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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다 다른 축구화의 비밀, 스터드

폭풍 같은 질주. 현란한 발놀림. 드넓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수비수 두세 명쯤은 거뜬히 제치는 축구 선수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공을 차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마음만 프리미어리그에 있을 뿐, 몸은 굼뜨고 미끄러지기까지….
나도 축구화를 신으면 프리미어리그 선수처럼 잘 뛸 수 있을까?

아나운서 안녕하십니까.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여기는 세기의 대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경기가 열리는 영국 런던의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입니다.
오늘 미드필더로 박지성 선수가 선발 출전했군요. 최전방 공격수는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 선수입니다.
해설위원 웨인 루니 선수. 돌파력이 참 좋은 선수죠. 보시다시피 민첩하고 빠릅니다. 최근 막대형 스터드가 박힌 축구화를 신으면서 발놀림이 한층 가벼워졌어요. 오늘 경기에서 활약이 클 것 같은데요.
아나운서 하지만 첼시의 왼쪽 수비라인을 맡고 있는 애슐리 콜 선수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거든요.
박지성 선수에게 바싹 따라붙어 루니에게 어시스트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해설위원 지금 보시면 콜 선수가 신은 축구화에 스터드가 6개입니다. 순발력이 좋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우리 박지성 선수도 오늘은 특별히 FG형 대신 SG형 축구화를 신었습니다. 5월의 부드러운 잔디를 대비해서요.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선수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유니폼에서 축구화까지 옮아갔다. 그런데 왜 유니폼은 똑같이 입어도 축구화는 선수마다 다르게 신는지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같은 선수라도 경기마다 다른 축구화를 신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트는 축구화 바닥에 박힌 ‘징’. 앞으로는 축구경기를 볼 때 선수들의 신발을 유심히 보자. 모든 해답은 거기에 숨어 있다.

축구화라고 하면 누구나 바닥에 징이 달린 운동화를 떠올린다. 징의 정식명칭은 ‘스터드’(stud). 축구화의 상징 같은 존재다. 스터드는 선수들이 경기 중에 미끄러지지 않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바닥과 신발 밑창 사이 마찰력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운동화는 밑창을 고무 재질로 만들어 마찰력을 높인다. 마찰력은 우리가 걷거나 뛸 때 신발과 지면 사이에 작용하는 힘으로, 너무 작으면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미끄럽고 너무 크면 발목이나 무릎에 부담을 준다.

푹신한 잔디엔 높은 스터드
경기장은 바닥에 잔디가 깔렸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맨땅일 수도 있다. 같은 잔디구장이라도 계절이나 잔디의 품종, 또 그날의 날씨에 따라 경기장 바닥의 마찰력은 달라진다. 같은 도로라도 비가 올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마찰력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조건에 따라 축구화 스터드 종류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터드 모양, 높이, 재질에는 차이가 있다.

길고 푹신한 잔디에서는 13~15mm 높이의 금속 재질(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 스터드가 앞쪽에 4개 뒤쪽에 2개 박혀 있는 SG(Soft Ground)형 축구화를 신는다. 강한 금속 재질을 사용해 스터드 6개만으로 체중을 지탱할 수 있고, 스터드가 무겁고 높아서 땅에 깊이 박히므로 잔디가 부드러워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반면 짧고 거친 잔디에는 FG(Firm Ground)형 축구화가 적합하다. 축구화 밑창에는 10mm 정도로 짧은 폴리우레탄 스터드가 12~13개 정도 박혀 있다. 거친 잔디는 이미 바닥의 마찰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깊이 박힐 필요가 없어 스터드 높이가 낮고 재질은 가벼운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박지성 선수가 지난 4월 1일 북한전에서 신었던 축구화도 FG형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잔디보다는 맨땅에서 축구를 더 많이 한다. 맨땅에서 신는 축구화는 HG(Hard Ground)형으로 따로 구분돼 있다. HG형은 스터드 개수는 FG형과 유사하지만 굵기가 조금 더 굵다. 맨땅에서 뛰면 스터드가 더 빨리 마모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인조잔디구장도 많이 늘었다. 길이가 매우 짧고 질감이 거친 인조잔디에 적합한 축구화는 TF(Turf Field)형이다. 바닥과의 마찰이 매우 커서 스터드의 길이가 짧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TF형 축구화에는 아주 짧은 스터드가 25개 이상 촘촘히 박혀 있다.

경기장 바닥은 날씨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짧고 거친 잔디도 비가 오면 물기 때문에 마찰력이 감소해 더 미끄럽고, 비가 오고 난 직후에는 천연잔디의 마찰력이 인조잔디보다 크다. 노련한 선수들은 경기하는 동안의 날씨를 고려해 축구화를 골라 신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웨인 루니 선수는 잉글랜드의 다습한 날씨 때문에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스터드가 6개만 박힌 SG형 축구화를 신기도 한다. 비오는 날 경기를 할 경우엔 바닥의 마찰력이 감소하므로 공격수, 미드필더 할 것 없이 모두 SG형 축구화를 신는다.

