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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탄생 울버린

영웅전설 엑스맨 시리즈의 시작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2000년부터 영화로 제작돼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엑스맨’ 시리즈 번외편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그동안 ‘엑스맨’ 시리즈가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돌연변이, 돌연변이와 돌연변이 간의 갈등을 다뤘다면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제목 그대로 울버린의 탄생 배경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영화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스펙터클한 액션이 가장 큰 볼거리이며 액션 장르에서는 드물게 드라마적 내러티브를 갖춘 수작이기도 하다.

돌연변이의 유래

영화 초반, 로건은 다른 돌연변이들과 함께 특수 임무를 띠고 아프리카에 간다. 권총을 악기처럼 다루는 제로(다니엘 헤니 분), 칼을 선풍기처럼 돌리는 데드폴 등 막강한 돌연변이들의 위력에 사람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면서 스트라이커 대령의 특수 부대는 명성을 떨친다. 한편 형 세이버투스가 헤어날 수 없는 광기의 포로가 돼 살육을 즐기는데 비해 계속되는 살육에 염증을 느낀 동생 로건이 팀을 이탈하면서 돌연변이 형과 아우는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적이 되고 만다.

엑스멘 시리즈를 관통하는 소재는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인간이다. 돌연변이란 유전정보가 기록된 DNA가 전자기파, 방사선, 화학물질. 외부/내부 유전자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변하는 것을 말한다.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그 유전자에 의해 생산되는 단백질에 변화가 생기고 피부색, 얼굴 모양과 같은 표현 형질이 달라진다.

돌연변이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다윈이다.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는 모든 생물체는 신이 창조한 모양 그대로 살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다윈은 모든 생물체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돌연변이를 만들고 그 중에서 환경(자연)에 적합한 생물체가 선택적으로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자연선택설)을 주장했다. 이러한 다윈의 생각은 서구 사회가 신 중심에서 과학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DNA수준의 돌연변이가 피부색 등 작은 형질 변화를 초래하는 데 비해 염색체 수준에선 비교적 큰 변화가 나타난다. 염색체(chromosome)란 세포핵 속에 있는 유전정보물질을 말하며 초파리가 8쌍,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이 23쌍의 염색체는 약 30억 개의 DNA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염색체에 생긴 변화가 작더라도 DNA수준에서는 큰 변화에 해당한다. 염색체 변화에서 기인하는 돌연변이는 대개 몸의 기능이 저하된 경우가 많다. 여성염색체 ‘X’가 하나 적은 터너증후군에 걸리면 작은 키에 목이 짧고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며 수명도 짧다.

염색체가 보통 사람보다 하나 더 많아 47개인 경우를 ‘트리소미’(trisomy, 세염색체증)라고 한다. 특히 21번 염색체가 많은 것이 다운증후군이다. 신생아 때부터 둥글고 납작한 얼굴에 코가 낮은 것과 같은 특징적인 안면 기형이 관찰되며, 지능이 낮은 데다 성장 장애도 나타난다. 남성이 여성염색체 ‘X’를 하나 더 가졌을 경우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되는데 큰 키에 여성형 유방을 가지며 무정자증, 지능 박약을 보인다.

반면 남성이 남성 염색체인 ‘Y’를 하나 더 가진 ‘XYY증후군’의 경우 키가 큰 것 외에는 별다른 신체 질환은 없지만 지나치게 남성적이라 슈퍼 남성유전자라고도 불린다. 한때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폭력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범죄유전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는 상태다.

뼈도 이식할 수 있는가

영화 중반, 6년 동안 산속에 묻혀 살던 로건은 스트라이커 대령의 음모에 빠져 세상에 나온다. 로건은 형 세이버투스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목숨을 건 실험에 동참하기로 한다. 스트라이커 대령이 로건에게 제안한 실험은 뼈에 광물질을 이식해 더욱 강력한 돌연변이로 재탄생시키는 것. 수술대에 누운 로건 앞에 수십 개의 전기드릴이 등장해 뼈에 구멍을 뚫으면 액체처럼 생긴 광물질이 뼈 속에 이식되기 시작한다. 로건이 엑스맨 울버린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영화처럼 광물질을 이식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몸에 뼈를 이식하는 일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흔한 허리 디스크 수술에서도 자기 골반 뼈를 떼어내 척추 주변에 넣어준다. 그래야만 떼어낸 뼈가 아교 역할을 하면서 부서진 뼈들이 잘 붙는다. 뼈 이식은 치과에서도 많이 사용되는데 치아를 빼고 곧바로 임플란트를 심거나 잇몸이 많이 손상됐을 경우에 특히 필요하다.

