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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메가번개를 맨눈으로 보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지구에서 약 400km 상공에 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와 비슷하니, ISS는 ‘우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만큼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ISS에서는 단 1초를 숨쉬기 위해서,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서 수많은 기계가 작동해야 하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든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편히 숨을 쉴 수 있고, 시원한 약수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지구가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가르쳐 주는 곳이 바로 ISS다.

틈만 나면 지구 보려 창으로 달려가
소유스 로켓에 오르기 전부터 가장 기대하던 일 중 하나가 바로 ISS에서 ‘고마운’ 지구를 내려다보는 일이었다. 세계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지구는 푸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금 우주에 있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히 느끼게 해 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SS에 머무는 동안 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은 지구를 내려다보며 망중한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실험하다가 틈만 나면 ISS에 있는 작은 창으로 ‘날아’ 갔고, 자다가 문득 깨도 침낭 옆 창문을 열어 지구를 내려다봤다.

다행히 18가지 실험 가운데 지구를 관측하며 다양한 대기 현상을 사진 찍는 실험이 있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얇은 대기층을 사진에 담기도 했고, 해륙풍으로 생긴 대륙의 양떼 구름을 쫓기도 했다. 중위도 지방에 발생한 거대한 사이클론의 규모에 놀라기도 했다.

대기 현상 사진을 찍는 임무 외에 ISS가 우리나라 상공을 지날 때 한반도를 사진 찍는 일도 중요한 임무였다. ISS는 하루에 지구를 16바퀴나 돌지만, 내가 ISS에 머무는 동안 한반도 상공을 지나는 일은 대여섯 번 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 두 번은 HAM(아마추어 무선 통신)으로 지상의 학생들과 대화를 했고, 또 몇 번은 TV와 라디오 생중계 인터뷰를 했다. 결국 한반도 상공을 지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나마도 한 번은 귀환준비 훈련 일정이 잡혀있었다.

어떻게 온 ISS인데…. 우리나라를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잡고 싶었다. 그래서 귀환준비 훈련 도중 ISS 선장인 페기 휫슨에게 한반도 상공을 지나는 기회가 몇 번 되지 않으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휫슨은 훈련을 잠깐 멈추고 사진을 찍으러 창으로 갈 수 있게 해줬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창에 바짝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해질 무렵인데다 구름이 한반도를 가득 덮어 어디가 땅이고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됐다. 차라리 한 밤 중이면 도시의 불빛으로 구름이 꼈더라도 어디가 어딘지 구분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임무 일정에 짜여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ISS가 한반도 상공을 지나기 한참 전에 비디오카메라를 한쪽 창에 설치해서 녹화를 시작했고, 나는 다른 한쪽 창에 바짝 붙어 카메라를 대고 셔터 누를 준비를 했다. 단 몇 분의 시간 밖에 없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한반도에 진입하면서부터 어디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베테랑 우주인, 메가번개에 콧방귀?
지구를 그렇게 카메라로만 관측한 건 아니었다.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ISS의 즈베즈다 모듈의 가장 큰 창에 KAMTEL이라는 망원경을 설치했다.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팀이 개발한 이 망원경은 고층대기 방전현상을 촬영하는 망원경이다.

일명 ‘메가번개’라고 불리는 고층대기 방전현상은 주로 성층권 이상의 고층 대기에서 발생하는 초대형 방전 현상으로 구름에서 땅으로 치는 보통 번개와 달리 구름에서 우주 방향으로 친다. 아직까지 발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관측한 영상자료도 부족한 형편이다.

KAMTEL 망원경에는 수천 개의 초미세거울이 붙어있는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3mm인 거울 2개가 들어 있다. 이 망원경은 처음엔 지름 200km의 넓은 영역을 바라보다 특정 위치에서 메가번개가 치면 바로 촬영 영역을 좁혀 이를 자세히 촬영한다.

이 망원경을 일과시간 동안 창에 설치해두면 다른 우주인들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자기 전에 설치했다가 기상 시간에 맞춰 떼기를 반복했다.
메가번개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데다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 망원경을 설치하는 것으로 실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 망원경을 설치하다가 메가번개를 우연히 맨눈으로 관찰한 것이다.

지구 위에 유유히 떠있는 구름에서 ISS 쪽으로 치는 번개는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다. 단 한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주변으로 뻗는 번개를 보면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옆에 있던 동료 우주인을 불러 신기한 현상을 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미 몇 번의 ISS 체류 경험이 있고, 당시 6개월 동안 ISS에 머물고 있던 러시아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는 “가끔 볼 때가 있다”며 여유를 부렸다.

