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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날지 않는다. 그저 팔락댈 뿐이다.
너무 아름답고 또 너무 큰 양 날개는 나비로 하여금 날지 못하게 방해나 될 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공기와 꿈’

‘부우웅 ~’
봄 들판에 야생화가 피면 꿀벌이 잉잉거리는 소리를 내며 꽃과 꽃 사이를 들락날락한다. 사뿐사뿐 꽃 주위를 맴도는데 날개가 보이지도 않는다. 꿀벌은 초당 190회의 속도로 날갯짓을 하니 그럴만도 하다. 이때 꿀벌의 정신없는 날갯짓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비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꽃밭을 찾는다.

그런데 눈으로 나비의 움직임을 쫓다보면 약간의 어지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벌처럼 직선으로 날면 더 효율적일 텐데 나비는 왜 저렇게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걸까.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던 것처럼 커다란 날개 때문에 제
대로 비행을 할 수 없는 것일까.’

뒷날개 없이도 비행 가능
정말 나비는 다른 곤충에 비해 커다란 날개를 지니고 있다. 몸통에 날개가 붙어있는 게 아니라 두 날개가 접힌 사이를 몸통라고 부르는 형국이다. 게다가 날개도 한 쌍이 아니라 두 쌍, 즉 4장이나 된다. 몸통과 날개의 비율이 나비 정도는 아니지만 나방도 큰 날개를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나비나 나방 종류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앞날개와 뒷날개는 크기가 비슷하다. 그런데 나비류는 왜 날개를 두 쌍이나 달고 있을까.

미국 코넬대 신경생물학·행동학과 토마스 아이스너 교수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다소 엽기적인 실험을 했다. 나비 날개를 떼어낸 뒤 어떻게 될지 관찰했던 것. 앞날개가 없는 나비는 날지못했다. 그러나 뒷날개가 없는 나비는 앞날개 한 쌍을 펄럭이며 사뿐히 날아올랐다. 나는 모습을 봐도 날개 4장이 다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바슐라르의 주장처럼 커다란 날개가 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앞날개만 있을 때 더 잘 날지는 못했으므로) 적어도 뒷날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아이스너 교수팀은 배추흰나비와 집시나방의 비행궤적을 3차원 비디오로 기록한 뒤 자세히 분석했다. 그러자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던 차이가 드러났다. 앞날개로만 날 경우 비행 속도도 늦어질뿐더러 비행경로가 단순해졌다. 배추흰나비의 경우 비행 속도는 정상일 때 평균 2.37m/s에서 뒷날개를 떼어내면 1.77m/s로 25% 줄었고 집시나방 역시 1.57m/s에서 1.22m/s로 22% 줄었다.

속도의 변화, 즉 가속도도 나비는 평균 8.48m/s2에서 6.19m/s2으로 27% 줄었고 나방은 8.94m/s2에서 5.09m/s2으로 43%나 줄었다. 한편 초당 날갯짓은 11.8회에서 13.2회로 12%(나비), 26.8회에서 29.6회로 10%(나방) 더 늘었다. 일단 이런 분석결과를 보고 나서 나비 비행을 관찰하자 나비 비행 특유의 현란함이 많이 줄어든 게 보였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10월 28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비가 나는 데는 뒷날개가 없어도 되지만 현란한 비행을 하려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뒷날개가 없어도 지그재그 비행을 할 수 있지만 가속도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비행궤적을 따라가기가 쉽다. 그렇더라도 비행 속도를 약간 더 빨리하고 급회전을 하기 위해 앞날개만큼이나 큰 뒷날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아이스너 교수는 “현란한 비행 덕분에 야행성인 나방은 박쥐의 공격에서 벗어나고, 낮에 다니는 나비는 새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며 “이들은 민첩한 비행을 위해 커다란 뒷날개를 발달시켰다”고 설명했다. 보통 새들이 공중에서 곤충을 잡을 때는 비행 궤적을 예측해 돌진한다. 대공포가 비행기를 격추하기 위해 포탄을 발사할 때 비행기 속도와 떨어진 거리를 계산해 앞쪽에다 조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나비는 자유자재로 비행방향과 속도를 바꾸므로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다.

