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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한 남자의 인생극장

줄거리
1918년 미국의 뉴올리언즈. 제1차 세계대전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해 여름에 80세 외모를 가진 사내아이가 한 명 태어난다. 아이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분). 출생 때부터 얼굴에 새겨진 쭈글쭈글한 주름살과 관절염으로 굽어진 팔다리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출산 직후 아내를 잃은 벤자민의 아버지는 그의 외모가 화를 불렀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근처 양로원 현관 앞에 버리고 만다. 출생과 동시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양로원’에 버려진 벤자민 버튼. 그는 외모에 걸맞게 유년 시절부터 노인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메디컬 평점 ★★★★☆ 시간을 거스른 사랑이야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동명의 단편 소설이다. 피츠제럴드는 미국의 유명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남긴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9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이 쓰인 것이 1920년이었으니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9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랜 세월을 건너 뛰어 영화화된 이 작품은 오늘의 관객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거쳐 간 사람과 장소, 그가 얻고 잃었던 사랑, 그리고 그 안에서 묻어나는 생의 기쁨과 죽음의 슬픔이 주옥같은 화면 속에서 어울리며 영속적 가치의 아름다움을 발한다.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백내장과 관절염은 노화의 증거?
영화 초반, 양로원에 버려진 벤자민은 이 시설을 운영하는 퀴니라는 흑인 여성에게 입양된다. 흑백 간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흑인이 백인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일. 그만큼 벤자민은 보통 사람이 선뜻 데려다 키우기 힘들 만큼 기이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퀴니를 통해 벤자민을 진찰한 의사는 그가 80세 노인처럼 백내장과 관절염을 앓고 있다며 오래 살지 못 할 거라고 충고한다. 남은 수명이 길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과연 백내장과 관절염은 노인만의 질병일까.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안과질환으로 나이가 들면서 흔히 생긴다. 하지만 심한 안질환, 외상, 당뇨병이나 특정 약물을 복용한 뒤 생기는 부작용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주의할 것은 선천성 백내장이다. 방치하면 평생 맹인으로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아기 때는 눈의 초점을 맞추는 기능이 미처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정체가 혼탁하면 눈으로 들어가는 빛이 가로막혀 시신경이 발달하지 못한다. 약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따라서 아기에게 선천성 백내장 진단이 내려지면 가능한 빨리 수술을 해줘야 한다.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생후 몇 개월의 유아라도 시력을 측정하는 시유발전위, 주시선호 검사 등을 이용해 백내장 여부를 알 수 있다.

반면에 관절염은 영화에서처럼 노인이 주로 앓는 병이다. 일종의 자가면역 질환인 류머티즘 관절염은 젊은 층도 걸릴 수 있지만 노인 대다수가 겪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가 훨씬 많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의 펴짐 각도가 줄어들면서 연골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나이가 들더라도 적절히 관절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면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흔한 무릎관절염은 무릎관절이 체중을 견디지 못해 생기므로 비교적 젊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몸무게를 조절하면 좀 더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노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벤자민은 20세가 되던 해 첫 사랑을 느낀다. 상대는 벤자민이 6살 때 처음 본 데이지. 양로원에 머물던 할머니의 손녀인 데이지는 벤자민과 소꿉친구로 자란 사이다. 실질적으로는 사춘기를 갓 지난 ‘노인’ 벤자민은 풋풋한 첫 사랑을 기대하지만 데이지와 어울리기에는 외모가 너무 늙었다는 걸 깨닫고 돌아서고 만다. 쭈글쭈글한 주름과 검버섯, 안경이 없으면 앞을 볼 수 없는 시력이 그의 사랑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이 서럽기만 하다. 생물은 왜 늙는 것일까.

노화는 크게 두 가지 가설로 설명된다. 하나는 ‘텔로미어 이론’으로 세포 속 DNA서열의 변화가 생물을 늙게 한다는 가설이다. 1961년 레오나르도 헤이플리크라는 생물학자는 세포가 분열하는 동안 DNA 끝단에서 6개로 이뤄진 반복 염기가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부위에 텔로미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포는 흔히 50번 정도 분열하면 사멸하는데, 헤이플리크는 텔로미어가 없어지면 세포의 수명이 다한다고 설명했다.

