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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 효과(halo effect)란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가 그 대상이나 사람의 구체적인 특성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 주목을 받고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그렇지 못한 논문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유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과학자 그레고리 멘델만 해도 당시에는 학벌과 편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호에서는 후광 효과의 역효과에 대해 생각해보고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열린사회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다음 제시문을 참고해 자신이 멘델이 됐다고 가정하고 오늘날 유명한 학술지나 과학자집단의 권위에 눌려 소수의 비주류 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작성해보자.

(가) 멘델은 다윈의 진화론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 수도원 안쪽 뜰에 있는 작은 정원에 완두를 심었습니다. 그는 수년에 걸쳐 1만 그루가 넘는 완두를 직접 손으로 키우며 관리했습니다. 완두 꽃가루를 모두 손으로 수분시키고 다른 꽃가루가 붙지 않도록 봉지를 씌우는 일은 타고난 성실성을 가진 멘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실험을 시작하고 8년 뒤 그는 멘델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1865년 그는 소도시 자연과학협회의 정기 회의에서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소도시 자연과학협회 회원들은 대부분 공무원이거나 상인이었으므로 그의 실험에 대한 이해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다윈의 서가에서 개봉도 안 된 그의 논문이 발견됐습니다. 만약 그의 논문이 이름 없는 지방의 자연과학협회 논문집에 수록되지 않고 좀 더 명성 있는 협회 논문집에 실렸거나 그가 신부가 아니라 이름이 있는 생물학자였다면 다윈은 그의 논문을 읽었을 것이고 다윈의 진화론은 좀 더 과학적인 틀을 갖췄을 것입니다. 아무튼 멘델의 실험 결과는 이후 35년 동안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서재에서 잠자게 되었습니다.


- ‘교과서를 만든 과학자들’, 손영운 지음



(나) 진화를 연구한 사람은 전에도 있었지만 자연 도태와 성(性) 도태라는 개념을 도입해 진화론을 체계화한 사람은 다윈이다. 자식과 부모가 닮는 유전 현상은 옛날부터 알려져 왔지만 완두콩 교배 실험으로 유전 법칙을 밝힌 사람은 멘델이다.


멘델이 연 유전학의 흐름이 현대 게놈과학까지 연속된다고 보면 멘델의 유전학은 다윈의 진화론과 어깨를 나란히 겨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생전에는 서로 잘 알지 못했다. 다윈은 유전 현상으로 고민에 빠졌다. 당시 유전 법칙은 불명(不明)해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조금밖에 다루지 않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멘델의 유전 법칙이 다윈의 종의 기원과 동시에 발표됐더라면 진화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다윈이 멘델의 유전 법칙이 공표된 뒤 10년 밖에 더 살지 못했기 때문에 ‘종의 기원’이 크게 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화론은 더 획기적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진화와 유전을 통합한 학문이 ‘네오-다위니즘’이라 불리며 20세기 전반 집단유전학의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중략)



멘델은 체코 모라비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방의 학교에서 배운 뒤 수도원에 들어가 독일 빈 대학 청강생으로서 배울 기회를 얻었다. 귀국한 뒤 상급 교사시험을 봤으나 실패하고 수도원 뜰에서 완두콩 교배 실험을 행해 마침내 유전 법칙을 발견했다. 그 성과를 1865년에 부룬-자연과학회지에 발표하고 당시 저명한 학자에게 논문을 보내 주목받았다. 영광에 둘러싸인 다윈과는 달리 멘델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수도원장으로서 생애를 마쳤다. 그 뒤 1900년에 비로소 휴고 브리스, 칼 코렌스, 에릭 체르마크에 의해 업적을 재평가받았다.


- ‘진화의학에서 배운다’, 이무라 히로오 지음



(다) 노벨상을 받은 지도교수와 무명의 대학원생이 공동 저술한 논문이 조명을 받으면 그 빛은 누구를 비출까. 바로 노벨상 수상자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턴은 이를 ‘마태 효과’라고 명명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마태복음에 착안한 작명이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에 나오는 ‘후광 효과’도 결국 같은 현상을 가리킨다.