뼈 이식과 골수 이식을 혼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뼈 이식은 뼈의 일부를 떼어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뜻하고 골수 이식은 뼈 속에 있는 혈구 세포를 끄집어내 다른 사람의 몸에 주입하는 것을 말한다. 혈구 세포가 액체 상태이긴 하지만 영화처럼 직접 뼈에 구멍을 뚫고 주입하지는 않는다. 골수 이식의 경우 백혈병 환자와 같은 ‘수여자’는 편안히 누운 상태에서 링거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혈구 세포를 받는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

로건(울버린)의 몸에 광물질이 들어가면서 체온은 42℃까지 상승하고 심장박동은 분당 200회, 혈압은 260/180까지 오른다. 인간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로건은 꿋꿋이 버텨낸다. 초능력자 엑스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날지 못하고 산소통 없이는 물속에서 5분 이상 버틸 수도 없다. 남극을 정복하고 우주를 여행하는 것도 과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영화적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체온은 항상 37℃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40℃가 넘으면 의식을 잃고 쓰러지며 42℃부터는 단백질 변성이 시작된다. 엑스맨이 버틴 42℃ 체온은 정상인이라면 열사병으로 사망할 수준이라는 얘기다. 열사병은 더운 장소에 오래 노출된 뒤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는 병이다. 치사율이 50%를 넘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응급질환이다.

반대로 얼음물에 빠지거나 추운 날씨에 오래 노출되면 저체온증이 생긴다. 흔히 뇌혈관
질환, 갑상선기능 저하증, 심한 감염,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등 체온을 떨어뜨릴 만한 내재 요인이 몸에 있는 경우가 많다. 체온이 35℃ 이하이면 생리활동이 느려지기 때문에 맥박·호흡·혈압이 억제된다. 저체온증을 치료하려면 몸을 천천히 따뜻하게 해 체온 상승 속도가 시간 당 0.5~1℃가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보다 체온을 빨리 높이면 심혈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심장박동은 흔히 정상 성인의 경우 1분에 평균 60~90회이고, 혈압은 120/80이하가 정상이다. 뜀박질을 하거나 흥분하는 경우 심박수가 빨라지고 혈압이 오르는데 심박수는 아무리 빨라도 최대 심박수(220-본인나이)를 넘을 수 없다. 예를 들어 25세인 사람은 최대 심박수가 분당 195회라는 얘기다. 심박수가 무한정 빨라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심장이 너무 빨리 움직이면 피를 제대로 순환시키지 못하고, 그 결과 운동 능력을 잃기 때문이다.

고혈압 환자라고 해도 혈압이 220/120보다 높은 경우는 드물다. 혈압이 이보다 높으면 ‘악성고혈압’이라고 부르며 위험한 상황으로 본다. 몇 시간 안에 응급실에 가 혈압이 높은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영화 속 돌연변이 현 기술로는 ‘불가능’

영화 후반, 울버린으로 재탄생한 로건은 강철보다 센 손톱의 힘으로 스트라이커 대령의 본거지를 기습한다. 천하무적 울버린의 등장에 스트라이커 대령은 그를 제압할 유일한 병기인 ‘웨폰 XI’를 내세운다. 웨폰 XI는 돌연변이들의 장점만을 따서 만든 새로운 돌연변이로 막강한 위력의 소유자다.

울버린은 형 세이버투스와 함께 웨폰 XI 와 맞서 싸우지만 전세는 점점 불리해진다. 울버린이 객관적인 열세를 뒤집고 싸움에 승리할 수 있을지 여부를 둘러싸고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를 더해간다. 그렇다면 과연 웨폰 XI와 같은 돌연변이가 의학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유전자 연구로 씨 없는 수박이 만들어지고,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이 재배되는 것과 같이 어쩌면 현실세계에서도 언젠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돌연변이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유전자 연구 수준은 동물을 복제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유전자 위치와 염기서열이 밝혀졌지만 어떤 유전자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의학 기술로는 웨폰 XI와 같은 돌연변이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다윈의 지적처럼 돌연변이는 늘 생기게 마련이고 그 돌연변이가 생존해 종족을 번식하는 것은 결국 자연의 선택이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그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7년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실 교수로 재직중이다.

편집자주
‘영화 속 의학’은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영화 속 의학’을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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