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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로 암 치료하는 세상 꿈꾼다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

병 자체보다 병에 대한 공포가 더 무섭다는 암. 통계청이 2007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는 27.6%를 차지하는 암이다. 4명 중 1명이 죽는 원인일 만큼 흔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완전한 치료 방법도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일반적인 항암치료는 수술로 암세포가 침투한 조직을 없애거나 화학약품으로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암을 발견할 때는 이미 암이 여러 조직에 퍼진 경우가 많고, 수술은 암세포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변 건강한 조직까지 손상시킨다.

화학약품을 이용한 항암치료도 건강한 조직을 파괴하기는 마찬가지다. 항암제는 정상세포보다 활발하게 증식하는 암세포를 죽이는데, 모근이나 골수조직처럼 분열이 활발한 정상조직까지 파괴해 머리카락을 빠지게 하고 면역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현재 사용되는 항암 치료를 완벽한 방법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사람 몸속에 들어가 암세포에 도착해 암세포만 정확히 골라 제거하는 미세한 크기의 로봇이 있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현택환 교수의 말이다. 공상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말처럼 암을 조기에 발견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암세포가 증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부위에 실제로 암세포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사용해 정밀하게 검사할 수 있다. MRI는 살아있는 사람이나 동물 몸 안의 사진을 찍는 카메라와 같다. 정맥주사로 자성을 띤 조영제를 혈관으로 흘려보낸 뒤 자기장 아래서 그 방향대로 배열된 조영제를 찍어 몸 안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인체에 주입한 조영제는 24시간 안에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횡단면만 찍는 컴퓨터단층촬영(CT)에 비해 여러 각도의 단면을 더 높은 해상도로 찍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해상도가 높은 MRI도 암이 막 발생한 초기단계의 작은 암세포는 발견하기 어렵다.

암세포 조기에 발견하는 모네MRI
현 교수는 연구단이 가진 나노 생산기술과 이미 널리 사용되는 MRI의 원리를 결합해 미세한 암세포를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혈관 속에서 혈액을 따라 이동하다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달라붙으면서 동시에 영상 특성이 뛰어난 나노입자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렇게 개발한 조영제가 바로 ‘모네MRI’(MONE MRI, Manganese Oxide Nanoparticle contrast Enhanced MRI)다.

모네MRI는 5~25nm(나노미터, 1nm=10-9m) 크기의 산화망간 나노입자다. 연구단은 정맥주사로 모네MRI를 쥐의 몸속으로 흘려보내 뇌와 간, 신장 같은 기관의 단면을 관찰했다. 일반적인 MRI 조영제보다 훨씬 크기가 작고 밝은 영상신호를 발생하는 나노입자 조영제를 사용한 덕에 일반 MRI로 촬영했을 때보다 더 선명하고 정확한 사진을 얻었다. 또한 나노입자에 암세포를 추적하는 항체를 부착한 결과 일반 MRI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0.7mm 크기의 암세포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구단은 조영제의 이름을 짓고 머리글자를 따다가 우연히 철자는 달라도 발음이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 교수는 “빛의 화가라 불렸던 모네가 생명력을 담아 그림을 그렸듯이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빛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모네MRI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저명한 독일 화학 저널인 ‘앙게반테 케미’ 표지 논문으로 실을 때 모네의 그림을 함께 실었다.

암세포만 공격하는 나노입자
연구단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고민했다. 암세포를 일찍 발견하더라도 현재 사용하는 항암 치료 방법은 정상세포까지 손상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단은 암을 진단하는 동시에 암세포만 정확히 골라 제거하는 나노입자를 만들었다.

연구단에서 만든 치료용 나노입자는 입자 자체가 자성을 띠거나 입자에 자성체를 붙인 경우다. 자성이 있어야 자기장 방향에 따라 배열을 해 MRI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암세포에 도달해 공격할 수 있도록 항암제를 저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연구단이 2008년 10월에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한 동그란 스펀지 공 모양의 ‘다공성 나노실리카’는 구멍 안에 항암제를 담고 암세포가 있는 곳까지 수송한다. 구멍이 송송 뚫린 입자 가운데에는 자성을 띠는 산화철 나노입자가 들어 있어 MRI 조영제로 사용할 수 있다.

치료 목적 이외에 진단 목적으로만 사용할 때에는 구멍 안에 치료제 대신 형광 물질을 넣는다. 현 교수는 “MRI와 형광분석 방법은 원리도 다르고 서로 장단점이 달라 두 방법을 한 번에 사용하는 다공성 나노실리카로 상호보완적인 진단을 하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다공성 나노실리카보다 더 안전하게 약품을 저장해서 운반하는 나노입자도 개발했다. 바로 산화철(β-FeOOH)로 만들어진 나노캡슐이다. 나노캡슐의 구성물질인 산화철 자체가 자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자성체를 붙이지 않고도 약껍질인 캡슐 자체로 MRI 촬영이 가능하다.

