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금속’, ‘현대의 여의봉’이라고 불리우는 금속이 있다. 신비의 합금이라고 일컬어지는 형상기억합금이 그것이다. 이제 그 베일을 벗겨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금속’이라고 하면 탱크 기차 철교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강하고 딱딱한 물체를 떠올린다. 그래서 ‘무쇠같은 사나이’라고 하면 깨지면 깨졌지 휘어지지 않는 즉 항복하지 않는 사나이를 뜻하게 되었다. 또 ‘철의 여자’는 영국의 대처수상과 같이 남자 이상의 강인한 여성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금속의 기존 통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만한 금속이 새롭게 등장,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바로 형상기억합금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 금속을 경이의 눈으로 쳐다 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달나라에 고기잡이 그물모양을 한 거대한 접시안테나를 가져가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보통의 금속을 소재로 하면 안테나의 무게도 무게려니와 부피가 너무 커서 운반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이때 형상기억합금이 활약하게 된다. 형상기억 철사로 그물모양의 망을 제조, 고기잡이 그물처럼 접어서 운반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달나라에 도착해 70℃의 온도로 가열만 하면 접시모양의 원형으로 되돌아와 안테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마치 꿈과 같은 이런 이야기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형상기억합금은 일반 금속과 같은 열과 전기의 양도체이다. 동시에 스테인리스 정도의 강도를 갖는다. 보통 금속과 다른 점은 어떤 일정한 형태(접시모양 또는 컵모양 등 임의의 형태)를 기억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기억해 두었다가 형태를 아무렇게나 망가뜨려도 일정한 온도만 가해주면 기억된 원래 형태 그대로 찾아가는 묘한 성질을 갖는 것이다.
담배 파이프가 발견의 동기
금속이 이와 같이 묘한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은 실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지금부터 약 20년전.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해군병기연구소에서는 잠수함이나 상륙용함정의 구조재로 사용할 목적으로 가볍고 강하면서 바닷물에 쉽게 썩지않는 새로운 합금을 개발하고 있었다. 물론 이 작업은 비밀리에 수행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쏭달쏭한 사건이 터졌다. 한 젊은 연구원이 티타늄(Ti)과 니켈(Ni)의 배합비를 여러가지로 변화시켜 제조한 합금들에 대하여 굽힘강도 시험을 한 연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굽힘강도시험을 거친 티타늄─니켈 합금들은 천차만별로 구부러졌다. 연구원은 자신의 시험을 보고하기 위해 이 구부러진 합금들을 연구 책임자 앞에 가져갔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굽어있던 시험합금들을 책임자 앞에 내놓고 보니 시험하기 전 상태인 평평한 판상으로 변해있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상히 생각하여 다시 확인시험을 하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원인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뜻밖에도 담배파이프였다. 책임자가 물고있던 담배파이프 앞에서 시험합금들을 보고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보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파이프 앞에서만 변형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파이프의 열이 시험합금들의 형상을 원래대로 변형시켰음을 시사하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최초의 형상기억합금인 티타늄─니켈 형상기억합금의 발견 동기이다.
미 해군 연구팀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 합금을 즉시 특허 신청하였다. 동시에 니켈─티타늄합금(Nickel-Titanium Alloy)을 해군병기 연구소(Naval Ordnance Laboratory)에서 발견했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지어냈다. 즉 이들 영어 단어의 첫글자만을 따서 니티놀(NITINOL)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니티놀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우수한 형상기억합금으로 알려져 있다. 니티놀이 발견된 후 많은 학자들이 그 원리를 밝혀냄에 따라 ‘동생’들이 뒤를 이었다. 오늘날에는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는 동(銅)계 형상기억합금, 철을 주성분으로하는 철계 형상기억합금 등 30여 종의 형상기억합금이 개발되어 있다.
왜 금속이 기억력을 갖는가?
