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고의 유전자 | 뤽 뷔르긴 지음 | 류동수 옮김 | 도솔 | 203쪽 | 1만 2000원
PROLOGUE
자연은 전체로서 기능합니다. 우리가 멋대로 나누어 놓은 여러 과학 분야, 예를 들어 화학이나 물리학 또는 생물학 같은 것을 자연은 모릅니다.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 구이도 에프너-
과학자를 다룬 책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가끔은 독창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과학계 주류의 인정을 받지 못한 과학자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다. 스위스 저널리스트 뤽 뷔르긴이 쓴 ‘태고의 유전자’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위스의 거대 제약회사 치바가이기(1996년 산도츠와 합병돼 노바르티스가 됨)의 연구원이었던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로 두 사람 다 지금은 고인이 됐다.
이들은 치바가이기 연구소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실험을 수행했다. 전기장이 흐르는 공간에 식물의 씨앗(또는 포자)이나 동물의 알을 놓아 둔 뒤 성장을 관찰했던 것.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고사리처럼 생긴 관중은 화석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 양치류 형태로 바뀌어 자랐고 무지개송어는 아래턱이 툭 튀어나온, 유럽에서는 150년 전에 멸종한 야생형으로 바뀌었다. 옥수수 역시 대 하나에 12자루까지 달려 야생 옥수수를 연상시켰고 밀은 덤불처럼 자랐다. 도대체 전기장은 씨앗이나 알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이들 생명체의 DNA를 조사한 결과 돌연변이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대신 유전자가 발현하는 패턴에 변화가 있었다. 즉 오랜 개량과정을 거쳐 잠자고 있던 유전자가 다시 활동했던 것. 사실 진화에서 새로운 유전자가 생기고 안 쓰는 유전자가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유전자들이 발현하는 패턴의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쥐와 사람은 모두 1000여 개의 냄새 수용체 유전자가 있는데 쥐는 이들 대부분이 발현해 수용체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반면 사람은 3분의 2가 발현하지 않는 ‘잠자는 유전자’다. 쥐가 사람보다 후각이 민감한 이유다.
이들이 만든 놀라운 생명체는 1988년 스위스의 오락 프로그램인 ‘슈퍼트레퍼’에서 공개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방법은 치바가이기의 명의로 특허까지 받았지만 과학계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 에프너 박사가 심장질환으로 회사를 떠나고 쉬르히가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연구는 잊혀졌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두 과학자와 오랫동안 교류했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연구를 되살리려는 구이도 에프너 박사의 두 아들 다니엘과 니쿤야를 접촉해왔다. 그리고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이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방법이 실용화될 경우 아프리카 같은 극빈국의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책 가운데 있는, 전기장을 쪼인 동식물을 찍은 10여장의 컬러 사진을 보면 당시 일어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전기장 실험 장치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전기장 실험에 뛰어들 국내 과학자가 나올까?
뤽 뷔르긴
스위스의 저널리스트로 2002년까지 한 일간지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잡지 ‘미스터리즈’(Mysteries) 발행인으로 있다. 고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2000년에는 스위스 베른대에서 헤드리박사재단이 수여하는 ‘외(外)심리학’상을 받았다.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_ October
0.1그램의 희망
이상묵·강인식 지음 | 랜덤하우스 | 341쪽 | 1만 1000원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의 자서전이 나왔다. 지난 2006년 미국 지질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바 없던 이 교수는 이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고 아끼던 제자 이혜정 씨를 잃었다. 놀랍게도 이 교수는 6개월 뒤 강단에 복귀했다. 몸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조금도 좁아지지 않았다.
1그램 아니 0.1그램도 안 될 것 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이 교수는 오스트리아의 한 업체에서 만든 특수 마우스를 입에 물고 ‘연구’를 재개했다. “나를 살린 건 줄기세포가 아니라 IT기술이었다”고 말했듯이 이 교수는 영문 음성인식이 가능한 컴퓨터 앞에서 “Open Microsoft Outlook”(아웃룩을 실행하시오)이라고 말하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메일을 보낸다. 미국의 명문 MIT를 졸업하고 1년에 3~4달을 바다 위에서 보내며 한국 해양학의 역사를 써온 이 교수의 역동적인 삶과 불의의 사고를 극복한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새 책

아이작 뉴턴
제임스 글릭 지음 | 김동광 옮김 | 승산 | 311쪽 | 1만 6000원
카오스 이론을 대중에게 알린 ‘카오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삶을 다룬 ‘천재’ 같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과학저술가 제임스 글릭의 뉴턴 전기다. 원서는 2003년 출간돼 2004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작에 오른 명저다. 만유인력과 미적분을 발견한 천재의 모습 뿐 아니라 신학자와 연금술사였던 뉴턴이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의 삶을 다뤘다.
