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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도 지나치면 병

양창순의 심리학 테라피

며칠 전 기차를 타고 한 지방 도시에 갔다. 기차역이 매우 멋있었는데, 정작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작은 비둘기 한 마리였다.



비둘기가 사람의 발걸음을 피해 드넓은 역사 안을 혼자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실수로 안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비둘기라면 이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싶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딱히 비둘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밖으로 내몰아볼까도 싶었지만 비둘기가 내 말을 듣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비둘기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 같았다.







역사 안에 있던 비둘기 알고 보니 터줏대감

몇 분간 발만 동동 구르던 나는 결국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그 방법’에 따르기로 했다. 바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구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난 역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구조요청을 하고 기다리는 사이 약속시간에 늦을 것이다. 내가 돕지 못해도 분명 다른 사람이 비둘기를 발견하고 구조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다행히 약속에 늦지 않고 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둘기 얘기를 해줬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그가 크게 웃으며 “괜한 걱정을 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에 따르면 그 비둘기는 역사 안에서 이미 명물로 통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사람들이 먹다 흘린 음식 찌꺼기를 먹기 위해 그곳에 머무른 지 오래 됐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 길이 없었던 나는 걱정을 사서 한 꼴이 된 셈이다.



오지랖 넓은 내 성격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난 것 같아 실소가 나왔다. 나서지 않아도 좋을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고 참견하는 성격을 심리학용어로 ‘과관여 타입’이라고 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이 붙임성이 있고 개방적이며 사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간관계에서 강한 결속을 요구하고 자기에게 항상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 지나친 책임감을 느껴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다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확실히 이 타입에 속하는 모양이다. 이런 성격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데도 쉽게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타고난 기질 때문이다. 덕분에 늘 걱정 한 트럭분을 싣고 다닌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과관여 타입의 사람은 소문을 부풀리고 옮기는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다른 사람과의 경계를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문이 멈추지 않는 이유

사실 비둘기 얘기는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인 소소한 이야기다. 측은지심이 과하게 작용하다보니 가끔 그렇게 ‘오버’하게 된 것 뿐이다. 게다가 이런 성격이 생각보다 꽤 많다.



물론 누구나 남의 소식이나 소문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대부분 적정한 수준에서 멈춘다. 소문이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데 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잘못된 소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관여적’인 성격의 사람은 종종 도를 넘나들며 진짜 문제를 일으킨다. 지나치게 남들 일에 관심을 갖고 크고 작은 소문들을 부풀려 옮길 때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계를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대인관계 문제를 일으킨다. 너무 개방적이고 개인적인 것을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하며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좌지우지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신의 발달은 소문을 더욱 빨리 넓게 확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콜롬비아의 대표적인 작가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보면 ‘그 도시에 처음으로 전화가 가설되자 안정된 것처럼 보이던 여러 부부가 익명의 고자질 때문에 파경을 맞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전화만으로도 소문이 이토록 빨리 전해지는데 인터넷 시대는 어떨까.



우리는 지금 개인의 가십을 포함한 온갖 정보가 넘쳐흐르는 사이버 세계에 살고 있다. 남에게 과한 관심을 갖는 사람들 때문에 인터넷은 끝없이 확대·재생산되는 가십의 장으로 얼룩지고 있다.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입는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얼핏 보면 과관여적인 성향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계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균형과 조화이듯,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균형과 조화가 깨지면 민폐가 된다. 지나친 도움은 심리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타인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이 부족한 데서 온다.

따라서 개인마다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야 한다. 모든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판단할지 나만의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이 나설 필요가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두면 어떨까.

 

단순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따뜻한 관심인지, 남을 헐뜯기 위한 지나친 관심인지 뒤돌아보는 것이다. 만일 자신에게 지나치게 남에게 관심을 갖는 성향이 있다면 행동하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자.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속마음과 대화하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원장│에디터 김윤미│이미지출처│istockphoto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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