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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암연구에서 우뚝 선 토종과학자 김규원

동양적 사고로 암과 혈관 관계 밝혀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상호 연관된 생명현상 규명에 분석적인 연구방법을 통합적으로 접목시켜 질병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지난 4월 ‘과학의 달’ 제1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서울대 약학과 김규원 교수(51)는 자신의 연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기술인에게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이다. 상금이 3억원이나 된다. 이 상을 받으려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개발업적이나 기술혁신을 이룩해 국가발전과 국민복지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며 국내에서 업적을 이뤄내야 한다. 결국 김 교수가 이런 자격을 갖춘 과학자라는 셈인데, 어떤 내용일까.

김 교수는 1990년부터 암과 같은 질병과 관련된 혈관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는 최근 3년 동안 세계 최고권위의 생명과학저널들에 논문을 계속 게재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이제까지 총 4편의 국내 논문이 게재된 생명과학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지인 ‘셀’에 지난해 11월 그의 논문이 실렸다. 그리고 2001년에는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메디슨’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편이, 그리고 올 7월에 여기에 또 한편이 게재됐다. 지금까지 네이처 메디슨에 게재된 국내 논문 수는 총 3편뿐이다. 또한 최근 5년 동안 국제학술지에 63편, 국내학술지에 39편, 특허출원 25건 등 총 1백27건의 연구실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김 교수가 이처럼 뛰어난 연구성과를 이뤄내는데 해외와의 공동연구가 아닌 순수 국내의 여건과 인력을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과정으로 이처럼 멋진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1996년 9월 국제 암세포 분화학회 참석차 벨기에 브뤼 셀에 갔을 때. 이때 김규원 교수(가운데)는 형제와도 같 았던 고(故) 고신대 박병채 교수(왼쪽)와 함께 했다.


“상을 타신 업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990년대 들어서부터 암 같은 질병과 관련된 혈관을 연구해 왔습니다. 지난해 셀에 게재된 논문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성과에요. 하지만 이번 상은 단독업적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혈관 연구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세포는 증식할 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그 주변에 혈관이 많이 생긴다. 이같은 혈관생성은 체내 조직세포 내 산소농도가 떨어질 때 일어난다. 김 교수는 세포의 산소농도와 혈관생성의 관계를 단백질 수준에서 밝혀냈다.

세포 속에는 ‘HIF-1α’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세포의 산소농도가 떨어지면 그 주변으로 혈관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2-3분 동안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세포가 바로 파괴될 정도로 산소부족은 체내에서 매우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HIF-1α가 산소부족 상태일 때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이미 때는 늦어버린다. 그래서 HIF-1α는 세포 속에서 항상 만들어진다. 대신 정상산소농도일 때는 이 단백질이 분해돼 기능을 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HIF-1α가 분해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그는 ‘ARD-1’이라는 단백질이 관여하고, ARD-1이 HIF-1α에 결합해 HIF-1α가 분해되는 메커니즘을 알아냈다. 이 연구결과가 생명과학분야 최고 권위지인 셀에 게재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plaza.snu. ac.kr/~qwonkim/ 참조).

하나의 세포 속에는 수만가지의 단백질이 있다. 이 속에서 어떤 단백질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를 밝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 교수는 인간사회에서 세포나 분자수준의 세계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간사회의 변혁기에는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들도 새로운 혈관을 생성시킬 때 핵심적인 혈관내피세포를 중심으로 다른 종류의 세포들이 상호작용과 협력에 의해 혈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분자수준의 단백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1992년 부산대 분자 생물학과 재직 당시 실험실 지도 학생들과 일본 가나자와대 암 연구소의 무라카미 교수 와 함께 찍은 사진.


“1990년대 들어서부터 혈관연구를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계기였습니까?”

“미국 하버드대 다나-파버 암연구소에서 2년 동안 박사후 연구원으로 암연구를 했습니다. 그 뒤 1987년 3월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조교수로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구를 하려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학과가 생긴지 3년째라 연구비도 실험실도 대학원생도 없었지요.”

김 교수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박사과정 때 공부하던 효모로 간단한 수준의 연구를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암연구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되살린다. 하지만 선진국과의 수준이 이미 상당히 벌어져 있었고 쫓아갈 만한 환경을 마련하기조차 힘들었다.

이때 김 교수는 우리의 현실에서 암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 여건에 맞으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려면 미국에서 하던 것을 따라하면 안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때 암과 관련된 연구분야로 그 당시 시작단계에 있던 혈관이 떠올랐다.

혈관은 여러모로 암세포와 유사한 점이 많아 김 교수는 자신이 아는 암연구 지식을 그대로 여기에 이용할 수 있었다. 혈관은 암세포처럼 증식을 하고, 주변으로 이동해가면서 조직들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즉 혈관도 암세포와 유사하게 증식, 이동, 침투의 성질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김 교수에게 혈관연구가 좋았던 또다른 이유는 연구비가 적게 든다는데 있었다. 혈관은 태아일 때 가장 활발하게 생성된다. 때문에 혈관연구에는 달걀(수정란)을 이용한다. 김 교수는 개당 2-3백원 하는 수정란의 껍질을 조금만 벗겨내면 혈관의 생성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교수에게는 이같은 연구과정에서 새벽까지 함께 고민했던 연구의 동반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고신대 의대 박병채 교수다.