1963년 니티놀의 형상기억효과가 발견된 후 이 기묘한 현상이 왜 특정합금에 서만 일어나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옛날부터 잘 알려진 철강의 담금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장간에서 낫을 만들 때 마지막 단계에서 낫을 벌겋게 달구어 찬 물에 급히 담근다. 그러면 연하던 낫이 강한 낫으로 변한다. 이는 강철 내부에 마르텐사이트라 불리는 강한 조직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형상기억합금에서도 강(鋼)을 냉각시킬 때 형성되는 마르텐사이트조직이 형성된다. 바로 이 마르텐사이트조직이 형상기억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형상기억합금에 형성된 마르텐사이트조직과 동일한 조직이다. 그러나 강철에 형성된 마르텐사이트조직은 단단하여 변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열하여도 형상변화를 하지 않는다. 반명 형상기억합금에 형성된 마르텐사이트조직은 연하여 쉽게 변형이 가능하다. 또 열을 가하면 원래의 형상으로 되돌아 간다.
3가지 거동을 한다
형상기억합금의 변형거동을 살펴보면 크게 3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1방향기억 거동. 이 거동의 특성을 알기 위해 손가락에 맞는 크기로 반지를 만들어 기억처리를 해 보자. 이어 반지에 힘을 주어 크게 벌리거나 또는 쭈그러 들었을 경우 더운 물에 담그면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반지를 다시 찬 물에 넣거나 열을 가하여도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힘을 주어 변형시킨 다음 더운 물에 넣으면 반지는 원형태로 돌아간다.
형상기억합금의 거동특성중에는 2방향기억특성도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거동이다. 예로 한 스프링을 높은 온도에서 5cm 길이를 기억하도록 처리한다. 그리고 그 스프링을 잡아당겨 7cm로 늘린 다음 낮은 온도에서 기억하도록 해 보자.
이 묘한 스프링을 70℃정도의 따뜻한 물에 넣으면 길이는 5cm가 된다. 하지만 물밖으로 꺼내면 7cm로 늘어나는 거동을 반복할 것이다. 즉 가열과 냉각만으로 두가지 형태를 왔다 갔다하는 기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2방향기억거동이다.
마지막으로 형상기억합금이 갖는 특수한 기능은 초탄성(超彈性)거동이다. 즉 고무와 같은 기능을 말한다. 예컨대 일반금속은 힘을 주어 늘어나게 한 다음 힘을 제거하면 늘어난 그대로의 길이로 남는다. 그러나 형상기억합금을 초탄성 처리하면 ‘금속고무’가 된다. 즉 힘을 주어 늘어나게 한 다음 힘을 제거하면 고무처럼 곧바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게 된다.
이상 3가지 거동은 동일한 재료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단지 형상기억합금의 처리방법을 달리함에 따라 거동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이런 거동을 하는 동안 기억온도는 재료의 종류에 영향을 받는다. 즉 재료에 따라 특정 온도에서만 기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형태가 변할 때는 40kg/mm²의 힘을 발산한다. 이처럼 형상기억합금은 스스로 온도를 감지할 수 있을 뿐아니라 변형할 때 힘을 내기 때문에 액츄에이터(actuator)의 기능을 함께 보유한다.
구관이 명관
많은 기능을 보유하는 형상기억합금은 종류 또한 다양하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형상기억성질은 마르텐사이트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그 특수한 조직을 갖는 합금을 만들어줌으로써 새로운 형상기억합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형상기억합금들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합금은 최초로 등장한 니티놀을 들 수 있다. 니티놀은 성능면에서 아직까지 가장 우수한 형상기억합금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테인리스 정도의 강도를 가지면서 기억온도는 -50℃에서 1백50℃사이의 온도구간을 갖는다. 또 부식에 강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결점도 있다.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합금으로는 구리를 기본 성분으로하는 동계 형상기억 합금이다. ‘동계’는 모든 성능비교에서 니티놀에 비해 떨어지지만 값이 싸다는 장점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합금으로는 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철계 형상기억합금이 있다. ‘철계’는 형상기억 성능면에서는 아직 니티놀은 물론이고 동계 형상기억합금보다도 떨어진다. 그러나 값이 가장 저렴하고 철강정도의 강도를 갖고있기 때문에 앞으로 활용분야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레인지 안에서
강철 정도의 강도를 가지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고무처럼 유연해지기도 하고, 뱀처럼 꿈틀거리기도 하는 형상기억합금은 과연 어디에 응용하면 좋을까? 이점에대해서는「과학동아」독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하는 바이다.