스터드가 회전마찰력 좌우
마찰력은 한 물체가 다른 물체와 접해 있을 때 그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다. 이런 저항력은 바닥을 미는 힘의 반작용으로 우리가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다. 마찰력은 지면이 물체를 수직으로 밀어 올리는 힘(수직항력)과 마찰계수의 곱으로 계산된다. 마찰계수는 접촉면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데, 접촉면이 거칠면 마찰계수 값이 1에 가깝게 크고 미끄러우면 0에 가까워진다. 이론적으로 접촉면적의 넓이와는 무관하다.

축구는 갑작스런 정지동작이나 방향전환이 많아 ‘회전마찰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회전마찰력은 마찰력에 회전력이 더해진 결과다. 회전할 때의 마찰력은 스터드가 기울어진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스터드가 기울면 수직항력의 크기가 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직항력의 값은 물체의 무게(mg)에 기울어진 각도(θ)의 코사인 값(cosθ)을 곱한 값이다. 코사인 값은 항상 1보다 작으므로 기울어진 물체는 그렇지 않은 물체보다 수직항력이 작다. 기울어진 각도가 클수록 수직항력의 크기는 더 작아진다. 그래서 몸을 많이 기울여서 회전하면 마찰력을 더 적게 받을 수 있다.

선수들의 몸무게에 비하면 작지만, 스터드 무게도 수직항력을 변화시킨다. 스터드를 무거운 재질로 높게 만들면 스터드 무게가 증가해 수직항력도 커지고, 마찰력도 크다. 부드러운 잔디에서 신는 SG형 스터드를 금속으로 높게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회전하는 물체에는 회전력도 작용한다. 회전력은 스터드에 힘을 실어 몸을 돌리려고 선수가 내는 힘이다. 이 힘은 회전하는 축에 작용하는 힘(선수가 스터드에 가하는 힘)과 회전축에서 회전하는 물체 표면까지의 거리(스터드 굵기)에 영향을 받는다. 선수가 회전할 때 스터드에 큰 힘을 실을수록, 스터드 굵기가 굵을수록 회전력이 커진다. 부드러운 잔디에서 신는 SG형 축구화는 회전력을 크게 내기 위해 스터드를 굵게 만든다.

공격수는 SG형, 수비수는 FG형
선수의 포지션에 따라서도 스터드를 다르게 신는다.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수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수비수나 골키퍼는 지면을 박차고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내야 하므로 바닥과의 마찰력이 큰 높은 스터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선수 자신의 의지대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공격수나 미드필더는 마찰력이 작더라도 높이가 낮아서 90분 내내 편하게 뛸 수 있는 낮은 스터드를 애용한다. 애슐리 콜 같은 수비수가 박지성 선수를 순발력 있게 마크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스터드 덕분이며, 웨인 루니 선수가 민첩하게 상대편 수비라인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스터드가 낮은 축구화를 신었기 때문인 셈이다.

최근엔 공격수, 수비수 포지션에 관계없이 막대형 스터드를 선호한다. 막대형 스터드는 앞쪽에 11개, 뒤쪽에 4개 정도가 박혀 있는데, 발 테두리에는 스터드가 세로방향으로 있고 발 가운데는 가로방향으로 1~4개 놓여 있다.

막대형 스터드의 장점은 스터드의 높이가 낮아도 일반적인 원통형 스터드와 비슷한 회전마찰력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운동역학회 박상균 박사가 2004년 캐나다 캘거리대 운동역학실험실에서 12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스터드 형태변화에 따른 회전마찰력’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막대형 스터드는 일반적인 원통형 스터드에 비해 회전마찰력이 더 크다.

같은 질량의 스터드라도 막대형 스터드는 원통형에 비해 회전할 때 궤적이 더 커 회전축으로부터 회전하는 물체 표면까지의 거리가 원통형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굵은 스터드를 신은 것처럼 회전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스터드의 높이가 낮은 축구화는 오랫동안 신어도 발의 피로가 적다. 또한 발 가운데에 놓인 가로방향 막대 스터드는 진행방향으로 직선운동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박지성 선수나 데이비드 베컴 같이 유명한 선수들도 스터드가 막대형인 축구화를 많이 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구화의 종류를 결정하는 스터드
축구화의 종류는 스터드의 재질과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
2004년 아디다스에서 출시한 ‘F50’은 SG형, FG형, HG형 스터드를 바꿔 끼울 수 있게 만들어졌다.

2009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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