나노캡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속이 빈 캡슐이다. 캡슐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약품을 넣으면 마치 감기약 캡슐처럼 약물을 나노입자 안에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나노캡슐은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혈액을 따라 이동하려면 입자 지름이 100nm보다 작아야 하는데 MRI촬영이 가능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 500~1000℃에서 열처리를 하는 동안 입자가 엉겨 붙어 200nm 이상이 되기 때문.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단은 ‘마법’을 부렸다. 단단한 옷을 입혀서 구운 뒤 다시 벗겨낸 것. 원재료인 산화수산화철 겉을 실리카로 코팅해 열처리를 하면 산화수산화철이 산화철로 구조와 형태를 바꿔 실리카의 안쪽에 달라붙는다. 열처리가 끝나고 실리카를 없애면 산화철 나노캡슐이 탄생한다.

연구단은 이렇게 디자인된 나노입자들을 암세포에 투여해 진단과 치료효과를 검증한 결과 약품을 넣은 나노입자를 주입하면 암세포 수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 교수는 “암세포가 파괴된 양은 주입한 항암제의 양에 비례했다”며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기술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실제로 나노입자에 형광물질을 담아 암에 걸린 쥐에게 주입한 결과, 나노입자가 암세포가 침투한 부위에 정확하게 도달해 붙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나노입자는 형광영상법과 MRI로 동시에 촬영할 수 있었으며, 항암제를 넣은 나노입자를 쥐에 주사하고 MRI 로 촬영한 결과 주입하고 24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붙어 있어 항암제를 암세포에 전달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네이처 머티리얼스’ 2008년 3월호와 ‘앙게반테케미’ 2008년 12월호에 실렸다.

상용화하기엔 아직 과제가 남아있어
그러나 나노입자로 암을 치료하는 기술이 당장 상용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 교수는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숙제처럼 남아있어 언제 상용화할 수 있을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선 다공성 나노실리카는 약품을 암세포까지 운반하는 일이 완벽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노실리카에 뚫린 구멍에 약품을 확산시켜 저장하는데, 구멍마다 별다른 덮개가 없기 때문에 몸속에서 수송하는 동안 약품이 언제 새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

약품을 안쪽에 담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나노캡슐도 아직 상용화할 단계가 아니다. 정확히 표적에 도달하더라도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양만큼 약품을 분출하도록 조절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연구단이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사람의 몸이 아닌 쥐에서 실험한 결과이기 때문에 인체에서도 같은 효과를 낸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 결국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를 진단하고 동시에 제거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는 이론인 셈이다.

현 교수는 “이 같은 이유로 나노입자로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노입자를 MRI 조영제로 활용해 암을 진단하고 동시에 항암제를 운반해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의 가능성이 미래에는 현실이 돼 수술 없이 암세포를 제거하고 암을 완벽히 퇴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아름다운 나노입자로 의미 있는 꿈을 꾸다
현택환 교수가 내미는 명함을 보면 누구나 다 놀란다. 여러 가지 색깔의 알갱이들이 패턴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교수의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무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고 또 내가 하는 일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명함입니다.”
명함을 무늬처럼 채우고 있는 알갱이들은 모양도 독특하고 색깔도 화려한 나노입자들. 모두 연구단에서 개발한 나노입자들로 맨눈으로는 볼 수 없다.

연구단이 만든 나노입자 중에서는 정육면체나 구처럼 간단한 형태도 있지만 연필 모양이나 성게 모양처럼 복잡한 모양도 많다. 도토리 모양, 올챙이 모양, 그리고 줄무늬까지 새긴 애벌레 모양의 나노입자들을 보면 과학을 넘어 예술의 경지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이 아름답게 보이라고 나노입자를 여러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현 교수는 “예술적 감각에 따라 나노입자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몸속에서 암세포를 찾아내 제거하는 치료제 역할을 하는 나노입자의 경우에는 암세포에 가장 잘 붙는 모양을 걸러낸다는 말이다.

현 교수는 “아름다운 나노입자를 활용해 몸에서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나 단백질 분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치료 방법을 하루빨리 상용화해 암이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같은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현택환 단장
1987, 1989
서울대 화학과 학사, 석사
1996
미국 일리노이대 화학 박사
2002
젊은과학자상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수상
2008
포스코청암과학상 수상
1997년~현재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2002년~현재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연구단 산화물 나노결정 연구단 단장
2005년~현재
‘Advanced Materials’ 편집위원
2006년~현재
‘Chemical Communications’ 편집위원
2009년~현재
‘Chemistry of Materials’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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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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