ISS에서 돌아온 뒤 촬영 데이터가 저장된 2GB 메모리 카드 6개를 분석한 결과 고층대기 방전현상으로 추정되는 빛기둥 데이터가 여러 개 발견됐다. 박 교수팀은 방전현상이 전개되는 양상을 ms(밀리초, 1ms=1000분의 1초) 단위로 분석하는 과정을 끝내면 이를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우주에서도 통한 IT강국의 면모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세계 여러 나라 우주인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은 이제 우주개발에 첫 걸음을 떼는 나라라는 느낌에 주눅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 사실은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사실이다.

그에 걸맞게 ISS에서 했던 실험 가운데 하나가 FRAM(강유전체 메모리 반도체 소자)을 테스트하는 일이었다. FRAM은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기존 DRAM의 장점과 전기가 끊겨도 데이터를 계속 저장할 수 있는 플래시메모리의 장점을 모두 갖춘 차세대 반도체 가운데 하나다.

플래시메모리가 들어있는 USB메모리는 1.5Gb(기가바이트) 영화 한편을 복사하는데 몇 분이 걸리지만, 실험에서 사용한 FRAM은 2~3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FRAM이 우주환경에서도 오류를 일으키지 않고 작동하는지 세계 어느 나라도 실험한 적이 없다.

ISS에서 플래시메모리가 들어있는 카메라를 1년 정도 사용하면 촬영한 영상 화소가 조금씩 깨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플래시메모리가 우주 방사선이나 심하게 변하는 자기장 같은 우주 환경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개발한 FRAM이 우주에서도 지상과 같은 좋은 성능을 보이는지 확인된다면, 앞으로 ISS에서 사용하는 메모리를 모두 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실험을 위해 지난 2월 러시아 무인 화물우주선 프로그레스에 실어 ISS로 64Mb(메가바이트)급 FRAM을 미리 보내 두 달 동안 우주환경에 노출시켰다. 내가 할 일은 ISS에서 머무는 동안 FRAM에 데이터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뒤, 오류검사용 메모리를 갖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지구로 돌아온 뒤 전자부품연구원에서 메모리를 분석했다. 실험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조마조마 했는데, 분석 결과 2번의 실험 데이터에서 전혀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다.

담당 연구원은 “지상과는 다른 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는데, 지상에서와 똑같은 성능을 보여 아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당장 우주에서 쓸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를 개발한 우리나라가 한없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끝으로 ‘이소연 박사의 생생 우주 실험보고서’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소연 선임연구원 >;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3만6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돼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을 방문했다.

ISS에 숨겨놓은 이야기

우주에서 본 한반도는 하나였다


ISS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한반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반도 사진을 찍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카메라 렌즈로 한반도를 봤을 뿐 정작 눈으로는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 게다가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일에 정신이 없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ISS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귀환용 소유스 우주선에 짐을 모두 실은 뒤 예정에 없던 짬이 생겼다. 지구로 함께 돌아갈 유리 말렌첸코와 페기 휫슨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두 시간 동안 이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창으로 냉큼 날아갔다. ISS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차분하게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귀환 전 줄어든 혈액량을 보충하기 위해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음료를 마시며 여유 있게 지구의 풍경을 즐겼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ISS의 비행궤도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언제 우리나라 위를 지나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익숙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한강과 동남쪽 끝 포항의 호미곶, 그리고 저 아래 제주도까지, 지도에서만 보던 한반도 전체가 그대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위성사진보다 더 푸르고 올록볼록한 지형이 그대로 드러난 한반도가 둥근 지구에 살짝 휘어져 붙어 있었다.

문득 북쪽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생각이 났다. 한반도는 그 어디에도 경계가 없는 하나의 땅덩이인데, 북쪽의 동포들은 내가 우주에 와있다는 사실을 알까. 그곳에도 우주에 날아오르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하는 과학자가 있을까. 그들도 우주를 꿈꾸고 있을까.

북한에도 나처럼 어릴 적 보던 만화와 영화를 잊지 못하며 우주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들에게도 우주에 대한 경험을 얘기할 날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남북이 하나가 돼 로켓을 쏴 올리고, 함께 우주에 갈 날이 곧 오리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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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유인우주팀 선임연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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