우선 자동차 차체를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들면 어떨까? 접촉사고로 차체가 일그러진 경우 더운 물만 부으면 원래의 형상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분명 가능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형상기억합금의 가격이 은값의 3배나 되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훗날 저렴한 형상기억합금이 개발될 경우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차체는 필연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아이디어에 힘입어 현재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한 제품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미 특허만도 3천건 이상 출원되었으며 그 가운데 40건 정도가 상품화에 성공, 판매되고 있다.
가전(家電)제품 분야에의 응용이 매우 활발하다. 예로 전자레인지의 뎀퍼는 형상기억합금이 활용될 소지가 크다. 뎀퍼는 마이크로파 가열 시에 수증기가 내부에 쌓이지 않도록 환기를 하고 열풍순환 가열시에는 걸러내는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 기존 제품은 이러한 기능을 모터가 떠맡고 있다. 이를 형상기억합금 코일로 대체하면 경제적일 뿐만아니라 소형화가 가능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원리로 냉장고 냉매조절기, 자동건조기, 에어콘 풍향조절기, 커피 메이커, 과(過)전류 차단기, 화재경보기, 전기밥솥 등 기존 제품 핵심 조절분야를 형상기억합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로봇의 섬세한 손에도
자동차 분야에서도 형상기억합금은 주목의 대상이다. 예로 엔진냉각계에 형상기억합금을 사용, 환기시간을 단축시키고 에너지 절약을 가져왔다. 그외에도 파워 스테어링 장치용 유량계 제어장치, 트랜스미션의 냉각장치, 자동차 전조등의 커버개폐기, 자동차 실내열기 배출장치 등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부품에 형상기억합금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단.
로봇에의 응용도 예기된다.
묘목 이식용 로봇을 예로 들어보자. 식물조직을 배양한 후 재배지에 이식하는 작업은 대개 사람의 손으로 행하고 있다. 배양된 어린 묘목은 뿌리가 가늘고 약해서 통상의 산업용 로봇으론 작업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과 같이 유연한 동작을 하는 로봇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로봇의 손을 가느다란 니티놀선을 사용하여 제작했다. 이 로봇은 통전가열 방식으로 손목의 회전과 상하좌우의 굴곡동작, 그리고 3개의 손가락의 동작을 자유자재로 행하고 있다. 또 연체형 동작을 하면서 10cm X 10cm의 소형 배양기 내에서 작업할 수 있는 극소형 로봇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런가하면 골격형 로봇에도 형상기억합금이 들어가 있다. 골격형 로봇은 형상기억 합금의 유연성을 이용한 로봇으로 사람의 팔과 같은 크기를 가진다. 즉 어깨의 회전, 팔목의 굽힘, 손목의 회전과 굽힘, 손가락의 굽힘 등 7개의 자유도를 갖는 로봇 팔을 일컫는다. 이 로봇도 통전가열 방식으로 동작을 조절하며 사람의 팔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원전의 안전성을 높인다
‘현대의 여의봉’은 산업분야에서도 응용되기 시작했다.
파이프 연결쇄는 그 좋은 예다. 일반적으로 파이프와 파이프를 연결할 때 다음 두가지중 한 방법을 선택한다. 연결쇄와 파이프에 나사를 내어 연결하거나 아예 두 파이프를 용접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신뢰성을 요하는 항공기 잠수함 등의 급유관, 반도체 설비의 가스배관, 정밀냉동기의 배관 연결은 무척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기존의 연결방법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형상기억합금이라는 ‘단 비’가 내렸다. 형상기억합금 연결쇄를 사용함으로서 문제점을 간단히해결했던 것이다.
