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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과학소설)작가란 기묘한 창작가다. 허구인 세계를 그리면서도 과학적인 사실과 이론, 가설을 이용한다. 동시에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쩌면 실제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라는 이름의 세계를 창조한다.

2008년, SF계의 큰 별 둘이 졌다. 과학이론과 우주공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의 우주 진출과 그 이후를 생동감 넘치게 그린 아서 클라크, 그리고 ‘쥬라기 공원’ 같은 대중적인 작품으로 SF팬층을 크게 늘리는 데 공헌한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독자들은 이들의 작품에 열광하며 환상적인, 때로는 암울한 미래 세계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미래를 그럴듯하게 예견하거나 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일은 SF의 매력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SF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SF작가 4명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과연 어떤 세계를 창조했는지 들여다보자.

미지세계에 대한 탐험을 즐긴 쥘 베른
조지 웰즈와 함께 고전 SF의 선구자 또는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는 프랑스의 SF작가 쥘 베른(1828~1905)은 ‘15소년 표류기’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베른의 작품 대부분은 ‘15소년 표류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미지 세계의 탐험과 모험을 주된 테마로 한다.

어렸을 적부터 모험과 탐험에 큰 흥미를 보였던 작가답게 베른은 ‘기이한 항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50여 권의 SF와 모험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 ‘해저 2만리’는 선장 ‘네모’가 당시 기술로 제작이 불가능했던 잠수함 ‘노틸러스’를 타고 다니며 겪은 파란만장한 모험을 담고 있다.

잠수함에 대한 착상은 이미 17세기에 처음 등장했지만 베른의 노틸러스처럼 식량과 식수를 보급받을 때를 제외하고 장시간 잠행이 가능한 군용 잠수함이 실제로 선보인 때는 1955년에 이르러서다.

베른이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낸 세계는 바다 밑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영화화 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지구의 지각 아래가 텅 빈 공동이라는 가정 아래 그곳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베른은 우주여행도 감행한다. ‘달 세계 여행’은 두 주인공이 스스로 대포를 제작해 자신들의 몸을 싣고 달에 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포를 쏴 달에 갈 수는 없지만, 베른은 이 소설에서 현대의 로켓과 인공위성 기술에 대한 놀라운 예측을 보여준다.

베른은 소설 속에서 우주로 물체를 쏘아 올리기 위한 가장 좋은 지역을 ‘적도’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로 적도는 자전에 의한 회전 속도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탈출 속도의 이득을 가장 많이 볼 수 지역이다. 그래서 각국은 로켓 발사장을 지을 때 최대한 적도 가까운 곳에 부지를 선정한다.

“여러분, 과학이란 실수에 바탕을 두지만 그 실수는 저질러 볼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조금씩 진리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쥘 베른

미래 기술을 예측한 아서 클라크
영국 출신의 아서 클라크(1917~2008)는 작품을 통해 새 기술과 그에 따르는 세상의 변화를 예견하는 데 탁월했다. 클라크는 영국 공군에서 레이더 관련 기술자로 근무하고 후일 ‘영국 행성간 협회’ 회장에 오를 만큼 지구 바깥으로 향하는 데 필요한 물리 지식과 기술에 익숙했다.

그는 현재 정지궤도(인공위성이 지구의 자전주기와 같은 주기로 지구 둘레를 돌아 지구에서 봤을 때 항상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궤도)를 도는 통신위성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 클라크가 최초 발안자는 아니지만 그의 소설 ‘낙원의 샘’에는 이른바 ‘우주엘리베이터’가 온갖 장애와 악조건 속에서도 끝내 완성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우주엘리베이터란 정지궤도에 큰 인공위성을 띄운 다음 튼튼한 줄로 연결한 엘리베이터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와 일본의 과학자들은 우주로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데 우주엘리베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크가 미래 기술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 SF만을 쓴 것은 아니다. ‘유년기의 종말’에서는 인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과정을 관찰하는 악마처럼 생긴 우주인이 등장한다. 그렇게 육체를 벗어버린 인류의 다음 세대는 일종의 신과도 같은 또 하나의 거대 지성체와 합류한다. ‘도시와 별’에서는 거대한 정보와 물질이 탱크 속에 저장돼 이를 바탕으로 끝없이 되살아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두 작품은 한동안 SF작가들에게 많은 영감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 줬다. 인간이 우주를 관조하는 정신적 생물체와 합일하며,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극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클라크의 뒤를 잇는 현대 SF작가들은 그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클라크의 상상력에 빚을 지고 있다.