정상이지만 30~40대만 돼도 80대 외모가 되는 ‘베르너 증후군’이 이 가설로 설명된다. 실제 베르너 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텔로미어를 떼어내는 효소기능을 하는 물질인 텔로미어라제(telomerase)와 DNA 복구 유전자에 결함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거꾸로 텔로미어가 DNA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에도 불구하고 텔로미어가 떨어져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텔로미어를 활용해 새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만약 암세포에서 텔로미어를 강제로 떼어낼 수 있다면 암세포가 스스로 사멸한다는 얘기다.

노화를 설명하는 또 다른 갈래는 ‘산화이론’이다. 고등생명체는 산소를 흡수해서 에너지를 얻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데 이때 부산물로 슈퍼 옥시드, 과산화수소, 하이드록실 래디컬(-OH) 등이 발생한다. 이것들이 바로 세포 노화를 촉진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피부 노화 과정을 보면 자외선에 따른 산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강한 자외선을 오래 쬐면 피부상피 세포에 산화물질이 쌓여 주름과 검버섯이 생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그토록 자외선 차단제와 항산화 화장품을 열심히 바르는 이유다. 한편 주름과 검버섯은 보톡스 주사와 레이저로 감쪽같이 없앨 수 있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피부과 의원을 찾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가게 할 수 있다면 비용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임신과 노화

영화 중반, 30대가 넘은 벤자민은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첫사랑인 데이지를 다시 만난다. 벤자민의 외모가 40대 초반, 데이지는 30대 중반이었다. 둘은 그제야 서로 딱 어울리는 한 쌍이 된다. 곧바로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은 마치 거꾸로 가는 시간의 접점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사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잊지 못할 행복한 나날로 만들며 살아간다. 그리고 얼마 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벤자민은 아이가 자신을 닮아 늙은 외모일까봐 걱정을 하는데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임신은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난자가 결합해 수정란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수정란이 자궁벽에 잘 안착하고 40주가 지나면 3.5kg 내외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 80세 노인의 남성이 자식을 낳는 일이 보고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남성의 노화는 임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아이를 낳으려면 난소가 기능을 잃는 ‘폐경’이 찾아오기 전에 임신해야 한다. 대략 50세를 전후한 시기다.

첫 아이를 낳는 경우를 초산, 둘째부터는 경산이라고 부르는데 35세 이상 여성이 초산을 하면 분만위험도가 증가한다. 아기가 나오는 길인 ‘산도’에 변화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통이 길어져 난산할 가능성이 높다.

서서히 사라지는 기억, 치매
영화 후반, 중년이 된 데이지는 전 재산을 남기고 잠적했던 벤자민을 다시 만나게 된다. 깎아지른 콧날과 군살 없는 몸매를 갖춘 벤자민의 모습은 영락없는 하이틴 스타다. 그러나 벤자민의 몸은 속으로 늙고 있었다. 고혈압과 심장질환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그는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자신이 자랐던 양로원에 들어간다. 벤자민은 그곳에서 겉으로는 아이처럼 젊어지지만 속으로는 심한 치매에 시달린다.

치매는 기억력 소실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1972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엔들 털빙은 장기기억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진술 기억’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절차 기억’으로 나누었다. 진술 기억은 다시 시간, 공간, 감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일화 기억’과 시간, 공간과 상관없는 ‘의미 기억’으로 구분된다. 머리에 떠올린 일기장 내용은 일화 기억, 일반 상식은 의미 기억으로 분류된다.

사람은 태어난 뒤 목을 가누고, 엎드리고 기기 시작해 서고, 걷고, 달리는 순서로 절차 기억을 발달시킨다. 조금 크면 ‘이거는 뭐야?’ ‘저건 뭐야?’하면서 의미 기억을 활성화한다. 3세 아이가 어른의 노래를 잘 따라 부르는 것도 의미 기억력 때문이다.

대략 10세 정도면 절차 기억과 의미 기억이 약해지면서 서서히 일화 기억력이 발달한다. 일화기억이 생기면 사람은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안목이 생긴다. 우리가 어릴 적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엔 일화 기억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인이 되면서 가장 먼저 감퇴하는 것은 일화 기억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에 있던 일을 저녁에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더 세월이 흐르면 의미 기억마저 사라지면서 오랜 친구나 형제의 이름도 잊어버린다. 죽기 직전까지도 없어지지 않는 기억은 대개 걸음과 같은 절차 기억에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치매는 이러한 정상적인 기억력의 감퇴가 평균적인 노화 과정보다 급속히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7년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실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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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훈 가정의학과 전문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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