나비를 잡으려다 허탕을 친 새들은 결국 눈에 띄는 생김새에 현란한 비행을 하는 곤충을 보더라도 쫓을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설사 운 좋게 나비를 잡더라도 비늘로 미끌미끌한 날개 때문에 놓치기 일쑤고 먹을 수 있는 몸통은 몸의 작은 부분일 뿐임을 깨닫는다. 포장만 요란했지 막상 풀어보면 안에 사탕 한 알만 달랑 들어 있는 셈이다.

나비는 곡예비행사
사실 나비의 비행은 단순히 현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애드리언 토머스 교수팀은 지난 2002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비의 펄럭거림은 다양한 양식의 비행을 가능케 하는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눈에는 그냥 펄럭이는 동작으로 보이지만 펄럭이는 속도나 각도, 회전방향을 미묘하게 조절해 원하는 비행을 한다는 것.

연구자들은 풍동(일정한 속도로 바람이 부는 통) 속에 나비를 넣고 공기의 흐름을 볼 수 있게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듯 작은 구멍으로 연기를 흘려보냈다. 따라서 풍동을 옆에서 보면 평행한 흰줄이 오선지처럼 수평으로 그려진다. 풍동 속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나비는 꿀이 들어 있는 꽃이 앞쪽에 나타나면 날갯짓을 시작한다. 나비는 쉬고 있을 때 보통 양쪽 날개를 위로 접고 있다. 따라서 양날개를 아래로 펄럭이면서 날갯짓을 시작한다.

나비가 이륙을 하려면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양력(물체를 띄우는 힘)을 발생시켜야 한다. 즉 날개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압력이 낮게 공기흐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비가 이륙할 때를 찍은 비디오를 분석해보자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나비가 양력을 만드는 날갯짓은 3가지나 된다. 먼저 전단와류(leading-edge vortex)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날개 앞쪽의 윗부분에 소용돌이가 형성돼 압력이 낮아짐을 볼 수 있다. 부채질을 할 때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부채 가장자리에 전단와류가 생겨 부채를 위로 끌어당기기(아래로 부채질을 할 경우) 때문이다. 전단와류는 곤충 대부분이 나는 비결이다.

양 날개를 치고 뻗는 방법(clap-and-fling)도 양력에 기여한다. 위쪽이 서로 맞닿아 있던 양 날개를 재빨리 아래로 펄럭일 때 생긴 공간으로 공기가 유입되면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양력이 생긴다. 나비와 일부 말벌이 이 메커니즘을 쓴다. 위로 날갯짓을 할 때는 날개 앞부분이 먼저 위로 들리게 하는데 그 결과 날개 끝의 소용돌이가 커져 양력을 증가시킨다. 딱정벌레의 비행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변도영 교수는 “만일 아래로 향한 날갯짓과 동일한 각도로 위로 날갯짓을 한다면 날개 아래쪽에 전단와류가 생겨 땅으로 향하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이륙을 하면 앞을 향해 이동하는 비행모드로 바뀐다. 비디오 분석 결과 양력발생에는 중요하지만 이동할 때는 항력으로 작용해 방해가 되는 전단와류가 없어졌다. 나비는 쉽게 비행 양식을 바꿀 수 있는데 날갯짓에 미묘한 변화만 주면 되기 때문이다. 토머스 교수는 “비행기처럼 날개가 고정된 비행체를 설명하는 공기역학으로는 나비의 비행을 기술할 수 없다”며 “나비가 한가롭게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가지 공기역학 메커니즘을 연속적으로 구사하는 능숙한 비행”이라고 말했다.

“나비는 날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철학자 바슐라르가 살아있다면 이 부분을 고친 개정판을 서둘러 출판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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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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