예컨대 항공기의 급유관은 고(高)장력 알루미늄합금 관으로 지금까지는 연결부위를 용접하여 사용해 왔다. 그러나 알루미늄합금의 특성상 용접부위가 취약, 일정시간후에는 교체하는 방법으로 신뢰성을 확보하여 왔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 부분을 형상기억온도가 약 -1백℃인 니티놀합금을 사용, 그 안지름이 파이프의 바깥지름보다 약간 적고 길이가 짧은 원통파이프인 연결쇄를 만들었다. 그후 이를 액체질소(-1백℃이하)에 담궈 연결하고자 하는 파이프의 바깥 지름보다 크게 확장시켜 연결부위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 끼운 뒤 온도가 실온으로 오르면 원래의 형상(파이프 바깥 지름보다 적음)으로 돌아가 견고한 연결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원자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원자로의 노심 제1벽과 그 주변부는 중성자조사 등으로 표면손상이 커 약 6년정도마다 교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의 냉각관의 연결쇄를 형상기억합금으로 대체하면 많은 이득을 갖게 된다.
우선 탈착(脫着)이 쉬워져 교환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또 용접이 불필요하게 되므로 연결기구가 간단해진다. 그리고 떼고 붙일 때에 용접이나 절단이 없으므로 방사선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줄어든다. 뿐만아니라 조작이 간단하므로 수리용로봇이 그리 똑똑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형상기억 열엔진에 대해 알아보자.
형상기억합금은 10℃내외의 온도차만 있으면 형상변화를 한다. 동시에 이때 강력한 힘을 발한다. 따라서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면 각종 공장의 폐온수(대개 1백℃이하), 온천수, 태양열, 바다표면과 내부의 온도차 등 버려지고 있는 저품위 열에너지(지상 열에너지의 3분의2)를 동력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1975년 미국의‘뱅크’(Bank) 가 태양열로 물을 데워 니티놀엔진을 가동, 전력을 얻음으로써 가능성을 실증하였다. 그 후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온수를 이용하여 1마력엔진을 개발하였다. 최근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3.5W 출력의 니티놀엔진을제조한 바 있다. 그동안 기름값이 저렴, 이들 분야의 연구가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나 기름값이 높아질 경우 본격적인 실용화가 기대된다.
치아와 척추고정용‘여의봉’
‘여의봉’은 의료분야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형상기억합금을 의료분야에 활용할 경우 치료효과를 높이고 수술조작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래의 재료로는 불가능했던 새롭고 유익한 제품의 개발이 가능하다.
예컨대 척추교정용 봉(棒)도 형상기억을 시킬 수 있다.
휘어진 척추를 교정할 때 현재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봉은 장착후 20분이내에 교정력이 20% 떨어진다. 10~15일 후에는 초기의 힘의 30%정도로 떨어져 재수술을 요하게 된다. 이때 형상기억합금의 초탄성을 이용하면 장착중 힘의 저하가 사라진다. 즉 재수술없이 1회 장착 수술로 치료가 가능해진다.
또 생체용 금속판에도 활용된다.
교통사고등으로 뼈가 부러졌을 경우 부러진 뼈가 붙을 동안(약 1년) 견고하게 뼈를 고정시켜야 한다. 이때 부러진 뼈에 금속판으로 부목을 한다. 현재는 스테인리스 계통의 금속판을 뼈 양쪽에 대고 나사로 고정시키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고 있다.
이를 형상기억합금으로 대체하면 무척 편리해진다. 우선 수술시 무리한 밀착력을 가할 필요가 없다. 또 수술작업 후 몸밖에서 체온보다 5℃ 높은 온도로 국부가열만 하면 골절부가 견고하게 고정된다. 즉 수술공정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치료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응혈 필터에도 형상기억합금이 사용될 수 있다.