수학 철학에 미치다
장우석 지음 | 숨비소리 | 224쪽 | 1만 1000원
‘철학을 알면 수학이 쉬워진다’는 부제가 보여주듯 수학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철학과 대학원을 마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유럽의 철학자뿐 아니라 노자와 장자의 사상도 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 지음 | 마티 | 288쪽 | 1만 6800원
최근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데이터 분석이 끝나는 내년 이맘때쯤에는 신의 입자 ‘힉스’의 실체가 밝혀질까. 입자물리를 전공하고 현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는 LHC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것은 뇌다
다니엘 G. 에이멘 지음 | 안한숙 옮김 | 브레인월드 | 445쪽 | 1만 5000원
현대사회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최근 국내 자살자수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 강박증을 겪고 화를 참지 못하거나 주의가 산만하다. 내가 왜 이럴까. 임상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이런 문제는 성격장애가 아니라 뇌의 생리학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들어 보여준다.
플래터랜드
이언 스튜어트 지음 | 이한음 옮김 | 경문사 | 398쪽 | 2만 3000원
영국의 수학자이자 수많은 수학교양서를 집필한 저자가 쓴 수학소설이다. 1884년 에드윈 애벗이 쓴 소설 ‘플랫랜드’의 21세기 버전이다. 소설속 주인공인 소녀 빅토리아 라인은 다른 차원에서 온 스페이스 호퍼를 만나 차원 여행을 떠난다. 빅토리아를 따라 여행에 동행하면 공간과 시간의 의미, 현대 기하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논리학 실험실
후쿠자와 가즈요시 지음 | 김규한 옮김 | 바다출판사 | 207쪽 | 9500원
‘미래의 과학자를 위한 맞춤 논리학 훈련서’임을 자임하는 책. 온갖 첨단 이론과 기술의 결과인 현대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사람들이 정작 과학에는 무지한 이유가 ‘과정’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저자는 과학자들이 성과를 내기까지 어떤 생각과 추론을 하고 과학적 작업을 실천했는지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은 전체로서 기능합니다. 우리가 멋대로 나누어 놓은 여러 과학 분야, 예를 들어 화학이나 물리학 또는 생물학 같은 것을 자연은 모릅니다.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 구이도 에프너-
과학자를 다룬 책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가끔은 독창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과학계 주류의 인정을 받지 못한 과학자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다. 스위스 저널리스트 뤽 뷔르긴이 쓴 ‘태고의 유전자’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위스의 거대 제약회사 치바가이기(1996년 산도츠와 합병돼 노바르티스가 됨)의 연구원이었던 구이도 에프너와 하인츠 쉬르히로 두 사람 다 지금은 고인이 됐다.
이들은 치바가이기 연구소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실험을 수행했다. 전기장이 흐르는 공간에 식물의 씨앗(또는 포자)이나 동물의 알을 놓아 둔 뒤 성장을 관찰했던 것.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고사리처럼 생긴 관중은 화석에서나 볼 수 있는 원시 양치류 형태로 바뀌어 자랐고 무지개송어는 아래턱이 툭 튀어나온, 유럽에서는 150년 전에 멸종한 야생형으로 바뀌었다. 옥수수 역시 대 하나에 12자루까지 달려 야생 옥수수를 연상시켰고 밀은 덤불처럼 자랐다. 도대체 전기장은 씨앗이나 알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이들 생명체의 DNA를 조사한 결과 돌연변이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대신 유전자가 발현하는 패턴에 변화가 있었다. 즉 오랜 개량과정을 거쳐 잠자고 있던 유전자가 다시 활동했던 것. 사실 진화에서 새로운 유전자가 생기고 안 쓰는 유전자가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유전자들이 발현하는 패턴의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쥐와 사람은 모두 1000여 개의 냄새 수용체 유전자가 있는데 쥐는 이들 대부분이 발현해 수용체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반면 사람은 3분의 2가 발현하지 않는 ‘잠자는 유전자’다. 쥐가 사람보다 후각이 민감한 이유다.
