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저탄소경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기업은 탄소배출권 팔고, 개인은 탄소마일리지 쌓는다

19세기 초 산업혁명의 중심 영국 런던은 석탄을 태워 돈을 버는 ‘탄소경제’의 중심지였다. 1765년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힘으로 돌아가는 방적기(실을 짜는 기계)와 방직기(직물을 짜는 기계) 덕분에 런던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오늘날 런던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세계 탄소배출권의 80%가 런던에 있는 ‘유럽기후거래소’(ECX, Europe Climate Exchange)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 연간 총 거래 금액은 50조 원에 이른다.

영국이 세계 ‘탄소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 탄소시장을 ‘큰 사업 기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탄소배출권거래소’생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지구온난화가 인간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에서 비롯됐다는 공감대가 급속하게 퍼졌다. 이에 세계 각국은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지구 기후 시스템과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결실은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로 구체화됐다.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유럽연합(EU)이나 일본 같은 선진 38개국을 정해 이들에게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6가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차 공약기간(2008~2012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 이상 줄여야 한다는 의무를 지웠다.

감축 의무를 진 나라들은 올해부터 교토의정서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자국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상한치를 정해줬다. 배출상한치를 받은 기업은 온실가스 저감기술을 도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제로 줄이거나, 조림사업이나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해 감축분을 인정받아야 한다. 유럽에서 배출상한치를 넘는 기업은 1t당 100유로(약 18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교토의정서는 여기에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수단을 도입했다. 감축 의무국가나 기업이 만약 의무감축량을 초과 달성하면 나머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팔 수 있다. 반대로 의무감축량을 채우지 못하면 부족분을 사야 한다.

이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 ‘탄소배출권거래소’다. 현재 세계적으로 모두 10여개(EU에만 7개)의 탄소배출권거래소가 있다. 이곳에서 각 거래소의 회원사들이 주식거래 하듯 경매나 선물, 옵션 같은 방법으로 탄소배출권을 사고팔고 있다.

유럽기후거래소의 경우 회원사가 1만 5000개나 된다. 지난해 유럽연합할당량(EUA) 14억 4300만t 중 약 30%인 4억 3400만t이 유럽기후거래소에서 거래됐다. 2008년 10월 현재 유럽기후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이산화탄소 1t의 가격은 22유로(약 3만 7000원) 안팎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2005년 10조 원이던 세계 탄소시장 규모가 2006년 30조 원으로 늘었으며 2010년에는 150조 원으로 급증할 거라 예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우리나라도 이르면 내년에 탄소배출권거래소가 처음 설립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7일 환경부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탄소배출권거래소 설립과 운영에 관한 협력 협약서’(MOU)를 체결했다. 두 기관은 국내에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고 탄소시장을 활성화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2013년까지 감축의무 없이 배출권 팔 수 있어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2013년까지는 온실가스를 감축할 의무가 없다. 오히려 선진국과 공동 또는 자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UN으로부터 감축 실적을 인정받은 뒤 탄소배출권을 의무감축국에 파는 ‘청정개발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사업을 할 수 있다.

에너지관리공단 CDM인증원 박성호 팀장은 “우리나라는 2차 공약기간(2013~2017년)에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가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온실가스 저감기술과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해 의무감축국가가 됐을 때를 대비하는 동시에 탄소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008년 7월까지 UN에는 CDM사업이 총 1116건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우리나라가 등록한 사업은 19건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의 뒤를 이어 세계 4번째다. 우리나라는 2005년 3월 후성(전 울산화학)이 에어컨용 냉매인 HCFC22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HFC23을 줄이는 기술로 국내 CDM사업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후성은 연간 200만t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올해 이 가운데 140만t의 탄소배출권을 영국기업 등에 팔아 152억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휴캠스의 N2O 감축사업도 CDM사업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옷이나 가구, 양탄자, 자동차 내장재에 널리 쓰이는 폴리우레탄의 원료인 질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N2O가 나온다. N2O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330배 높은 온실가스다.