심장이나 정맥에서 생긴 응혈이 혈관을 타고 폐에 들어올 경우(폐색전증) 일반적인 치료법은 항(抗)응고제를 복용하거나 외과 수술에 의한 제거방법이다. 이 경우 항응고제는 내출혈의 위험이 따르며 폐수술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응혈필터를 사용하면 약물복용이나 수술작업없이 간단히 응혈을 제거할 수 있다.
응혈필터는 가느다란 형상기억철사를 응혈을 포집할 수 있도록 체모양으로 기억시킨 것이다. 이 철사를 직선으로 펴서 대동맥을 통과시켜 응혈부위까지 넣는다. 응혈부위에 도착한 철사는 체온에 의해 원래 기억시켰던 체모양으로 변형, 응혈을 걸러낸다. 요컨대 응혈 필터 수술법은 국부마취만으로 간단 신속하게 응혈을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다.
치열교정용 선에도 형상기억합금이 활용된다. 보통의 치열교정치료는 이렇게 한다. 활처럼 휜 스테인리스 선재를 이틀에 끼워 활이 펴지려는 힘으로 치아를 서서히 밀어내는 원리로 치료가 수행되는 것이다. 물론 단시간 내에 효과를 볼 수 없고 1년내지 2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행한다. 이때 활이 펴지려는 힘이 너무 크면 통증이 오고 퍼지려는 힘이 너무 약하면 치료효과가 없으므로 힘의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용하던 스테인리스선은 처음에는 약간의 통증이 있을 정도의 힘으로 장착하여도 몇시간만 지나면 통증이 없어질 정도로 힘이 줄어 들었다. 이 상태로 1~2주만 지나면 펴지려는 힘이 아예 없어져 치료효과를 상실 하였다.
이를 개선할 방법이 없을까? 형상기억합금이 그 해답을 제시했다. 형상기억합금의 초탄성을 이용할 경우 치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일정한 힘을 유지한다. 그래서 장착초기의 통증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체를 위한 번거로움이 없으며 치료효과도 높일 수 있다.
이들 외에도 형상기억합금이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상품은 많이 나와 있다. 지금도 국내외의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용도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각광받는 형상기억 브러지어
형상기억합금이 이용되고 있는 곳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즈음 텔레비전 광고에 선전하고 있는 여성용 브러지어도 그 한 예.
오늘 날 브러지어는 여성을 아름답게만드는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브러지어는 처음에는 유방부착용으로만 사용되었으나 용도가 차츰 다양해졌다. 소재도 처음엔 면방이었으나 근래에는 탄력이 있는 화학섬유로 개량되고 있다. 아뭏든 오늘 날 브러지어는 패션감각뿐만 아니라 감촉 조형미 접촉성 받침성 등을 고려하고 있다. 심지어는 성적매력 쾌적성 편리성까지 추구한다. 사용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한 브러지어 제조회사에서 브러지어의 기능을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결과 버스트를 조절한다(80%), 버스트를 보호한다(41%), 버스트를 고정한다(34%) 버스트의 처짐을 방지한다(21%)로 나타났다.
조사에 이어 21% 여성의 고민, 즉 가슴의 처짐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 등장했다. 브러지어 컵의 하단에 철사를 사용하는 제품이었다. 이 브러지어를 사용하고 보니 장점도 있었지만 단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예컨대 철사 끝이 몸에 닿을 경우 통증을 일으키게 했다. 또 세탁기에 넣고 돌릴 수 없는 불편이 따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단점은 한달 정도 사용 후에는 치열교정에서 처럼 철선의 탄력이 약해져 초기와 같이 타이트하지 못하고 느슨하여지는 것이었다. 즉 수명이 짧은 것이 문제였다.
이에 형상기억합금의 초탄성을 이용해보았다. 그랬더니 철사가 들어간 브러지어의 모든 결점이 해소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형상기억 브러지어는 개발 초년도에 1백만개를 시판할 정도로 호평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열거한 바와 같이 형상기억합금은 그 기묘한 특성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서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전문가와 더불어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한다면 이 새로운 ‘여의봉’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리라고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