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기술로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과학 현장에서, 때로는 과학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오로지 과학을 나누고 행복을 퍼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오늘 과학이랑 친구됐어요
지난해 10월 30일 토요일 오후 2시.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 위치한 어린이 도서관인 ‘담작은도서관’에 40명이 넘는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모였다. 국내 최초로 자원봉사자들이 시도하는 과학 강연 나눔 행사인 ‘10월의 하늘’이 열렸기 때문이다. 10월의 하늘은 과학자나 과학 전공자들이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찾아가 무료로 강연을 하는 행사. 담작은도서관에도 각각 두 명의 강연자와 두 명의 현장 진행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비를 들여 춘천에 온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기자도 이날 강연자로 참가했다.
시간이 되자 전요셉 삼성전자 DMC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로봇과 제어시스템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기자도 ‘과학의 달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과학 뉴스 활용법에 대해 발표했다. 두 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어린이들은 엽서에 소감을 적어 강연자에게 줬다. 기자도 그림과 함께 “오늘 과학이랑 친구됐어요. 강연 재밌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받았다. 직장인 김현정 씨와 대학생 김에스더 씨도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해 참가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똑같은 풍경이 전국 22개 도시 29개 도서관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모두 133명. 69명은 강연을, 나머지 64명은 진행과 준비를 맡았다. 정재승 KAIST 교수가 9월 4일 트위터에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읍, 면에서는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중에서 강연 기부를 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라고 올린 것이 시초다. 불과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전국적인 ‘과학 나눔 강연’이 펼쳐진 셈이다.

과학의 경이를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과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학문일까. 오히려 과학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쉽게 해 주는 재미있는 학문이다.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기술 역시 사람들의 생활과 멀지 않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2007년 12월 과학기술부(현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에 따르면 과학기술분야에 관심이 적은 이유로 청소년의 44%가 ‘재미가 없어서’, 34%가 ‘어려워서’라고 대답했다.
과학이 어렵고 재미없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 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은 수업시간 외에 과학지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 과학관도 수도권과 대도시에 모여 있는데다 과학자를 직접 만날 가능성도 없다.
정 교수가 ‘10월의 하늘’을 계획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교수는 “어린 시절에 과학이 주는 경이로움을 체험한 청소년은 우주와 자연, 생명을 존중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며 "이런 기회가 거의 없는 작은 도시나 읍면에 사는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경이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행사를 기획한 의도를 밝혔다.
요즘에는 여러 단체나 기업이 과학의 경이를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금요일에 과학터치’나 한국기초과학연구원의 ‘주니어닥터’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금요일에 과학터치는 국가지정연구실 등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과학자와 공학자가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대중 강연이다. 2007년 시작된 뒤 현재 서울,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 다섯 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주니어닥터’는 기초연을 중심으로 한 대전 정부출연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계룡산자연사박물관과 공동으로 200개 이상의 강의를 연다. 참가자들은 연구원 내부 시설을 체험하고 연구자들을 직접 만난다. 수업을 들으면 ‘주니어닥터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는데, 일정 개수 이상의 도장을 모으면 인증서를 받는다. 작년에는 도장 5개 이상을 받은 ‘주니어닥터’가 198명, 10개 이상 받은 ‘슈퍼 주니어닥터’가 153명 탄생했다.
강연을 중심으로 한 과학 나눔 활동은 ‘과학 디바이드(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과학 디바이드는 지역이나 계층에 따라 과학을 배우고 즐길 여건이 달라, 과학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격차가 나타나는 현상을 뜻한다. 과학이나 기술은 눈앞에서 직접 보고 들은 체험이 큰 도움이 된다. 학생들에게는 짧은 강연 하나가 일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저개발국가에 적정기술을
과학나눔 활동은 한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도 펼쳐지고 있다. 과학과 공학 기술을 이용해 저개발국의 생활을 개선해 주는 ‘적정기술’이 대표적이다. 삶에 꼭 필요한 난방이나 교통, 식량을 쉽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기술을 연구해 직접 저개발국에 보급한다. 에너지가 부족한 동남아시아 마을에 바이오매스 연료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주고 물이 없는 아프리카 오지에 정수 필터나 펌프를 설치해 주는 것이 잘 알려진 예다. 태양열을 이용한 음식물 조리기, 풍력발전기, 전기를 적게 소모하는 LED 전구를 보급하기도 하고 유기농업 기술을 지도해 식량 자급률을 높이도록 돕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산청에 위치한 대안기술센터, 한밭대 적정기술연구소, 국경 없는 과학기술연구회 등이 이러한 과학나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탕수수가 많이 나는 아프리카 차드에서는 사탕수수 연료를 만들고 인도에서는 태양열 랜턴을 개발하는 식으로 그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개발해 보급한다.


➊ 2009년 한국대학사회 봉사협의회 소속 대학생들이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실험교실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협의회는 올해도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다.
➋ 케냐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우물 펌프를 수리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적정기술의 핵심이다.
➋ 케냐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우물 펌프를 수리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적정기술의 핵심이다.
홍성욱 적정기술연구소장(한밭대 화학공학과 교수)은 “저개발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가능하게 하면서 환경도 살리는 것이 적정기술의 목표”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적정기술의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2010년 유엔새천년개발목표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저개발국가의 유아사망률은 1000명에 72명으로 선진국보다 15배 이상 높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144명으로 선진국의 30배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 시급한 것은 대형 병원이나 고학력 의사, 비싼 의약품이 아니다. 의사가 지역 주민에게 의학 지식을 가르쳐서 지역 주민이 직접 치료를 하게 하는 일이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훨씬 크다. 1970년, 인도 뭄바이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잠케드에서는 ‘농촌건강이해 프로젝트’가 실시됐다. 2008년까지 300개 이상의 농촌 마을의 주민들에게 기초적인 의료 기술을 가르쳐 99% 이상의 진료를 직접 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 유아사망률이 다른 농촌 지역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말라리아나 폐렴도 사라졌다. 의사가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사회를 위해 나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나서는 의사들이 있다. 대한병리학회와 대한세포병리학회 소속 의사들은 2007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10명 정도의 의료단을 꾸려 몽골 구석구석으로 향한다. 항공료와 체제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이들의 목표는 몽골 병리의사들의 자립. 하승연 가천의과학대 병리과 교수는 “2011년, 5년간 이어진 의료 지식 나눔 활동이 끝나면 몽골 병리의사들도 스스로의 지식으로 사람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직 ‘과학 나눔’에 인색
한국은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과학 나눔’에 많이 인색한 편이다. 적정기술 기부의 경우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초보 단계다. 적정기술 기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김수언 씨(경희대 기계공학과)는 “NGO(비정부기구)나 대학 교수를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고 있지만 아직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이 사실”이라며 “‘착한 공학’인 적정기술이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한국은 적정기술로 만들 수 있는 기초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며 “국제지식재산권기구(WIPO) 등에서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