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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크랜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최근 각종 식품에 베리 열풍이 거세다. 주스나 잼, 말린 과일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케익, 빵에도 고명으로 즐겨 쓴다. 가끔은 생과(生果)가 보이기도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과일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지금 먹고 있는 요구르트 속에 들어 있는 작고 동그란 과일, 즉 베리(berry)의 이름이 뭔지도 모른 채 ‘고것 참 맛이 새콤달콤한 게 독특하네!’라고 생각한 적도 있을 것이다.


최근 불고 있는 베리 열풍을 이끌고 있는 건 단연 블루베리다. 짙은 남색의 앵두만한 블루베리는 생김새도 예쁘지만 향기도 좋고 맛도 일품이다. 블루베리의 인기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0대 건강식품’을 선정했는데 블루베리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 밖의 9가지는 토마토, 시금치, 적포도주, 견과류, 브로콜리, 귀리, 연어, 마늘, 녹차다.




항산화 물질 가득

블루베리(blueberry)는 진달래과 정금나무속에 속하는 식물로 여러 종이 있다. 주로 북미나 유럽에 자생하는 관목으로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열매가 익는데 마치 흑진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다. 블루베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즐겨 먹었는데 이때 이미 민간요법에 쓰였다고 한다. 블루베리가 농업과수로 개량된 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첫 육종품종이 나왔고 그 뒤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사과나 배 같은 다른 과일에 비하면 블루베리 농업의 역사는 일천한 셈이다.

블루베리는 열량이 낮은 편이고(60kcal/100g) 식이섬유가 풍부하다(2.4g/100g). 또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데 특히 망간(0.3mg/100g, 일일 권장섭취량의 20%), 비타민C(10mg/100g, 일일 권장섭취량의 17%), 비타민K(19μg/100g, 일일 권장섭취량의 24%)의 보고다.




블루베리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관련된 일화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야간폭격을 할 때 오폭 없이 늘 정확히 목표지점에 폭탄을 투하한 한 비행사의 비결이 블루베리로 밝혀져 비행사들이 블루베리 잼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블루베리가 밤눈을 밝게 했다는 것.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유럽 블루베리’는 우리가 먹는 블루베리의 친척인 빌베리(bilberry)다. 이 밖에도 블루베리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심혈관계 질환에 잘 안 걸리고 각종 감염질환에도 효과를 봤다고 말해왔다.

1990년대 후반 과학자들이 블루베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런 ‘속설’이 근거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블루베리와 관련한 논문이 수백 편 나왔고 그 범위도 항암작용, 항노화작용, 항심혈관질환 등 광범위하다.

식물의 생리활성물질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약대 서영준 교수는 “블루베리에는 다양한 생리활성 화합물들이 함유돼 있다”며 “그중에서도 블루베리의 독특한 색을 부여하는 안토시아닌 계열 화합물들의 강력한 항산화 효능은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보통 블루베리 100g에는 안토시아닌이 120~208mg이나 들어 있다.

서 교수는 “동맥경화, 당뇨병, 암, 치매 같은 퇴행성 질병은 활성산소가 일으킨 산화 스트레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며 “활성산소는 세포막을 이루는 지질을 산화시켜 세포막을 파괴하고 각종 효소를 공격해 활성을 떨어뜨리고 DNA를 변형시켜 돌연변이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블루베리가 각종 퇴행성 질환에 효과가 있는 이유다. 블루베리의 어떤 성분들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런 작용을 하는지도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케르세틴이란 성분은 암세포의 아포토시스(apoptosis) 즉 세포가 스스로 죽는 메커니즘을 유발해 암을 억제한다. 우르솔산은 암세포의 DNA합성을 억제해 세포분열을 막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블루베리를 비롯한 베리류의 항암효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게리 스토너 교수팀은 최근 구강암 환자들에게 베리 추출물을 복용시키는 동시에 젤로 만들어 종양에 바르게 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험들은 대부분 고농도의 블루베리 추출물을 질병에 걸린 동물이나 배양한 암세포에 처리해 얻은 결과다. 따라서 이런 효과가 상대적으로 농도가 낮은 식품으로 섭취했을 때도 나타날 수 있을까. 서 교수는 “물론 그런 측면이 지적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소량이라도 꾸준히 섭취하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격 비싼 게 흠

