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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하늘공원이 품은 것은?

친절한 우아씨의 똑똑한 데이트 ➓



연애 10개월, 어느덧 소년과 소녀는 햇빛 아래에서 데이트 하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 보니 전보다 아주 많이(?) 친해졌거든요. 때맞춰 세상도 참 편해졌습니다. 밤새 시험 공부를 할 때도, 딱히 데이트하러 갈 데가 없을 때도, 영화 한편 보고 싶을 때도 자놀자 오달수 선생을 부르면 됩니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요? 음, 당신을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임명합니다. 쾅쾅. 여하튼 실내에서만 데이트를 즐기던 어느 날,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한 소녀가 비장하게 말합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는데 방에만 틀어 박혀 있을 수는 없어! 오늘은 공원으로 가볼까?”



하늘공원 아래에서는 메탄가스가 나온다

소년과 소녀가 향한 곳은 서울 상암에 위치한 월드컵공원 중 가장 하늘과 가까운 하늘공원입니다. 얕은 언덕처럼 보여도 나름 해발 98m를 자랑하지요. 올라서면 마치 산에 오른 것처럼 시원한 바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가을 햇살을 즐기던 소년이 갑자기 멈춰섭니다. “응? 저게 뭐지?”

소년이 발견한 것은 마치 뚜껑을 덮어놓은 우물처럼 생긴 구덩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표지판을 들여다보던 소년이 화들짝 놀라 달려옵니다. “으아아아아~, 저게 뭐야! ‘가스추출정’이래. 얼른 도망가자. 자고로 죽을 일 근처에는 가까이 가는 게 아니랬어!” 어깨를 눌러오는 소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녀가 말합니다. “놓거라. 너 때문에 내 승모근이 나날이 승천한단다. 놓으라고! (찰싹찰싹) 엄살 좀 그만 부려!”

하늘공원은 ‘쓰레기 산’ 위에 만들어진 공원입니다. 쓰레기 매립지를 안정화하는 공사로 탄생한 인공적인 땅이지요. 문제는 쓰레기가 잔뜩 묻혀 있기 때문에 쓰레기가 썩으면서 가스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월드컵공원 곳곳에는 100여 개의 가스추출정이 있습니다. 소년은 ‘날 살려라’ 도망쳤지만, 가스추출정 자체가 안전시설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으로, 지역난방공사에서 연료로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멋쩍어진 소년이 말합니다. “알고 보니 효자 공원이었네~.”

갈대? 억새? 산에서 만나는 건 다 억새!

한껏 익어 더 이상 푸르지 않은 키 큰 식물들이 바람결을 따라 움직이며 햇빛을 반사합니다. 장관 앞에서 소녀는 넋을 잃습니다. “소년아, 그러지 말고 내 마음을 닮은 갈대들을 좀 즐겨보렴. 깊어가는 가을, 광활한 초지…, 간만에 여유가 느껴진다. 그지?”

맑은 가을공기를 마셔보겠다고 소녀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사이, 소년도 다른 의미로(!)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네요. 양 눈은 반달이 됐고요. 비웃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입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소녀가 또 뭔가 책잡힐 말을 했나 봐요. 불길해진 소녀가 소년의 눈치를 살피며 묻습니다. “뭐…, 뭔데 또?” 소년이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쯧쯧, 해발 98m에 갈대가 어디 있니? 이거 다 억새야, 바보야.”

소년의 말처럼 키가 크다고 다 갈대가 아닙니다. 하늘공원을 뒤덮고 있는 새하얀 키 큰 식물은 바로 억새이지요. 억새와 갈대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꽃이 피고 지는 계절도 똑같아서 흔히 혼동하지만, 엄연히 다른 식물입니다. 같은 벼 과(科)이지만 각각 갈대 속(屬), 억새 속에 속해있지요.

구분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억새는 주로 산이나 뭍에서 자라는 반면, 갈대는 습지나 물가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물가에 사는 물억새가 있긴 하지만, 산에서 자라는 갈대는 없지요. 다시 말해, 산에서 만나는 키큰 식물은 갈대가 아니라 무조건 억새입니다. 둘은 색깔도 완전히 다릅니다. 억새는 주로 은빛이나 흰색을 띠고 갈대는 고동색에 가깝지요. 키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억새는 대부분 120cm 정도로 사람보다 작고 갈대는 2~3m 가량으로 껑충하게 자랍니다.

티격태격 하는 사이 해가 길게 눕고, 백발의 억새꽃들이 그림자를 흩뿌립니다. 소년과 소녀는 새삼,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해가 지는 만큼 둘의 사랑도 한층 더 깊어집니다. 햇살 아래 데이트를 마친 소년이 말합니다. “자, 이제 우리 라면 먹으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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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일러스트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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