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탈리아 최초, 유럽 여성 우주인 최장 기록 세운 사만다 크리스토포레티

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이탈리아라고 하면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한국과 유사하게 사계절이 있으며, 음식이 맛있는 나라라고만 알고 있었다. 영화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나오면 한국 사람들과 기질이 꽤 비슷한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영화 밖에서 이탈리아는 여전히 낯선 유럽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우연히 진짜 이탈리아 사람, 그것도 우주인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2013년 국제우주대학(ISU) 우주인 강연에서 만난 파올로 네스폴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방금 막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였다. 공학자 출신 우주인인 그는 첫 만남에서부터 몇십 년 알고 지낸 친구처럼 농담을 던졌다. 또 ‘우리가 같이 우주 비행을 했었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내 비행 얘기를 즐겨 했다.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진짜 엄청났잖아요. 소연! 얼른 직접 얘기해주세요!”


그가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어딘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우주인이었다. 그런 그가 항상 내게 꼭 만나보길 추천하는 이탈리아 우주인이 있었다.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우주인인 사만다 크리스토포레티였다.


우주에서 199일 머물며 주목받아


사만다는 2009년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인으로 선발돼 2014년 11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99일 16시간 42분 동안 우주에 머문, 내가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 여성 우주인 중 최장 비행 기록을 보유한 우주인이었다(2016~2017년 미국의 여성 우주인 페기 윗슨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288일간 머물면서, 총 665일이라는 최장 우주 체류 기록을 다시 가져갔다. 하지만 사만다는 여전히 유럽 여성 우주인 중 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사만다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이스라엘 스페이스 위크’ 행사의 일환으로 주이스라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개최된 만찬에서였다. 바로 이전 해에 여성 우주인 최장 기록을 세우며 우주에 다녀온 사만다는 당시 행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만찬 중 짧은 강연을 진행했는데, 그에게서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비슷한 또래의 같은 성(性)을 가진 우주인이기도 했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표정이나 말투도 뭐랄까,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참석한 우주인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큐폴라(Cupola·ISS의 관측용 소형 유닛으로 거대한 창문이 있다)’ 얘기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이 큐폴라에서 촬영한 사진을 인상 깊게 봤어요. 나는 2008년에 비행을 해서 큐폴라에서 광활한 우주를 보진 못하고 작은 창을 통해서만 봤거든요. 큐폴라가 있을 때 우주에 간 게 부러워요.”


“정말요. 큐폴라는 멋진 곳이었죠.”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동년배에 같은 여성 우주인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금방 친구로 만들어줬다. 그날 이후 연락처를 교환하고 종종 e메일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밀라노에서 태어난 사만다는 독일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러시아, 프랑스에서 연구 경력을 쌓으며 경험의 폭을 넓혔다. 다양한 경험은 우주인이 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그가 비행 전 우주유영 훈련을 받는 모습.


5개 국어 능통한 우주인


사만다는 이탈리아 북쪽 알프스 산맥 끝자락에서 숙박업을 하신 부모님 덕분에 산악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을 볼 기회가 많았다. 또 부모님이 일하는 동안 동네 아이들과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았다.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밤하늘을 보면서 우주를 날아가는 꿈을 꿨던 것 같아. 사실 그때는 우주 비행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때였는데 말이지.” 사만다는 웃으며 회상했다.


자라면서 과학이나 공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공부했고, 독일 뮌헨공대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이탈리아 학생들에게는 일반적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학생들 대부분은 본인이 자란 고장에서 학교를 다니고, 이탈리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탈리아에만 머물렀다면 경험이 제한적이었을 것 같아. 여기저기서 공부한 덕분에 외국어도 많이 배우고 다른 문화도 경험할 수 있었지.”

 


심지어 그는 석사과정 중 우주공학의 정수인 러시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1년간 모스크바에 있는 멘델레예프 러시아 화학기술대에서 석사과정 논문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러시아어가 서툴렀지만, 공부를 하면서 많이 늘었다”며 “특히 주변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좀 더 빨리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2007년 러시아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CTC)에 있을 때 러시아어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요즘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그가 중국어까지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2017년 중국 우주인들과 함께 중국에서 생존 훈련을 받았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나라 우주인이 중국에서 함께 훈련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ISS에 있는 관측용 유닛 ‘큐폴라’에서 사진 촬영 중인 사만다. 거대한 창을 통해 지구와 우주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사만다는 이탈리아 최초 여성 우주인인 동시에, 이탈리아 공군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 중위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사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이탈리아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여생도를 받아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권(女權)이 높은 유럽에서도 이런 제약이 있었다는 게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처음으로 공군사관학교가 여생도에게 문호를 개방했는데, 이탈리아는 1999년에야 21세 이하 여학생이 지원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당시 사만다의 나이는 21세로, 이미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입학은 못해도) 막연히 우주 비행을 하기 위해 공군에 들어가서 파일럿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 다행히 법이 바뀌고 첫 3년 동안은 24세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어서 석사과정을 다 마치고 23세에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지. 아슬아슬했다고.”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만약 그때까지도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어땠을지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뭐,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연구개발 분야에서 일했겠지. 사실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박사과정에 지원할 준비도 계속 하고 있었거든.”