“충분히 발달한 첨단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아서 클라크

5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작 아시모프(1920~1992)는 아서 클라크와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던 SF작가다. 진취적인 인물상, 낙관적인 미래, 사회와 개인의 관계, 개척과 도전 정신 등을 다룬 SF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1950년대 SF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SF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아시모프는 쥘 베른 같은 SF의 선구자와 달리 유년기부터 ‘펄프 잡지’(신문용지처럼 질 나쁜 종이에 인쇄한 싸구려 대중잡지)에 실린 SF를 읽고 자라, 창작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SF에 익숙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의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SF의 작품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아시모프는 SF뿐 아니라 폭넓은 분야의 교양과학서와 역사서 등 500여 편의 저서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모프가 집필한 작품 수가 워낙 많고 소재와 주제도 다양해 대표작을 언급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로봇’ 시리즈다.

아시모프가 로봇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작품 속에서 설정했던 ‘로봇 3원칙’은 기계라는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로봇에게 행동 원리가 있다는 현실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인간에게 로봇의 역할은 무엇인지 드러냈다.

아시모프의 또 다른 대표작인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먼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흥망사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과학자 해리 셀든은 표본이 충분히 클 경우 군중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심리역사학’을 창안한 뒤 은하계에 퍼져있는 인간 세계, 즉 ‘은하제국’에 암흑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 암흑기를 헤쳐 가기 위해 비밀리에 또 하나의 식민지인 파운데이션을 마련한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생기며 은하제국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는 내용이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설정이다.

“현대 생활에 있어 가장 슬픈 사실은 사회가 지혜를 얻는 것보다 과학이 더 빠른 속도로 지식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마이클 크라이튼
마이클 크라이튼(1942~2008)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기 위해 문학을 따로 공부했다. 이런 경력은 크라이튼이 SF와 함께 의학소설도 집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처럼 인류의 먼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깊은 우주 속으로 눈길을 주기보다는 그리 멀지 않은 시대를 스릴러 기법으로 다루는 작풍을 택했다. 크라이튼이 미국의 인기 의학드라마인 ‘E. R.’ 시리즈 제작에 참여했고, 크라이튼의 소설과 그에 바탕을 둔 SF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둔 일은 이와 같은 작풍에 크게 힘입은 결과 일 것이다.

크라이튼의 이력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저 전업작가로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영화와 TV 시리즈의 각본과 제작에 즐겨 참여했고 컴퓨터 게임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크라이튼의 소설 가운데 13편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자신이 직접 연출이나 각본에 참여한 영상물의 수는 10편에 이른다.

그 덕분에 크라이튼의 소설은 SF팬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SF작가로서 흔치않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멸종한 공룡을 유전공학으로 현대에 재현하는 얘기를 담은 ‘쥬라기 공원’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를 최고 흥행 작가의 반열에 올려놨다. 크라이튼이 SF역사에 있어서 최고 거장의 반열에 들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가장 최근에,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점만은 사실이다.

과학이라는 ‘호수’와 허구라는 ‘연못’에 발을 담그다
개성이 다른 것 같지만 대표적인 SF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작품 속에서 엿보이는 화자나 등장인물, 또는 발생하는 사건의 전개가 합리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들춰보면 개연성과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또한 위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들의 태도 또한 합리와 이성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SF의 진정한 위력은 이성의 합리성에 상상력을 더해 ‘경이감’이라는, 자아와 오성(悟性)이 무한히 확장하는 감각을 맛보게 해주는 데에 있다. 경이감을 비유로 표현하자면, 인간이 그랜드캐니언이나 알프스산맥 같은 장관을 보며 자연 속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광대한 아름다움에 자아가 성장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는 우주의 물리적 원리, 즉 ‘과학’이라는 이름의 호수와 ‘허구’라는 이름의 연못에 발을 하나씩 담근 SF작가들이 갖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독자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류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보고 미래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앞서 소개한 4인이 한 ‘장르’의 거장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SF의 무한한 다양성과 가능성 가운데 극소수를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SF작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채 그 머릿수의 몇 배는 될 만큼 다양한 미래와 가능성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류가 만들어 나가는 물리적 세계와 관념의 세계는 넓어져 갈 것이다. 그리고 SF의 새로운 거장은 끊임없이 탄생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 낸 가상의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마이클 크라이튼

김창규 작가는 동국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각종 매체에 SF단편을 비롯해 과학, 영화, 드라마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뉴로맨서’ ‘이상한 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번역했고, 소설 ‘태왕사신기’를 썼다. 장편 SF ‘발푸르기스의 밤’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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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창규 SF작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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