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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을 조롱하는 영화적 상상력

시간여행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과거나 미래로 가고 싶어한다. 아마도 그런 욕망들이 모여 시간여행이라는 상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실현된 시간여행을 보면서 과학적으로도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가늠해 보자.

SF의 가장 고전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여행’ 은 오래도록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타임머신을 통해 우리는 현재와 다른 ‘낯선 시대’가 주는 진기함을 즐길 수도 있고, 돌이키고 싶은 과거로 돌아가 인생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으며, 궁금했던 미래의 자화상을 훔쳐볼 수도 있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후회로 가득한 인생의 순간들을 되돌리고 싶은 인간들의 욕구가 지속되는 한 시간여행은 계속해서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임이 틀림없다.

‘시간여행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가 진부함에도 꾸준히 진지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고, 타키온(tachyon, 빛보다 빨리 달리는 물체)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시간여행에 대한 애정은 대중들만의 몫은 아닌 모양이다.

80년대 최고 화제작 ‘터미네이터’(Termi-nater, 1984)와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1985)는 대중들에게 시간여행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영화다. 특히 두 영화 모두 ‘모친 살해 파라독스’ 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으며, 과거의 개입으로 현재가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 극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 보면, 일상 속의 시간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간’ 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인가? 시간여행의 개념은 어떻게 탄생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시간여행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시간여행이라는 일종의 가상유희에 내포된 미래관은 어떤 것일까? 이런 문제들은 시간에 대한 오랜 통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시간’ 을 우리에게 환기시킬 것이다.

미래에 싹튼 사랑, 과거에서 실현

드디어는 ‘현대인의 신화’ 가 되어 버린 ‘터미네이터’ 는 1997년 컴퓨터 스카이넷에 의해 핵전쟁이 발발한 후, 스카이넷을 우두머리로 하는 기계들과 존 코너를 지도자로 한 인간 저항군의 오랜 싸움이 시작된다. 2029년 인간 저항군들이 승리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스카이넷은 존 코너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타임머신을 이용해 1984년으로 터미네이터를 보내 존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이려 한다. 여기에 맞서 존 코너는 부하 카일 리스를 보내 어머니를 보호하게 한다. 그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계속되고, 사라 코너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이 보낸 카일을 사랑하고 ‘존 코너’를 임신하게 된다.

제임스 카메론(J. Cameron) 감독의 ‘터미네이터’ 는 미래와 과거가 교묘히 엇물려 인과율의 법칙을 한껏 조롱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상식에 사로잡힌 우리는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황하기 시작한다. 존 코너가 세상에 태어나려면 미래가 현재보다 먼저 일어났어야 한다. 그의 아버지 카일은 존보다 늦게 태어나 그의 부하가 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의 아버지가 된다. 존의 어머니 사라는 임신한 몸으로 지프를 몰며, 뱃속에 있는 아들에게 보낼 녹음 메시지에 이렇게 말한다. “카일을 보낼 때 아버지인줄 알았니? 그를 보내지 않았다면 넌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과거는 미래없이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일이 2029년 존 코너가 보여준 사라 사진에 반해 사라를 보호하는 작전에 자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 사진은 1984년 사라가 니카라과로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찍은 것인데, 카일은 사라가 죽은 후에 사라에게 반한 셈이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미래에서 싹 터 과거에서 실현되었으며 다시 미래로 이어지게 된다.

기계를 이끄는 슈퍼컴퓨터 스카이넷 또한 마찬가지다. 군납회사인 사이버 다인 시스템즈에서 스카이넷을 개발하게 된 것은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T-800)의 칩을 연구한 결과다. 스카이넷 개발을 주도한 마일즈 다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앞선 미래의 기술이 우리를 놀랍게 발전시켰다.” 2029년 스카이넷이 T-800을 1984년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스카이넷 자신도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미래는 현재의 원인인 것이다.

아들에 반한 어머니

현재를 위해 미래가 이미 발생했어야 했다면,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일까? 영화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 라고 얘기한다.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겠는가? 시간여행을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는 과거에 개입하여 상황을 바꿈으로써 전혀 다른 미래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터미네이터’ 도 그렇고 ‘백 투 더 퓨쳐’ 도 그렇다. 이것은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이 운명론적인 미래관, 즉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사소한 사건 하나가 미래를 전혀 다르게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여행을 다룬 수많은 영화를 통해 ‘열린 미래’ 를 체험하게 된다.

