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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심, 안심, 우족 맛이 서로 다른 이유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고기에, 내장에, 뼈까지 우려내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먹는다.
실제로 우리나라만큼 쇠고기로 요리한 음식이 다양한 나라도 없다. ‘소머리국밥’부터 ‘꼬리곰탕’까지.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를 맞아 부위별로 다른 쇠고기 맛의 비밀을 파헤쳐보자.

Q1 쇠고기도 생선회처럼 갓 잡은 고기가 맛있을까?

살아있는 물고기를 막 잡은 활어회를 선호하듯이 방금 막 잡은 소가 맛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는 잡은 뒤 4℃에서 약 14일 동안 냉장 시설에서 숙성됐을 때 가장 맛있다.

고기를 얼리지 않고 저장하면 고기 자체에 있는 칼페인과 카뎁신 같은 단백질 분해 효소가 근육을 수축시키는 근원섬유 단백질을 분해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이 과정이 ‘숙성’이다. 적당히 숙성된 쇠고기는 선홍색을 띤다. 하지만 숙성이 덜 된 쇠고기는 색이 옅고, 숙성이 지나친 쇠고기는 검붉은 색을 띤다.

숙성 시간 외에 쇠고기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또 있다. 바로 근육 내 지방이다. 붉은 살코기에 지방이 박힌 모양이 마치 대리석 같아 ‘마블링’이라고 부른다. 신선한 마블링은 우윳빛으로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마블링은 살코기보다 녹는점이 낮아 가열하면 빨리 녹아 고기 겉에 막을 형성하고 육즙이 새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마블링이 많은 고기는 부드럽고 촉촉하고 육즙이 많이 배어 있어 씹을 때마다 미각을 자극하고 침 분비를 촉진한다.




정육점에서는 살코기의 붉은 정도와 마블링을 포함하는 정도에 따라 한우를 5개 등급(1++급, 1+급,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맛있는 쇠고기는 1++등급으로 선홍색을 띠며 마블링이 촘촘하고 풍부해 연한 반면, 3등급으로 갈수록 마블링이 적고 육색이 진하며 고기가 질긴 특징이 있다.

축산물 등급 판정소에서는 육색과 마블링 정도에 따라 쇠고기 등급을 판단하는데, 최고급인 1++급으로 갈수록 마블링이 촘촘하다.

Q2 혀에 착착 감기는 쇠고기 ‘감칠맛’의 비밀은?

“그래, ‘이 맛’이야!”
1990년대 한 조미료 광고에 나오는 고향의 맛, 바로 ‘감칠맛’이다. 혀끝에 감기는 감칠맛의 주인공은 염의 형태로 존재하는 유리아미노산인 글루타민산나트륨(MSG)과 핵산관련물질인 이노신산(IMP)이다.

쇠고기가 포함하고 있는 글루타민산나트륨은 감칠맛을 내는 효소 작용을 돕고 당과 혼합해 고소한 향을 만든다. 이노신산은 쇠고기가 숙성하는 동안 만들어져 감칠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쇠고기의 감칠맛을 즐기는 데는 고기가 수분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맛 성분은 쇠고기 육즙 안에 녹아있어 액체 상태로 미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씹을수록 고기안의 육즙이 밖으로 배어나와 혀와 치아 사이로 스며드는 고기가 씹어도 육즙이 별로 없어 뻑뻑한 고기보다 맛있다. 마블링이 많이 박힌 고기가 더 맛있는 이유는 마블링이 고기 표면을 코팅해 육즙이 빠져나가는 일을 막기 때문이다.

Q3 우족스테이크가 없는 이유는?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식객’을 보면 주인공 성찬(김래원 분)이 눈을 가리고 맛과 향으로만 쇠고기 부위를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쇠고기의 ‘모든’ 부위를 맛과 향으로만 구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쇠고기는 부위에 따라 맛과 육질이 다르며 요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이 생성된다.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축산물이용과 조수현 박사는 “쇠고기가 부위별로 육질이 다른 이유는 소가 살아있을 때 부위마다 운동량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는 다리는 많이 움직이고 등에 있는 근육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어깨 위쪽인 목심, 넓적다리인 설도, 발목인 우족 등은 운동량이 많아 근육과 인대가 발달했다. 이런 부위를 등심이나 안심 같은 연한 부위처럼 요리를 하면 질겨서 먹기 어렵다.

