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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올 초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한 사나이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벤자민 버튼.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연기한 이 사나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젊어졌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세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역분화 줄기세포’다. 시간이 갈수록 이 세포 역시 어려진다. 과학자들은 왜 세포의 시계를 굳이 거꾸로 되돌려 놓으려고 할까. 어려진 세포가 갖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발생 초기로 되돌린 역분화 줄기세포

2006년 8월 세계 생물학계와 의학계가 술렁였다. 일본 교토대 신야 야마나카 교수팀이 세포생물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한 한 편의 논문 때문이다. 이 논문은 수년 간 큰 진전이 없었던 줄기세포 연구에 명확한 전환점을 제시했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생쥐의 체세포에 5가지 유전자(Oct3/4, Sox2, c-Myc, Klf4)를 삽입해 발생 초기 단계의 어린 세포로 되돌려 놓았다.



생성 초기의 세포는 어떤 조직으로도 자랄 수 있는 능력(전분화능)을 갖고 있다. 잘 알려진 배아줄기세포가 바로 이런 세포다. 줄기세포는 발생과정을 거치면서 몸속에서 수많은 신호를 받아 특정 조직의 세포로 분화한다.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어린이가 성장해 특정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체세포는 이미 발생이 끝난 상태. 야마나카 교수팀은 사람으로 치면 이미 성인이 된 세포를 다시 신생아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발생 초기 단계로 되돌아간 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유사한 능력을 갖는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신생아 단계로 되돌아간 세포가 실제로 다시 신경이나 연골, 근육, 지방 등 여러 세포로 분화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분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고 해서 ‘역(逆)분화 줄기세포’라거나 배아줄기세포처럼 전분화능을 갖도록 유도했다고 해서 ‘유도전분화능 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연구는 아직 생쥐에서 머물러 있었다.

사람 배아줄기세포 대체하나

이듬해 겨울 드디어 사람의 역분화 줄기세포가 나왔다. 그것도 미국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말이다. 11월에는 야마나카 교수팀이 ‘셀’에, 12월에는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제임스 톰슨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각각 사람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생쥐 때와 같은 방법을 썼고, 톰슨 교수팀은 일본팀과 다른 4가지 유전자(Oct4, Sox2, Nanog, Lin28)를 사용했다.

이들 연구결과가 발표된 뒤 많은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역분화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를 만든 이언 윌머트 박사도 “이제 줄기세포 연구의 흐름은 역분화”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결국 체세포만으로 만든 배아줄기세포와 다름없다. 배아줄기세포는 만드는 데 적어도 수백 개의 난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생명윤리 문제가 뒤따른다. 사람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핵이 제거된 난자에 체세포를 주입해 만든 수정란에서 추출하는 체세포 복제 방식이 유일했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체세포 복제 방식과 달리 생명윤리에서 자유로운 배아줄기세포라는 점에서 과학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과학자들은 당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심장질환 등 난치병 환자에게서 체세포를 채취해 역분화 줄기세포로 만든 다음 필요한 조직의 세포로 분화시켜 원하는 부위에 이식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자 자신의 세포를 쓰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도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미국 연구팀은 역분화를 유도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체세포에 삽입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사용했다. 바로 이 바이러스가 인체에 유해할지도 모른다. 또 삽입된 유전자가 역분화와 무관한 다른 유전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지난 3월 역분화 연구에 진전이 있었다. 영국과 캐나다, 미국 연구팀이 바이러스 없이 역분화를 유도해 ‘네이처’ 3월 1일자와 ‘셀’ 3월 6일자 온라인판에 각각 발표했다. 트랜스포존 같은 특수한 유전자 조각에 역분화 유전자를 담아 체세포에 넣은 방식이다.
 
트랜스포존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작은 유전자 조각.


그러나 안전성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차의과학대 의생명과학과 황동연 교수는 “트랜스포존이 체세포 안에서 제거되지 못하고 일부 남아 다른 유전자의 기능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연구팀, 역분화 기술 업그레이드

두 달 뒤. 다음 진전은 한국에서 이뤄졌다. 차병원 통합줄기세포치료연구소가 역분화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을 이용해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줄기세포 분야의 국제학술지 ‘셀 스템셀’ 5월 28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역분화를 유도하는 4개 유전자(Oct4, Sox2, Klf4, c-Myc)를 실험용 세포에 이식한 다음 여기서 만들어진 역분화 단백질을 추출했다. 이를 사람 체세포(피부세포)에 넣은 결과 역분화가 일어났다. 결국 외부 유전자를 넣어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나 처음부터 단백질을 넣어주나 같은 효과를 낸 것. 차병원은 “환자 체세포로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필요한 장기의 세포로 분화시켜 이식하는 세포치료제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역분화 기술이 줄기세포 연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장밋빛 미래’만을 예견하기엔 이 기술도 한계가 있다.

먼저 역분화 줄기세포만으로는 급성 질환 치료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환자 체세포에서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만 1달이 걸린다. 이를 충분한 양만큼 증식시키는 데 3달, 원하는 조직 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또 1달이 간다. 차의과학대 의생명과학과 정형민 교수는 “몸에 이식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다 보면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역분화 줄기세포는 다른 치료의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벤자민 버튼의 일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운명 때문에 연인과 이별하고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했다. 역분화 줄기세포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자연스러운 발생과정을 인위적으로 역행하게 만든 세포가 어떤 문
제를 일으킬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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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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