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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시간의 굴레 벗어던진 '멜 깁슨의 사랑'

 

미래에는 죄수를 가두는데 냉동보존 기술이 이용될지도. '데몰리션 맨'의 한 장면


진시황의 꿈이 실현되는 날은 올 것인가. 냉동인간이 되어 미래에 살고자 하는 희망을 수많은 SF영화들이 구현해내고 있다.

묵직한 금속성 굉음을 내뿜으며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지나가는 우주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심사숙고'해 보자. 소리는 매질의 진동으로 전파되는 진동파다. 진공인 우주에서 우주선은 굉음을 낼 수없다.

그렇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아온 장면들. 그래서 이제는 어엿한 사실처럼 느껴지는 익숙한 장면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자. 어떤 원리일까.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우리의 현실은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가. 사이보그와 로봇이 득실거리고, 비행선이 택시처럼 지나다니며, 텔레포테이션(공간이동)과 시간여행이 마음대로 가능한 영화적 상상력에 대해 데카르트처럼 회의해 보자. 1초에 24발이나 난사되는 장면에 정신을 잃지 말고 가끔은 영화를 냉철한 눈으로 진지하게 보자. 영화는 '진실을 위한 허구'여야 하니까.

영화 '멜 깁슨의 사랑이야기'(Forever young)에서 멜 깁슨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하려하나 떨리는 마음에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아까운 그는 물리학박사를 찾아가 자신을 냉동 보존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깨어나면 자신도 깨워달라고. 59년 후 다시 깨어난 멜 깁슨. 그리고 'You are my sunshine!"과 함께 햇살같은 사랑이 시간의 굴레를 넘어 시작된다.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에선 엉뚱하게 쓰인 냉동보존기술을 보여준다. 다루기 힘든 험악한 죄수들을 냉동시켜 버린 것이다. 간수도 필요 없고 탈도 안 생기고 생명 유지 프로그램만 돌려주면 되는 냉동감옥. 게다가 죄수들은 고통도 없고 늙지도 않으니 그들에게도 나쁠 건 없다.

이외에도 영화에선 냉동기술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에일리언'(Alien)에서 주인공 리플리는 에일리언을 처치하고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냉동캡슐 안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57년간 동면에 들어간다. '유니버설 솔저'(Universal soldiers)에서는 월남전에서 죽은 병사를 다시 살려내 초특급 전사로 개조시키는 데 냉동기술이 사용된다.
 

연인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동면에 들어가는 멜 깁슨. '멜 깁슨의 사랑이야기'의 한 장면


암환자를 미래로

이렇게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인간 냉동 기술. 과연 그것은 가능한 걸까.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 실현가능할까.

1875년 독일의 린네가 암모니아를 이용한 냉동기를 처음 개발한 이래 냉동기술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1964년 미국의 에팅거 교수가 인간을 냉동시켜 보존 하는 것이 가능하고 해동시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인간의 냉동보존이 가능하다면 암 환자들에게는 너무도 화려한 미래가 준비된다. 지금은 암을 완전히 고치기 어렵다. 암환자를 냉동 보존시켰다가 암이 정복된 미래에 다시 해동시킨다면 암은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닐 것이다. 드디어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에팅거 교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불사주의 협회'를 만들어 현재 냉동 보존을 희망하는 수많은 환자들의 후원으로 냉동 보존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겐 죽음도 치유가능한 질병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의 냉동보존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어왔다. 우선 냉동을 하게 되면 인간의 세포는 여러가지 손상을 입게 된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 부피가 10%정도 증가해 세포의 구조를 파괴해 버린다. 또 얼음 결정이 생기면 세포는 탈수현상으로 인해 쭈그러들고 만다. 해동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1950년 정자와 적혈구 냉동보존에 성공하면서 냉동보존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다. 물고기를 급랭했다가 다시 살리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항온동물인 개를 냉동시켰다가 다시 살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체를 냉동시킬 수 있는 걸까. 현재 냉동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은 세포조직을 냉동과정 중에 손상되지 않도록 글리세롤 용액에 넣고 영하 1백93℃ 정도로 급랭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생체시계가 그 작동을 멈추게 돼 세포는 노화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존돼 수천 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노화의 원인에 관해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다.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 메커니즘이 낡아 자체 수리 능력을 잃고 쇠퇴한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노화 유전자가 예정된 시기에 작동해 세포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들을 생산하는 것을 느리게 하거나 멈추게 한다는 이론이다.

또 생물학적 시스템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호르몬 시계가 존재해 어느 정해진 시기가 되면 뇌하수체는 사망 호르몬을 분비하고 이 호르몬이 노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인간의 몸 속에 있는 생체시계가 우리 몸의 노화를 총괄적으로 관장 하는 것이다. 냉동보존기술은 인간의 신체에 본연적으로 내재된 시간을 냉동시켜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 주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된 것이다.

뒤바뀐 아버지와 아들

좀 더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정말로 인간을 냉동 보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냉동보존기술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영원히 살고 싶은 인류의 오랜 꿈이 이뤄진다면 인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시모프 박사의 충고처럼 '냉혹하지만 질서있는 만물의 세대교체'라는 자연의 섭리 안에서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개봉된 영화 '스모크'에 재미있는 얘기 한편이 있다.

"25년 전 한 젊은이가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갔는데 불행히도 그는 눈사태를 만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시체도 찾지 못했지. 그 후 세월이 흘러 당시 어렸던 그의 아들이 청년이 돼 스키를 타러 갔다네. 그런데 커다란 바위 위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다 저 아래 얼음 속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어. 마치 거울 속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았거든. 시체는 얼음 속에서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던 거야.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보다 더 젊었다는 거야. 아들의 인생에는 시간이 흘렀는데 아버지의 인생에는 시간이 멈춘 거지."

이 영화의 감독 웨인 왕은 이 대목에서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젊은 시절에 죽은 아버지보다 더 많이 세상에 대해 고뇌하고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 늙는다는 것은 인생의 깊이를 이해한다는 것. 생리적 노화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과학이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고군분투하기보다 세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인생의 현미경이 돼 주면 참으로 좋으련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미리 걱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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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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