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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컴퓨터 파일이 마약 효과를 낸다는 이른바 사이버 마약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이버 마약은 정말 ‘마약’일까. 그 정체를 들여다본다.

“자다 말고 갑자기 눈이 떠졌어요. 이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점점 천장과 가까워지더라고요. 무서웠어요. 몸부림을 치니까 쿵 하는 느낌과 함께 바닥에 몸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몽롱한 느낌은 여전했어요.”

이른바 ‘사이버 마약’으로 불리는 mp3 파일을 체험했다는 어느 누리꾼의 사용후기 내용이다. 최근 국내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사이버 마약은 독특한 소리가 담긴 mp3 파일을 재생해 뇌파를 조작, 마치 마약을 복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돼 거의 매일 사용 후기와 다운로드 방법을 묻는 글이 올라오는 실정이다.

사이버 마약은 외국에 근거지를 둔 아이도저라는 회사에서 제작했다. 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mp3 파일은 10개 항목, 총 73개에 이른다. 파일 당 재생시간은 5분에서 40분. 이 가운데 28개 파일에 마약 효과가 있다고 아이도저는 소개한다. 코카인, 헤로인, 모르핀 등 일반인도 이름쯤은 흔하게 들어봤을 마약이 컴퓨터 파일의 이름으로 거론된다.

‘듣는 마약’ 국내 상륙
아이도저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사이버 마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음성적인 뒷거래로 유통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만일 아이도저가 정말 마약과 유사한 효과와 중독성을 갖는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귀로 듣는 마약이 순식간에 인터넷을 타고 확산될 수 있어서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률을 보인다. 해외발 아이도저 폭풍이 한국에 치명적일 수 있는 이유다.

아이도저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올해 2월 초다. 해외에선 돈을 받고 파는 아이도저의 mp3 파일이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무료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아이도저에 따르면 이 파일들은 음악 전문가와 연구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뇌파를 조작해 예정된 특정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코카인 효과를 내는 소리가 담긴 mp3 파일을 재생해 들으면 코카인을 흡입한 것 같은 효과를 본다는 얘기다. 코카인은 미국 등에 많이 확산돼 있는 마약으로 주로 콧속 점막으로 흡입해 뇌세포에 작용한다. 졸음 감소, 감수성과 운동성의 향상, 쾌감 등의 효과가 나타난다. 아이도저 측은 실제 마약의 10분의 1에서 5분의 1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중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도 홈페이지에 적어 놓았다.

주로 들리는 소리는 ‘뚜’하는 연속적인 기계음이다. 재생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나 음량도 바뀐다. 아이도저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알파파(7~13Hz), 지각과 꿈의 경계상태인 세타파(4~8Hz), 긴장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베타파(14~30Hz)로 뇌를 자극해 심리 상태를 조절한다”고 주장한다.

정신 멍해진다고 마약?
아이도저가 내세우는 사이버 마약의 핵심 원리는 특정 소리를 발생시켜 뇌파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소리를 들려준다고 해서 이에 딱 들어맞는 뇌파가 발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가장 쉬운 예가 최면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최면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깊게 빠져 들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이버 마약도 마찬가지다. 사이버 마약이 내는 효과가 실제 마약과 같은가 여부는 접어두고라도 기분의 변화를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말이다. 이래서는 마약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나도는 사용후기에는 ‘난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내용도 수두룩하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사이버 마약이 제공하는 독특한 느낌이 마약과 같은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정신이 몽롱해진다고 모두 마약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얘기다.
사람은 보통 양쪽 귀로 모여드는 소리의 진동수 차이를 감지해 소리가 나는 위치를 가늠한다. 이를 바이노럴(binaural) 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이버 마약은 서로 다른 진동수, 그 중에서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는 두 가지 소리를 골라 한 쪽 귀에 하나씩 따로 들여보낸다. 자연계에서라면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뇌는 혼란에 빠진다. 사이버 마약을 듣고 머리가 멍해지거나 몸이 붕 뜨는 체험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 누리꾼들이 “스피커가 아니라 귀를 꽉 막을 수 있는 헤드폰을 끼고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양쪽 귀에 따로 소리를 넣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마약과 비슷한 효과는 이미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폐쇄된 클럽에서 강한 비트가 반복되는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면 정신적으로 몽롱한 상태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서 “사이버 마약에서 나타난다는 효과도 이와 비슷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특히 사이버 마약의 효과가 일반적인 마약중독 증세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 일부 비행 청소년들은 부탄가스를 흡입해 환각 상태를 느꼈다”면서 “저산소증에 의한 증세를 두고 ‘마약을 복용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정신적인 변화가 지속되는지도 아직 증명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마약의 일상화’ 경계해야
사이버 마약을 아이도저의 상술로 보는 시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사 어떤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는 ‘플라시보 효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무 효과가 없는 약을 먹고도 ‘난 나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면 증세가 나아지는 것처럼 사이버 마약을 듣고서 ‘이건 마약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에 없던 변화가 생기거나 기왕 생긴 작은 변화가 더 확대됐다는 말이다.

사이버 마약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이버 마약이 ‘마약’의 이미지를 보통 사람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 인터넷 포털에는 아이도저와 관련해 회원 수 4000명이 넘는 카페를 비롯, 많은 온라인 모임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회원들은 체험 수기를 돌려 보거나 아이도저의 mp3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는 곳을 공유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3월 초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청과 대책회의를 열고 아이도저 mp3 파일의 무해성이 판명될 때까지 파일이 유통되지 못하도록 판매 사이트의 국내 접속 차단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포털에는 청소년이 ‘아이도저’를 검색하지 못하도록 금칙어로 설정할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사이버 마약의 유해성은 당연히 가려내야 한다. 하지만 사이버 마약이 실제 마약을 향한 경계심을 약화시키거나 마약에 접근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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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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