 하곤 했다. 우주 공간은 무엇일까, 진공도 에너지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이런 것들을 알게 될까. 그렇게 되려면 내 일, 그리고 내년엔 무엇을 해야 할까. 공상의 날개짓은 흥미진진하고 한이 없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도 있다. 보는 것이 그렇게 확신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과 우주가 꼭 눈을 떠야만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은 빛이 그 물체에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은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전파 등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빛의 영역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에 가장 흔한 수소기체의 존재를 알리는 전파도, 블랙 홀의 증거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엑스선도 우리 눈은 볼 수가 없다. 우주에 있는 물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암흑물질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니, 이럴 때 눈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렇게 제한된 정보만을 볼 수 있는 우리 눈으로 우주와 삶 전체를 지각할 수 있을까.

난 가끔 내 학생들에게 말한다. 최소한 내 우주는 눈을 감을 때 더 잘 보인다고.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떻게 뜨거운 초기우주에서 물질의 근원이 만들어졌을까. 식어가는 우주 속에서 어떻게 은하와 별들이 태어났을까. 별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것들의 순환과정을 알 수 있을까. 완벽한 진실은 결코 알 수 없겠지만 과학과 이성의 눈으로 상상이 가능하고, 이는 억지가 아닌 논리를 통해 검증되어 간다. ‘실락원’과 ‘실명의 노래’로 유명한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실명을 하게 된 뒤에야 비로소 신의 뜻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현대사회는 눈을 자극하고 눈에 호소한다. TV에는 스토리보다 눈을 자극하는 영상이, 책에는 글씨보다 그림이, 사람간의 관계에는 느낌보다 드러난 것이 더 중요하게 대두되곤 한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진실을 가릴까 염려된다. 감은 눈에 맺힌 우주도 보이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나도 별 볼일 있는 사람이다.

2012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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