블루베리 주스나 잼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생과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얼리거나 말린 상태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블루베리가 재배되면서 싱싱한 국산 블루베리를 만날 수 있다. 5월이면 온실에서 재배한 블루베리가 선을 보이고 6월 하순부터는 노지에서 자란 블루베리가 출하되기 시작해 9월초까지 시장에 나온다. 다만 블루베리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온실 재배로 일찌감치 나온 블루베리는 100g에 9000원 정도이고 제철에도 5000원을 호가한다. 아직 블루베리가 보급단계라 국내 연간 생산량이 수십t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상큼한 블루베리 생과를 먹으며 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호사를 한번쯤 누려보면 어떨까.



한국 블루베리의 대부, 이병일 교수



“제가 갖고 있는 품종이 100여 가지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구해다 놓은 거지요.”

2006년 창립한 한국블루베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병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백발을 휘날리며 여전히 블루베리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원예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블루베리 인기가 높다는 걸 알고 관심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블루베리를 국내에서 재배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를 거듭했죠. 블루베리가 좋아하는 재배조건을 몰랐으니까요.”

보통 과수는 중성토양을 좋아하는데 블루베리는 이런 좋은 땅에서 잘 자라지 못했다. 오히려 pH가 4.5~5.0인 산성토양을 좋아한다. 이 교수는 유황가루를 뿌려 토양의 산성도를 높였다(유황이 물을 만나면 황산으로 바뀐다). 우리나라 겨울을 나는 것도 문제다. 블루베리는 하이부시(highbush)블루베리, 로부시(lowbush)블루베리, 래빗아이(rabbit eye)블루베리 3가지 종이 있다. 열매가 많이 열리는 래빗아이블루베리를 개량한 품종들은 경기권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

“지금은 내한성이 우수한 하이부시블루베리를 주로 심습니다. 래빗아이는 제주도에서 일부 재배하고 있고요. 로부시 종은 유효성분은 가장 많이 들어 있지만 과실도 작고 수확량도 떨어져 거의 재배하지 않지요.”

 


 

2002년 퇴직하고 나서 이 교수는 오히려 더 바빠졌다. 블루베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 현재 수원에 블루베리 농원 2곳을 운영하면서 각종 품종의 특성을 연구하고 블루베리 보급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내에선 하이부시블루베리를 개량한 품종으로 과실이 빨리 익고 수확량이 많은 듀크(Duke), 과육이 단단하고 풍미가 좋은 스파르탄(spartan), 내한성이 매우 좋은 패트리어트(Patriot) 등이 주로 재배된다.

“7~8년 전만해도 트럭에 블루베리 묘목을 싣고 다니며 농부들에게 심어보라고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블루베리가 유명세를 타면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 교수는 “블루베리는 안토시아닌을 비롯해 식물을 보호하는 각종 활성 분자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며 “따라서 병충해도 거의 없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포도와는 달리 무리지어 있는 과실이 익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수확 철이 되면 한 나무도 며칠에 걸쳐 익은 것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 따야 된다. 보통 나무 한 그루에 5kg정도 나온다.

“블루베리는 버릴 게 없습니다. 껍질째 먹을 수 있고 씨도 아주 작아 잘 느껴지지 않지요.”

아직 5월 중순이라 농원의 블루베리 나뭇가지에는 꽃이 막 떨어진 녹색의 열매가 달려있다. 6월 20일은 돼야 익은 과일이 나온다며 이 교수는 블루베리를 맛보이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그때 꼭 한번 들르세요. 블루베리도 따고 맛도 보면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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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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