휴캠스는 오스트리아 환경기술 회사 카본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질산 생성공정에 N2O 저감장치를 설치했다. 그 결과 기존 시스템에서 발생하던 N2O를 98%나 줄였으며 연간 145만t의 탄소배출권을 UN으로부터 인정받았다. 휴캠스 온실가스사업팀 임병철 팀장은 “순수 국내 기업 가운데 2번째로 많은 감축분을 인정받았다”며 “유럽의 탄소거래시장에서 독일의 전력회사 RWE에 탄소배출권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실가스를 실제로 줄이는 사업만 있는 건 아니다. 온실가스가 애초부터 나오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을 개발하면 화석연료를 대체한 효과만큼 온실가스 감축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7년 안동댐과 장흥댐, 성남정수장에서 소수력발전으로 1만 3463Mwh 전력을 생산한 뒤 UN으로부터 이를 이산화탄소 감축분 8430t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8월에는 이 가운데 6782t을 네덜란드 ABN암로은행에 1억 7000만 원에 판매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동희 에너지계획팀장은 “신재생에너지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동시에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아 기존 석탄산업보다 유리하다”며 “2010년 완공되는 시화조력발전소에서 31만 5000t에 이르는 탄소배출권을 인정받기 위해 현재 UN에 등록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지구온난화 해결, 본질 잊지 말아야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시장원리를 도입해 지구 전체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최대한 배출량을 줄여 배출권 판매수익을 거두고, 배출량을 줄이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배출권을 구입해 감축 의무를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힘을 빌어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의무감축량을 어느 국가에는 관대한 반면, 어느 국가에는 엄격하게 부과하면 이는 곧 탄소배출권 가격에 영향을 끼친다. 즉 정치적인 논리로 의무감축량이 결정되면 시장이 불안정해지고 그만큼 위험부담도 커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2006년 EU의 배출권 시장에 참여해 실적을 내놓은 22개 국가 가운데 무려 16곳이 목표를 초과 달성해 탄소배출권이 과잉으로 공급됐다. 결과는 t당 30유로(약 5만 원) 가까이 하던 배출권 가격이 하루아침에 10유로로 폭락하는 사태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밖에 배출량에 대한 검증과 감시, 거래에 드는 비용이 크다는 점이나 전통적인 굴뚝산업이 배출권을 싸게 구입하는 방식을 택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과 박천규 과장은 “무엇보다 탄소시장이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는 본래 취지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제도적으로 여러 가지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6가지 온실가스*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유황(SF6)

이산화탄소는 줄이고 마일리지는 쌓고

2006년 12월 영국 환경부 장관 데이비드 밀리밴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1년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일정량의 탄소배출권을 줘, 개인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더 적극적으로 줄이도록 하자는 ‘개인탄소할당’ 제도에 대한 구상을 밝혀 화제가 됐다. 하지만 탄소배출권 제도를 개인에게도 적용하자는 이 생각은 영국에서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이와 반대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사람에게 마일리지나 캐시백을 주는 제도가 최근 등장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구는 국내에서 처음‘탄소 마일리지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주택이나 기업, 학교 같은 공공기관이 구청 홈페이지에 마련된 ‘e-에너지 가계부’에 에너지 사용량을 입력하면 전년도 사용량과 비교해 이산화탄소를 감축한 양만큼 포인트를 준다. 예를 들어 주택은 이산화탄소 10kg을 감축할 때마다 1포인트(1포인트당 1000원)를 지급하고, 기업, 학교, 공공기관은 포인트 순위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서울 강남구청 조장원 담당관은 “현재 4만 5000개 가구와 기업, 공공기관이 등록해 에너지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다”며 “내년 2월 이산화탄소를 줄인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혜택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와 부산시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11월부터는 ‘탄소캐시백’ 제도도 시범 실시된다. OK캐시백 카드 또는 탄소캐시백 전용카드를 가진 소비자가 대기전력이 낮거나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면 탄소캐시백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적립한 포인트는 대중교통 요금이나 생활요금 결제 수단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10월 말 현재, 웅진코웨이 공기청정기, 잉카솔루션 대기전력 차단 멀티팩, 캐논 사무기기 등이 탄소캐시백 상품으로 등록했다.

에너지관리공단 기후대책실 탄소캐시백 담당 이원구 대리는 “탄소마일리지와 탄소캐시백은 개인의 경제활동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온실가스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안형준 기자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경제학
  • 정치외교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