“박병채 교수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부산대로 온지 얼마 안된 1987년 가을 박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해 가을 충남대 의대에서 암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귀국한지 얼마 안된 때에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때 발표한 내용이 박 교수님이 벨기에에서 박사과정에 했던 분야와 같았어요. 그분은 미리 안내된 발표내용을 보고 심포지엄 장소로 만나러 오셨어요. 국내에서 자신과 같은 연구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고 하더군요.”

대전에서 처음 만난 두사람은 부산으로 돌아온 이후 자주 만남을 가졌다. 김 교수는 박 교수와 여건도 연구비도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과연 세계수준의 연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이른 새벽까지 술도 마시면서 함께 논의했다. 그때마다 박 교수는 김 교수에게 “연구라는 것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두사람은 우리나라에 많은 간암을 대상으로 혈관연구를 같이 해보자고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

박 교수는 간암 분야의 임상 의사였지만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기초연구에도 정통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환자와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기초하는 사람들이 암을 어떻게 접근하고 연구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이 둘의 만남은 기초와 임상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1998년 1월 미국 암학회지인 ‘캔서 리서치’에 간암에서의 혈관연구에 대한 결과를 게재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그해 가을 고혈압으로 인한 갑작스런 뇌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김 교수에게 있어 박 교수는 단순한 공동 연구자가 아니라 형제나 마찬가지였다. 김 교수는 “마치 암벽을 앞서 올라가던 선배가 추락하고 그 대신 그 선배가 걸어준 로프에 의지해 눈물을 머금고 올라가는 심경이었다”며 그때를 회상한다.


암세포가 분화될때 그 주변에 있는 혈관을 끌고 오는 메커니즘을 단백질 수준에서 밝혀낸 것이다.


“암 혈관에 대한 교수님의 새로운 시각이 최근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면서요?”

“1990년대 중반 하버드대 주다 포크만 교수가 ‘암은 혈관생성이 필수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암세포에만 매달렸던 연구자들이 혈관쪽으로 관심을 많이 돌렸습니다. 현재는 많은 연구자들이 혈관연구를 하고 있죠. 제 경우는 국내에서 시작해서 초창기에 합류를 한 셈입니다.”

서구에서는 지난 50여년 동안 암세포 자체만을 제어하려는 연구를 해왔는데, 그 결과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1990년대 중반 들어 혈관으로 방향 전환이 일어난 것이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이같은 전환이 이뤄지기 전 자신이 먼저 혈관쪽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또다른 배경에는 상호관계에서 생명체를 본다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 다른 것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고 단독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항상 생각을 해왔다. 즉 암이라는 질병이 암세포만의 증식이 아니라 다른 것, 즉 주변의 혈관생성과도 깊이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상호관계의 사고방식이 앞으로 생명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실험장비 등의 연구여건이 상당히 갖춰져 있는 현재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으러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세계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가 비록 박사학위는 미국에서 했지만 오늘날의 혈관연구는 이러한 동양적인 상호관계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순수하게 국내 여건에서 이뤄낸 것이다. 특히 최근의 연구성과로서 뇌혈관세포와 뇌성상세포, 그리고 세포주변의 산소농도가 상호작용해 뇌혈관의 생성과 분화가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네이처 메디슨 7월호의 최신 과학뉴스란에 자세히 소개됐다. 그의 생각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교수는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이 여전히 국내보다 해외 유학생들에게 치중되고 있는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으로 받은 상금의 일부를 국내 대학원생 우수 논문상의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제는 어릴시절 얘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은 언제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요? ”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였습니다. 그 당시 공상과학 만화책에 등장하는 과학자를 보고 나도 과학자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집이 약국을 했는데, 비커같은 간단한 실험기구들을 갖고 놀곤 했습니다. 제가 약대로 진학한 것은 우리집 약국에 오랫동안 계셨던 약사분 덕분이었어요.”

1970년대 김 교수가 약대에 입학했을 때 대부분 친구들은 약대에서 질병연구를 하는지 잘 몰랐다. 질병을 치료하는 과학자가 되려면 화학과나 의대를 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집 약국 일을 돌봐왔던 관리약사가 그에게 약이란 무엇인지, 질병을 치료하려면 어떤 과학자가 돼야 하는지를 설명해줬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흔들림이나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님이 약국과 조그만 제약회사를 경영하시다가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은 그가 약국을 하거나 취직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그는 그때 공부하는 대신 취직을 해서 부모님께 보태드린다 해도 그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만큼의 경제적인 보탬이 되도록 했다. 공부를 선택했으면서도 장남으로서의 역할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수님은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신지요?”

“저는 능력이 부족해 못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덕분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워낙 음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딜 가도 노래를 부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한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노래 한번 들어본 사람들은 다음에는 노래방에 같이 가자고 안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음치인 채로 마음 편하게 지냅니다.”

그는 다른 운동이나 취미도 잘하는 것이 없고 술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까 자연히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다른 일을 하는데 김 교수는 오히려 반대다. 연구가 편하다고 한다. 그래서 노는쪽이 아니라 연구쪽 사람과의 교류가 활발하다.

지금 그가 선택한 일상에서의 탈피는 걷기다. 걷는 동안 연구할 때와는 반대로 생각은 멈추고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새로운 연구에너지를 충전시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가 보여줄 놀라운 성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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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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