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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이과가 금을 만들어봤습니다

 

 

17세기 영국, 한 연금술사가 노트에 남긴 수수께끼 같은 문장입니다. 당시 영국은 연금술 연구를 중죄로 여겼습니다. 비밀스럽게 연구 를 이어가야 했죠. 연구내용을 암호로 적으면서요.

 

현자의 돌은 납처럼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진 물질입니다. 메모의 주인공은 현자의 돌을 만드는 데 수십 년을 바쳤습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는 1855년 “그렇게 대단한 지성을 가지고 어리석고 교활한 자들이 만든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니”라며 안타까 워했습니다. 왜냐면 그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과학자거든요.

 

‘뉴턴이 마법사였다!’라고 생각하시려거든 잠깐 멈춰보세요. 연금술은 과학과 마법이 지금처럼 구분되지 않았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뉴턴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정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요하게 다룬 이론이었죠,  증류, 여과, 추출 등 실험기술도 연금술사들에 의해 탄생했으니. 뉴턴에게 연금술은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었을 겁니다. 이번 달에는 뉴턴을 비롯한 연금술사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꿈을 이뤄보겠습니다. 네, 그래서 이과가 금을 만들어봤습니다.

 

 1단 짚고 넘어가죠 I  현자의 돌 vs. 촉매


연금술사 들의 목표는 금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금을 무한정 만들 수 있는 현자의 돌이란 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죠. 오늘날 과학자들에게도 현자의 돌과 비슷한 ‘촉매’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촉매는  말하자면 화학반응  부스터입니다. 화학반응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만들어줍니다.

 

우리 몸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당을 분해해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화학반응을 생각해봅시다.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반응이지만,  촉매 없이 이 반응을  일으키려면 높은  열이 필요합니다. 

 

36.5℃ 환경에 설탕을 놓고 아무리 째려봐도 이산화탄소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몸 속에서 설탕을 불태울 순 없겠죠. 이럴  때  촉매(효소)가  활약 합니다.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를  낮춰, 낮은 온도에서도 당을 분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원래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을 현실로 만들 어주 는 물질이란 점에서 촉매는 현자의 돌과 닮았습니다. 게다가 촉매도 현자의 돌처럼 화학반응을 아무리 많이 거쳐도 소모되지 않아요. 금만 만드는 게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의 유해물질 제거, 비료 생산, 신약개발 등 다양한 반응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촉 가 더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촉매는 어디까지나 ‘일 날 반응 을 일어나게 해주는 물질’이라는 한계도 명확 합니다.

 

당을 분해하면 이산화탄소가 나와야 해요. 갑자기 금이 튀어나 오는 일은 없죠. 그런데 현자의 돌은 그 어떤 값싼 물질이라도 모두 금으 로 바 꿀 수 있습니다. 현자의 돌 만들기, 실패?

 

2렇게 해봤습니다 I 수천 년 연구를 끝낸 단 하나의 실험

 

“마침내 연금술사들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됐습니다.”

 

1935년 12월 10일, 노벨상 시상식에서 당시 노벨 화학위원 회의장이 한 말입니다. 마리 퀴리의 딸, 이렌 졸리오-퀴리와 남편 프레데릭 졸리오-퀴리가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합성해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자리였죠. 이제 우리는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단 사실을 압니다. 원자가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 이들 입자  적당히 잘 떼거나 붙이면, 전혀 다른 원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렌과 프레데릭 부부는 알루미늄(Al)에 양성자를 붙여 인(P)을 만드는 데 성공했죠.

 

쉽습니다. 현자의 돌 대신 우리에겐 입자가 속기라 는 크고 아름다운 기계가 있습니다. 이걸로 작은 입자를 아주 빨리 가속 합니다. 그다음 금보다 더 높은 원자번호를 가진 원자에 충돌 시키면 됩니다. 입자가 부서질 테고 , 운이 좋으면 금 원자가 생길 수도 있죠. 무식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 방법으로 금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화학자, 글렌 시보그입니다.

 

1980년 그는 83개의 양성자를 가진 비스무트에 입자가속기로 가속한 탄소와 네온 원자핵을 충돌시켰습니다. 그 결과 비스무트의 원자핵에서 양성자 4개가 떨어졌습니다. 79개의 양성자 를 가진 원자를 우리는 ‘금’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허무맹랑하게만 여겨졌던 연금술이 수천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현실 에 발을 디딘 거죠. 누가 알겠어요, 순간이동, 기억 이식 등 우리가 과학에 던지는 가장 황당한 소원이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몰라요.

 

202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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