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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토초 레이저로 시시각각 변하는 단백질 찍는다

우리 주변 특이한 분자의 삶을 소개하는 ‘순간포착! 분자 세상에 이런 일이’ 팀에 한 과학자의 제보가 들어왔다. 뇌에 아밀로이드라고 하는 단백질이 사는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변신의 달인’이라는 것. 제보자는 대뇌의 죽은 신경세포 근처에 가면 이 단백질을 만날 수 있다고 귀띔해줬다.

노인성 질환인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대한 내용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촬영팀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찾아 화면에 담을 수 있을까.

단백질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다차원분광법

“기존 동영상 카메라로는 아밀로이드의 변신 과정은 커녕 가만히 있는 모습조차 찍기 어려울 겁니다. 아밀로이드가 변형을 일으키는 과정은 수조 분의 1초 사이에 일어나거든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 다차원분광팀 하정현 박사는 “여기서 말하는 기존 카메라는 X선회절법이나 핵자기공명법(NMR)”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고분자 물질로 다양한 생명현상을 일으킨다. 만약 단백질이 고유한 모양을 잃고 구조가 바뀌면 알츠하이머 병 같은 질병에 걸린다. 이를 치료하려면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으며 그 구조가 바뀌면서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야 한다.

과학자들은 단백질 결정에 X선을 쪼여 나타난 회절무늬를 관찰하는 X선회절법이나, 단백질 분자를 이루는 수소 원자 내부의 양성자 간 거리를 측정하는 핵자기공명법으로 단백질 구조를 알아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체 단백질 약 10만개 가운데 구조와 기능이 밝혀진 것은 고작 1000개 정도다.

X선회절법은 단백질을 고체 상태인 결정으로 만든 뒤 분석하기 때문에 단백질이 실시간으로 변형을 일으키는 과정을 알아낼 수 없다. 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핵자기공명법(NMR)도 시간분해능이 ms(밀리초, 1ms=10-3초)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보다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단백질 변형과정은 분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 아밀로이드의 변형 과정을 찍을 수 있는 장치는 없을까. 하 박사는 “다차원분광법이 해결의 열쇠”라고 말했다.

모든 분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진동수를 갖고 진동한다. 여기에 분자의 진동수와 공명을 일으키는 적외선을 쪼이면 분자의 진동에 대한 정보가 담긴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분석하면 분자 구조를 유추할 수 있다(1차원분광법). 만약 진동수가 다른 2가지 이상의 적외선을 쪼이면 더 정확하게 분자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이를 다차원분광법이라고 한다.

다차원분광법은 X선회절법처럼 단백질 결정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단백질이 변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다. 게다가 펨토초(10-15초) 레이저 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핵자기공명법이 갖는 시간분해능의 한계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단백질 시료를 준비한 뒤 2~3가지 진동수의 적외선 레이저를 10-15초마다 한 번씩 쪼인다. 그리고 거기서 얻는 스펙트럼을 분석해 단백질 분자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한다. 즉 다차원분광법은 분자세계를 1초에 1015장 찍을 수 있는 고해상도 동영상 카메라인 셈이다.

다차원분광학은 1990년대 후반에 이론이 제안된 뒤, 2003년에야 실험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최첨단 연구 분야다. 그동안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나 MIT가 다차원분광기를 개발하며 실험연구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2008년 2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 다차원분광팀이 아시아 최초로 다차원분광기 개발에 성공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 박사는 “현재 고려대 화학과 연구팀과 1차원분광으로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변형과정을 분석한 뒤 차원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태양광전지에 사용되는 반도체 물질이 빛을 받았을 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등 연구 분야를 분자세계 전체로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려면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으며, 그 구조가 바뀌면서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는 수조 분의 1초 사이에 일어나는 단백질의 변형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다차원분광기’를 개발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
고려대 자연계 캠퍼스내에 2004년 11월 설치됐다. 이곳엔 58종 약 1300만달러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도권 지역의 산·학·연 연구자들에게 연구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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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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