이들이 만든 놀라운 생명체는 1988년 스위스의 오락 프로그램인 ‘슈퍼트레퍼’에서 공개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방법은 치바가이기의 명의로 특허까지 받았지만 과학계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 에프너 박사가 심장질환으로 회사를 떠나고 쉬르히가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연구는 잊혀졌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두 과학자와 오랫동안 교류했고 최근에는 아버지의 연구를 되살리려는 구이도 에프너 박사의 두 아들 다니엘과 니쿤야를 접촉해왔다. 그리고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이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방법이 실용화될 경우 아프리카 같은 극빈국의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책 가운데 있는, 전기장을 쪼인 동식물을 찍은 10여장의 컬러 사진을 보면 당시 일어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전기장 실험 장치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 전기장 실험에 뛰어들 국내 과학자가 나올까?
뤽 뷔르긴
스위스의 저널리스트로 2002년까지 한 일간지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잡지 ‘미스터리즈’(Mysteries) 발행인으로 있다. 고고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2000년에는 스위스 베른대에서 헤드리박사재단이 수여하는 ‘외(外)심리학’상을 받았다.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_ October
0.1그램의 희망
이상묵·강인식 지음 | 랜덤하우스 | 341쪽 | 1만 1000원

1그램 아니 0.1그램도 안 될 것 같은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이 교수는 오스트리아의 한 업체에서 만든 특수 마우스를 입에 물고 ‘연구’를 재개했다. “나를 살린 건 줄기세포가 아니라 IT기술이었다”고 말했듯이 이 교수는 영문 음성인식이 가능한 컴퓨터 앞에서 “Open Microsoft Outlook”(아웃룩을 실행하시오)이라고 말하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메일을 보낸다. 미국의 명문 MIT를 졸업하고 1년에 3~4달을 바다 위에서 보내며 한국 해양학의 역사를 써온 이 교수의 역동적인 삶과 불의의 사고를 극복한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새 책

아이작 뉴턴
제임스 글릭 지음 | 김동광 옮김 | 승산 | 311쪽 | 1만 6000원
카오스 이론을 대중에게 알린 ‘카오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삶을 다룬 ‘천재’ 같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과학저술가 제임스 글릭의 뉴턴 전기다. 원서는 2003년 출간돼 2004년 퓰리처상 최종후보작에 오른 명저다. 만유인력과 미적분을 발견한 천재의 모습 뿐 아니라 신학자와 연금술사였던 뉴턴이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의 삶을 다뤘다.
수학 철학에 미치다
장우석 지음 | 숨비소리 | 224쪽 | 1만 1000원
‘철학을 알면 수학이 쉬워진다’는 부제가 보여주듯 수학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어렵지 않게 보여준다.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철학과 대학원을 마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유럽의 철학자뿐 아니라 노자와 장자의 사상도 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 지음 | 마티 | 288쪽 | 1만 6800원
최근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데이터 분석이 끝나는 내년 이맘때쯤에는 신의 입자 ‘힉스’의 실체가 밝혀질까. 입자물리를 전공하고 현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저자는 LHC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것은 뇌다
다니엘 G. 에이멘 지음 | 안한숙 옮김 | 브레인월드 | 445쪽 | 1만 5000원
현대사회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최근 국내 자살자수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 강박증을 겪고 화를 참지 못하거나 주의가 산만하다. 내가 왜 이럴까. 임상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이런 문제는 성격장애가 아니라 뇌의 생리학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들어 보여준다.
플래터랜드
이언 스튜어트 지음 | 이한음 옮김 | 경문사 | 398쪽 | 2만 3000원
영국의 수학자이자 수많은 수학교양서를 집필한 저자가 쓴 수학소설이다. 1884년 에드윈 애벗이 쓴 소설 ‘플랫랜드’의 21세기 버전이다. 소설속 주인공인 소녀 빅토리아 라인은 다른 차원에서 온 스페이스 호퍼를 만나 차원 여행을 떠난다. 빅토리아를 따라 여행에 동행하면 공간과 시간의 의미, 현대 기하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논리학 실험실
후쿠자와 가즈요시 지음 | 김규한 옮김 | 바다출판사 | 207쪽 | 9500원
‘미래의 과학자를 위한 맞춤 논리학 훈련서’임을 자임하는 책. 온갖 첨단 이론과 기술의 결과인 현대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사람들이 정작 과학에는 무지한 이유가 ‘과정’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저자는 과학자들이 성과를 내기까지 어떤 생각과 추론을 하고 과학적 작업을 실천했는지 ‘논리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