사태처럼 근육과 인대가 많은 부위가 질긴 이유는 결합조직인 콜라겐 때문이다. 콜라겐은 가열하면 젤리처럼 녹아 조직이 연해지기 때문에 사태를 국이나 탕으로 오랫동안 끓이면 부드러워진다.

따라서 쇠고기 부위에 따라 가열 시간과 온도를 다르게 해 요리하면 쇠고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사태, 양지처럼 결합조직이 발달한 부위는 오랫동안 푹 끓이는 찜, 탕, 찌개, 조림을 해야 고기가 연해지고, 살치살, 채끝살처럼 결합조직이 적은 부위는 고기가 연하므로 짧은 시간동안 가열하는 구이나 바비큐를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질기지 않고 부드러운 고기는 스테이크로 먹기에 알맞다. 그래서 운동량이 적은 등에 있으면서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힌 등심이나 척추 뼈 안쪽에 깊숙이 숨어 있어 운동량이 거의 없는 안심을 사용한다. 반면 우족은 커다란 통뼈에 결합조직이 발달해 질기기 때문에 스테이크로는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결합조직도 오랜 시간동안 우려내면 고기와 뼈에서 나오는 콜라겐 성분과 각종 영양성분이 어우러진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맛 보증 프로그램
쇠고기에 ‘맛 점수’ 좀 매겨볼까

등급이 높은 쇠고기로 요리했는데 맛이 없을 때가 있고, 등급이 낮은 쇠고기로 요리했는데 더 맛있을 때가 있다. 정육점에서는 쇠고기를 39개 부위로 나누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떤 부위로 어떤 요리를 했을 때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조 박사팀은 소비자가 실제로 느끼는 맛을 기준으로 쇠고기 등급을 판정하는 방식의 ‘맛 보증 프로그램’을 2008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지금까지 생산자가 쇠고기의 색깔과 육질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면, 맛 보증 프로그램은 소비자가 소 부위마다 탕, 구이, 스테이크로 요리했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평가해 ‘맛 등급’을 매긴다.

조 박사팀은 2006년부터 한우를 부위, 육질등급, 성별, 숙성일수와 요리 방법으로 나눠 ‘맛 점수’를 매겼다.
맛 점수는 소비자가 시식한 뒤 연도, 육질의 정도, 향미, 기호에 대해 평가한 점수를 ‘맛 점수 추정식’으로 계산해 3개 등급으로 표기한다.

맛 보증 프로그램은 올해 하반기에 축산물 등급 판정소에 처음 도입된다. 축산물 등급 판정소에서는 맛 보증 프로그램으로 소의 성별, 숙성일수, 성숙도, 근내 지방도 같은 조건을 고려해 쇠고기 부위마다 ‘요리 종류에 따른 맛 등급’을 분석한다. ‘스테이크용 1등급-국거리 3등급’ 같이 맛 등급이 적힌 라벨을 쇠고기 부위별로 포장한 상품에 붙여 정육점에 제공할 예정이다.

Q4 호주 사람들은 한우가 맛없다?
한국인에게 한우가 제일 맛있듯이 호주 사람들에게는 호주산 쇠고기가 가장 맛있다. 한국인이 호주산 쇠고기가 텁텁하고 질기다고 느끼듯 호주 사람들은 한우가 기름지고 지나치게 부드러워 씹는 맛이 없다고 느낀다.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의 맛과 육질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두 나라가 소를 사육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호주는 땅이 넓고 풀이 많아 소를 풀어놓고 키우는 방목을 한다. 호주 소들은 담백한 풀을 먹고 운동량이 많기 때문에 근육이 발달하고 근육 내 지방이 적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풀이 적은 환경적 특성 때문에 소를 방목하지 못하고 일정한 공간에서 사료를 먹여 키운다. 따라서 소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마블링이 발달한다. 조 박사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동량이 많은 호주산 소는 마블링이 평균 5.7%로, 평균 11.3%인 한우에 비해 적다.

조 박사는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힌 부드러운 한우고기를 좋아하는 반면 호주 사람들은 마블링이 적고 약간 질긴 호주산 쇠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현재 호주에서는 마블링이 박힌 고기를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일부 소들을 운동을 거의 시키지 않고 가둬 키워 마블링을 일부러 늘리기도 한다.

같은 수입산 고기라도 미국산 쇠고기는 호주산 쇠고기와 달리 부드럽다. 미국은 소를 사료로 키워 마블링이 발달했기 때문. 미국인은 마블링이 많은 쇠고기를 먹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보다 비교적 부드럽고 연한 고기를 좋아한다.

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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