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9일 페루 리마에 있는 국제감자연구소 파멜라 앤더슨 소장에게서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다. 8월 1일부터 3일 동안 대관령 일원에서 ‘강원감자큰잔치’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잔치는 전국에서 15만 명이 몰려들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사실 올해는 유엔(UN)이 정한 ‘세계 감자의 해’다. 10년마다 인구는 10억 명씩 증가하고 있고 최근 곡물 가격은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에 유엔은 식량난을 극복할 미래 작물로 감자를 정하고 2008년을 ‘감자의 해’로 정했다. 그리고 감자에 ‘숨겨진 보물’(hidden treasure)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비만 NO! 비타민 YES!

감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감자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영양학적으로는 틀렸다. 감자에서 가장 많은 성분은 수분(80%)이다. 그 다음이 탄수화물(16~18%)로 대부분이 전분이다. 나머지가 단백질(2%), 무기물, 비타민이다.
이 때문에 감자는 열량이 낮은 편이다. 밥 100g이 145cal인데 반해 같은 양의 찐 감자는 열량이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날씬해지려면 ‘입으로 먹지 말고 마음으로 먹으라’는 말이 있는데 감자는 마음 놓고 입으로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의 유명한 영양학자인 진 메이어 교수는 “사람들은 전분이 들어간 음식이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고 평하며 ‘전분=비만’이라는 편견에 일침을 가했다. 감자는 무게에 비해 부피가 많이 나가고 밥보다 비타민 B1, B2, B3(나이아신, 판토텐산)가 많이 함유돼 있어 균형 잡힌 식이요법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감자의 비타민 C는 열에도 잘 파괴되지 않는다. 비타민 C는 신선한 채소에도 많이 들어있긴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가령 파슬리를 데치거나 요리하지 않고 날것으로 100g씩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찐 감자 1개는 거뜬히 먹힌다. 감자는 열을 가하더라도 표면의 전분이 풀과 같은 상태가 돼 세포 중 비타민 C가 녹아나오기 어렵다. 또 채소는 줄기나 잎의 면적이 커 산소와 접촉하기 쉽기 때문에 비타민 C가 잘 파괴되지만 감자는 껍질째 삶거나 찔 수 있어 비타민 C의 손실을 막기 좋다.
감자에서 바이오에탄올 뽑는다?
최근 감자는 단순한 먹을거리에서 벗어나 각계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핵심은 감자의 전분이다.
지난 6월 14일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개막한 ‘사라고사엑스포’는 친환경을 내세우며 엑스포 기간에 소비되는 전력을 태양광과 풍력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바이오디젤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에코버스’를 운행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은 끈 것은 기념품을 담는 쇼핑백이었다. 엑스포측은 친환경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감자 전분을 주성분으로 만든 쇼핑백을 선보여 관람객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감자 전분을 이용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감자 전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컵라면을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감자 전분은 익는 온도가 59℃로 다른 전분보다 낮다. 컵라면의 라면에는 낮은 온도에서도 빨리 익는 감자 전분이 밀가루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때문에 끓지 않는 물에도 컵라면이 잘 익는다. 같은 이유로 캡슐형 항생제(마이신) 껍데기도 감자 전분으로 만들어, 먹었을 때 체내에서 잘 흡수된다.
또 미국에서는 B형간염 백신 주사를 맞는 대신 감자를 먹는 것으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감자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백신으로 사용될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 이렇게 되면 감자만 먹으면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감자 백신이 개발되면 개발도상국처럼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숙련된 기술자가 부족한 곳에서는 쓰임새가 훨씬 크다. 현재 소아마비 백신만이 경구용으로 개발돼 있는 상황도 감자 백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한편 생명공학자들은 감자에서 에탄올을 추출해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재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원료는 곡물(밀, 보리)이나 열대작물(옥수수, 사탕수수)의 전분을 가수분해해 나오는 당분(포도당이나 과당)이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소형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바이오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작물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사탕수수가 풍부한 브라질에서만 바이오에탄올이 석유나 경유 같은 화석연료보다 경쟁력이 있을 뿐이다. 사탕수수나 옥수수가 재배되는 지역이 한정돼 있다는 점도 걸림돌 중의 하나다.
반면 감자는 수확 기간이 70~80일로 짧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해안가부터 해발 4800m 고지대까지 감자는 환경과 기후에 대한 내성이 강해 재배가 비교적 쉽다. 전세계 202개국 중 감자를 생산하는 국가가 156개에 이른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재 벼, 옥수수 같은 곡물류에 비해 감자 재배 면적이 2배 이상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매년 3억t 이상 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해결해야할 문제는 많다. 현재 기술로는 감자 1ha에서 얻을 수 있는 바이오에탄올이 1830L 정도다. 사탕수수(1640L)보다는 많지만 고구마(5821L), 수수류(2196L) 보다는 뒤진다. 특히 전분 자체가 직선형인 아밀로오스와 여기에 가지를 치고 있는 고분자 아밀로펙틴의 혼합물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어 전분이 합성되는 과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슈퍼감자부터 컬러감자까지

특히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는 지난해 속까지 붉은 ‘홍영’과 자주색인 ‘자영’ 같은 컬러감자를 개발해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컬러감자의 추출물은 기존 감자에 비해 항산화성이나 항균성이 월등히 뛰어나 앞으로 새로운 기능성 식품소재로 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희망적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감자의 변신을 기대해보자.
김현준 과장 >;
강원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가공용 감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에 재직하며 22년 간 감자만 연구한 감자 전문가다. ‘감자백과’ ‘감자총서’ ‘식물유전자원학’ 등 관련 책 11권을 썼다. 2005년부터 2년 동안 페루 국제감자연구소에서 연구관으로 있었다.
감자의 산실 국제감자연구소에 가다

처음 간 곳은 감자의 원산지인 ‘감자공원’이었다. 감자공원은 페루의 유명한 관광지인 마추픽추가 있는 쿠즈코 부근에 있다. 감자공원은 감자 야생종의 멸종과 퇴화를 막고 생물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감자연구소가 페루 정부와 협정을 맺어 해발 3150~5000m의 고산 지대에 설립했다. 면적만 1만 2000ha로 어마어마하다. 감자공원 안에는 아직도 감자를 수확하며 물물교환으로 삶을 이어가는 원시 부족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감자공원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콩 역시 ‘콩공원’을 만들어 생물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국제감자연구소에 머물면서 이룬 대표적인 성과는 ‘김현준육종방법’을 발표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다. 이 방법은 보통 10년이 걸리는 감자의 육종 기간을 6~7년으로 단축하는 것으로 이집트에서 열린 ‘아프리카감자연합학회’에서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현재 ‘김현준육종방법’은 국제감자연구소에서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