그의 답을 듣고 있자니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가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법이 바뀌었더라도 합격할 가능성이 낮았을 테니까 말이다.


준비된 사만다는 무사히 공군 조종사가 됐고, 복무 중 ESA에서 우주인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지원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거의 1년 동안 진행된 선발시험을 거쳐 2009년 9월 독일, 덴마크, 영국, 프랑스 그리고 또 한 명의 이탈리아 남성 우주인과 함께 유일한 여성으로 최종 6명의 우주인에 뽑혔다.

 

▲ ISS의 43번째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이 2015년 5월 지구 귀환을 앞두고 우주복을 점검하고 있다. 맨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사만다이다.



우주에서 최초로 ‘에스프레소’에 도전


그는 유럽의 여성 우주인 중 가장 오랜 시간인 약 200일 동안 우주에 머물렀다. 우주에서 가장 재밌었던 일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는 의외로 “지상과는 너무도 다른 무중력 환경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실수를 거듭했지만 몇 주 뒤부터는 평생 ISS에 살았던 것처럼, 아침에 무중력 환경에서 눈을 뜨고, ISS 내부를 날아다니고, 창밖으로 우주와 지구를 내려다보는 게 일상처럼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6개월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수행했던 과학 임무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특히 ‘기도 모니터링(Airway Monitoring)’이라는 호흡기 관찰 실험이 흥미로웠다. 이 실험은 ISS 내 밀폐문이 있는 방(에어록 챔버·airlock chamber)에 들어가 압력을 대기압보다 10psi(프사이·1psi는 0.068atm(대기압)) 낮추고 신체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대기압보다 낮은 환경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그는 “10psi가 큰 압력 차가 아니어서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그 작은 공간에 실험을 수행하는 딱 두 명의 우주인만 갇혀 있는 것이 좀 어색했다”고 답했다. 그 다운 담백한 대답이었다.


사만다는 에스프레소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우주인답게 ISS에서 최초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신 기록도 세웠다. ISS에 고온, 고압을 발생시키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고온, 고압 장치가 우주인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ESA 연구팀은 포기하지 않고 에스프레소 기계에 우주 비행을 가능케 하는 갖가지 안전장치를 추가하고 검증 실험을 했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기계의 부피도 지상에서보다 훨씬 커졌다. 물을 공급하는 장치와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를 담아 마시는 컵도 특수한 파우치로 제작해야 했다.


이에 대해 사만다는 “우주에서 신선한 에스프레소를 바로 내려 먹을 수 있는데, 그 정도 수고는 해야 하지 않겠어?”라며 ‘쿨’하게 말했다.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는 뜻이다.


순간 2008년 내가 우주에 갈 때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우주 식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김치가 있었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그게 에스프레소였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만다는 2015년 비행을 마친 뒤에도 훈련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달 저궤도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인 ‘루나 게이트웨이(Lunar Gateway)’에 유럽 우주인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현실적으로 나에게 (달에 갈) 기회가 주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가보고 싶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문제 때문에 계획이 늦춰질 수는 있지만,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라고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담담함과 꾸준함이라는, 우주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다시 한번 그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1 ISS에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만다의 모습. 우주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 우주인은 그가 처음이었다.
2 ISS 에어록 챔버에서 동료 우주인들의 기도 모니터링 실험을 준비 중인 사만다. 밀폐된 방 안에서 압력을 낮춰 폐 등 신체 변화를 측정한다.
3 ISS의 43번째 임무 패치. ISS와 여러 행성, 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소연
2008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전 세계적으로는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로 우주에 다녀왔다. KAIST에서 기계공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대학 바이오시스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학도 출신이다. 현재는 미국 실리콘밸리 우주 관련 스타트업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에서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으로, 미국 워싱턴대 공대에서 자문위원 및 겸직교수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우주인으로서 열정과 사명감을 갖고 우주산업 시대에 맞춰 과학 대중화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mcax17@gmail.com

201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기계공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