열린 미래가 잘 그려져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R. Zermeckis)감독의 ‘백 투 더 퓨쳐’ 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드는 사건에 연루되어 겪는 모험담과 미래로의 귀환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에 빠져야 될 바로 그 상황에 우연히 끼어들게 되어 어머니는 훗날 자신의 아들이 될 주인공에게 반하게 된다. 주인공은 어쩌면 자신이 태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을 우여곡절 끝에 넘기며 힘겹게 미래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여행에 관한 기존의 많은 글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비록 시간여행에 관한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시간’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을 환기시켰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시간’ 을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흐르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은 공간의 세 축과 함께 현실을 이루는 4차원이라는 시공간의 하나로 파악되면서, 사람들에게 공간을 여행하듯 시간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했다. 특히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을 하는 경우, 관찰자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절대시간의 개념을 부정하고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시간을 넘나드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백투더 퓨처'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몸부림

그러나 실제로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시간여행에 대한 개념은 아인슈타인 이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있어 왔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동화 ‘스크루지’ 에서 스크루지가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 계기도 흉칙한 영혼에 의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였고, 유명한 단편 소설 ‘립 반 윙클’에도 시간여행의 개념이 등장한다.

특히 SF소설의 고전이면서 시간여행에 관한 원전이기도 한 H.G. 웰스의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10년전인 1895년 작품이다. 1960년 조지 팔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시간여행에 몰두하던 두 명의 발명가가 타임머신을 발명하여 4차원을 통해 시간여행을 떠나서 미래를 경험한다는 줄거리다. 이 짧은 소설은 비록 사회 계급의 문제와 인류 문명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시간여행을 다룬 많은 SF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시간여행은 오래도록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많은 문학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비록 천사나 악마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힘을 빌어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몸부림’ 은 여전했던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는 어떤 관찰자에게도 일정하며, 질량을 가진 물체는 빛보다 빨리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대한 일종의 ‘불가능 선고’ 이기도 하다. 빛보다 빨리 진행하여 과거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음(-)의 에너지를 가지고 허수의 세계에서 존재해야 한다(그러나 세상은 실제(real)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간’ 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던 상대성이론이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최고 천재의 탁월한 이론도 시간여행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풍부한 상상력을 막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끊임없이 시간여행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고, 영화의 탄생과 함께 시간 여행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문학적 상상력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영화적 상상력은 시간여행을 보다 그럴싸하게 형상화하여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문학적 상상력이 시간여행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한데 비해 영화적 상상력은 그것을 좀더 가시화하여, SF라는 장르 안에서 구체적이고 기계적인 형태로 변화시켰다. 여기에다 과학계에서도 ‘과학적 상상력’ 을 통해 몇몇 물리학자들은 ‘웜 홀’(Worm hole)이나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 등을 통해 타키온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이렇듯 시간여행에 대한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은 일상의 시간에 찌들고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신선한 안식을 제공한다. 우리는 ‘타임캅’(Time Cop, 1995)을 보면서 타임캅(시간여행을 통해 돈을 버는 도둑을 잡는 경찰)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며 거액을 챙기려는 악당을 걱정하고, ‘엑설런트 어드벤쳐’(Billl & Ted’s Excellent Adventure, 1989)를 보며 역사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역사적인 인물들을 현재로 끌어 모은다는 우스꽝스런 발상에 ‘낄낄’대기도 한다. 이른바 시간여행은 일상이라는 시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영화 '타임 캅'에서는 이야기의 무대가 공간이 아닌 시간이다. 시간을 옮겨가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지는 것은 영화가 얼마만큼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은 자유로운가

인간은 절대시간에 의해 전적으로 통합될 수 없는 존재다. 우리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현재에 있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생체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질긴 절대시간의 쇠사슬로 묶여 있는가?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박자의 시계를 차고 살며, 어디를 가도 똑같이 움직이는 시계가 걸려 있다. 국가는 서로 표준시를 정해 전지구적 시간공동체를 구축하고 있고, 지구를 사슬같은 24조각의 경도선으로 조각조각 나누어 놓았다. ‘모모’(Momo, M. Ende 원작, 1986)에서처럼 절대시간을 자본화한 시간은행의 회색분자들이 우리의 현실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연의 리듬대로 살아온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 우리를 항상 시간에 쫓기며 시간의 굴레에 갇힌 인간시계로 만들어 버렸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계 톱니바퀴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출근시간에 쫓기고, 지각으로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시집갈 나이라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물리학이나 영화 속에서 ‘시간’ 은 언제나 자유롭고 상대적이며 우리의 영혼과 맞물려 있는데, 현실의 시간은 왜 이렇게 얼어붙어 있는 것일까? 우리도 모모와 함께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지금 여기 이 우주에서 시간꽃을 함박눈처럼 피우며 살고 싶은데 말이다.
 

199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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