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핏 보면 새로 개장한 휴양지처럼 보일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은 10월 30일 경북 울진군에 새로 문을 연 한국해양연구원 동해연구소다. 지난 10월 7일, 서울에서 버스로 꼬박 4시간을 달려 개소 준비가 한창인 동해연구소를 찾았다.
바다에 미친 과학자들의 동해 사랑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동해연구소에 도착하자 연구원 5~6명이 한꺼번에 달려 나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동해특성연구부 김병남 박사는 “태백산맥을 한반도의 척추라고 봤을 때, 연구소는 한 쪽 팔을 어깨 너머 등 뒤로, 다른 한 쪽 팔을 어깨 아래 등 뒤로 넘겨 두 팔이 가까스로 닿는 등판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그만큼 오지에 있다는 뜻이다. 연구소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극장 하나 없다고 하니, 할 말 다한 셈이다. 이곳에서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본원에 있다가 자원해서 온 연구원 21명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먼 곳까지 온 이유는 뭘까.
“울진은 동해를 연구하는데 최적인 곳이에요. 동해 한 가운데 있으면서 최근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독도와 가장 가깝기도 하지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점이 힘들긴 하지만, 바다연구만큼은 미친 듯이 할 수 있지요. 하하.”
어류유전육종학 전문가 노충환 박사는 연구소 인근에 있는 울진 원전이 자신의 어류육종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했다. 원전에서는 달아오른 핵반응로를 식히는데 바닷물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바닷물에 어떤 물질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하게 온도만 7~10℃ 높은 ‘온배수’가 나온다.
노 박사는 온배수가 원전 인근해역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나아가 온배수를 다양한 생물자원을 양식하는 ‘바다목장’을 짓는데 이용할 계획이다. 수온을 유지하는데 따로 에너지를 쓰지 않고 원전의 폐열을 이용해 어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광어회를 비교적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생산량의 95%를 양식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라며 “강도다리 같은 가자미류나 은대구 같은 어종도 양식에 성공하면 현재 가격의 절반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해특성연구부 민원기 박사는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사는 심해생물을 탐사하는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동안 동해는 쿠로시오 한류와 북태평양 난류가 만나 명태나 오징어, 멸치 같은 전통적인 식량자원 어종이 풍부한 황금어장으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동해는 유용한 생체물질을 얻을 수 있는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가 풍부한 ‘생물자원의 보고’다.
“동해는 아직 생태계의 구조나 다양성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독도 탐사에서 보고된 적이 없는 신종을 다수 발견하는 등 학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심해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금맥이나 다름없죠.”
동해 해저지형 탐사도 연구소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연구 분야다. 독도전문연구센터 김창환 박사는 탄성파를 이용해 동해 해저면 영상 지도를 만들고 있다. 최근 독도 인근 해저지형에 일본 이름이 국제적으로 통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응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김 박사는 “애국가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지만, 정작 동해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며 “해저지형 탐사는 가스하이드레이트 같은 지하자원 탐사에 기초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양영토를 지키는 근거를 남기는 중요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동해연구소는 최근 심해지는 동해 연안침식현상이나, 새로운 식수 공급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해양심층수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할 예정이다. 또 환동해권 종합해양관측망과 경상북도와 울진군이 추진하는 동해해양과학체험관 설치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