- 세계일보 2008년 2월 25일자

 


(라) 다나카 고이치는 1987년부터 2년에 걸쳐 일정 주기로 발사되는 레이저를 이용해 단백질 분자를 분사시키는 효과를 내는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을 개발했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고분자 단백질의 종류와 양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 생명과학과 신약 개발 등 의학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유방암, 전립선암의 조기진단 분야에 이 기법을 응용할 수 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이로써 일본은 2000년과 2001년에 이어 3년 연속으로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더욱이 다나카는 민간기업 연구 부문에 종사하는 연구원으로서 역대 노벨화학상 수상자 가운데 교수나 박사 같은 감투가 없는 수상자로는 두 번째이고 학사 출신으로 수상한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 두산백과사전(www.encyber.com)



멘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멘델은 가난했기 때문에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수도사가 돼야 했고 생물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교사시험에 연속으로 낙방하는 등 모든 면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멘델처럼 교수 직위 또는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은 과학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학위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유명한 사람의 권위 또는 학위를 무조건 신뢰하는 습관은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물론 불확실한 문제에 대해 그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 권위자의 이론이나 주장을 토대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방식이다. 하지만 직접 관련된 분야의 권위자가 아닌 경우나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긴 해도 그 분야의 권위자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없는 경우에 한 권위자의 견해만을 추종해서는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조선 중기 조광조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가파치와 허심탄회하게 지내며 의견을 주고받은 것처럼 학위가 없는 사람에게도 과학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한 진리다. 석사학위도 없는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이런 열린 공간의 유무이다.


이번 논제에서는 비주류 과학자가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결국은 국가,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서도 큰 손해임을 역설하되 그 토대를 멘델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최초로 유전 법칙을 밝혀냈지만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멘델이다.


①내 연구는 내가 죽은 뒤 코렌스, 체르마크, 브리스란 과학자들이 내 연구와 같은 결과를 밝혀내고 나서야 인정을 받았다. 1865년에 부룬-과학회지에 발표한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에 서술한 유전 법칙은 후대에 이르러서 유전학의 큰 기틀이 됐고 다윈의 진화론과 합쳐져 ‘네오-다위니즘’으로 발전했다.

네오-다위니즘은 집단유전학의 모태가 됐으니 내 논문의 위대함이 새로이 증명된 셈이다. 이를 볼 때 내 논문이 생전에 인정을 받았다면 최고의 과학자 반열에 올랐을 터이지만, 실상 그러지 못했다. ②내가 과학자가 아닌 수도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자가 아니란 이유로 내 논문은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일은 과학계에서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도 나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 황우석 박사는 배아줄기세포와 관련해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고 배아줄기세포를 실제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옳고 그름을 떠나 그의 출신이 수의학과라는 점을 들어 의학계에서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물리학계에서도 제로존이란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정식 과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과학자들에게 이론 자체가 검증받지도 못한 채 사장된 일도 있었다. 혹 이 이론이 나중에라도 옳은 것으로 증명된다면 멘델과 같은 억울한 과학자들이 또 나타나게 될 것이다.


③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유능한 인재를 없애는 태도이기도 하다. 비주류 과학자가 발견한 공훈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과학계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과학계의 발전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④항상 패러다임을 깨는 과학적 발전은 비주류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의 이런 풍토로 나와 같은 피해를 입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 김태훈(서울 마포고 3학년)

 


멘델은 훌륭한 과학자이지만 그에 비해 자신의 업적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정식으로 과학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과 수도사 신분이라는 조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아마추어 과학자쯤으로 여기도록 했습니다. 이는 사람의 환경이나 신분이 개인의 능력이나 실력보다 더 영향력을 갖도록 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학생답안에서 황우석의 예나 제로존 등 제시문에 소개한 사례와 유사한 다른 사례를 들고자 노력한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황우석이나 제로존의 예가 아직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미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언급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가 수의대 출신이라 의대 출신들이 반발했다는 내용은 일종의 주변 이야기로서 논술에 사용하는 논거로는 부적절합니다.


신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과학적 재능을 인정을 받았던 장영실이나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면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던 아인슈타인 같이 누구나 잘 알고 인정할 만한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글이 됐을 것입니다. 천민인 장영실에게 높은 벼슬을 내려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했던 세종의 열린 사고를 논거로 주장을 풀어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①번은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내 연구는’을 ‘내 연구 성과는’으로 바꿔야 합니다.
②번은 동일한 의미의 문장 두 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 논문은 내가 과학자가 아닌 수도사였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다’로 한 문장으로 합치는 방식이 좋습니다. 하나의 생각은 하나의 문장에 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③번은 문장이 길어져 필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싫어서’ 정도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됩니다.
④번과 같이 ‘항상’과 같은 정도 부사를 사용할 때는 주의를 요합니다. 과연 항상 그랬는지 생각해 봅시다.

생각 거리 >> 세계적인 명문대학은 그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다. 후광 효과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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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평원 서울 마포고 국어교사, 안재익 서울 마포고 과학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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