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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열나게 온도의 과학

뜨거운 못보다 미지근한 물이 얼음 많이 녹인다?!

어느새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우리 몸은 온도에 꽤 민감하다. 보통 사람은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을 때 26℃에서 덥다고 느끼지만 4℃만 더 내려가도 서늘하다고 말한다. 온도에 민감한 손이나 입술을 환자의 이마에 대보고는 0.5℃ 정도의 온도 차이를 알아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람은 영하 30℃의 혹한도 견디고 40℃의 더위도 견딜 수 있다.

일기예보엔 어김없이 다음 날의 기온이 나온다. 별생각 없이 매일 얘기하는 온도는 어떤 기준으로 정했고 그 정체는 무엇일까.

열과 온도 어떻게 다르지?

온도를 알려면 열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온도와 열은 어떻게 다를까. 간단히 말하면 온도는 물체가 뜨거운 정도를 뜻하고, 열은 에너지의 한 형태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집안에 들어오는 전기에너지는 세탁기를 돌리는 역학적 에너지로 바뀐다. 태양에너지는 전기에너지를 만든다. 망치로 금속을 여러번 때리면 금속이 뜨거워지는데, 역학적 에너지가 열을 만드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형태의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열의 정체는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의 운동에너지 총량이다. 온도는 이 입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다. 물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면 구성입자가 활발히 움직여 물체의 열에너지가 높아지고, 온도가 올라간다. 물론 에너지의 총량과 평균은 다르다. 뜨거운(온도가 높은) 쇠못 안의 입자들이 갖는 평균 운동에너지는 한 대접의 미지근한(온도가 낮은) 물이 갖는 평균 에너지보다 크지만, 에너지의 총량은 작을 수 있다. 뜨거운 못보다 미지근한 물이 더 많은 얼음을 녹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섭씨온도vs 절대온도

생활에서 주로 쓰는 섭씨온도는 스웨덴의 셀시우스(Celsius)가 고안했다. 물의 어는점(0℃)과 끓는점(100℃)을 100등분해 사용한다. 과학에서는 절대온도를 많이 쓴다. 절대온도는 물의 삼중점(수증기, 물, 얼음이 공존하는 상태)을 기준으로 삼는다. 섭씨온도에 273.15를 더하고 ℃를 K로 바꿔 쓴다. 예를 들어 0℃는 273.15K이다. 만일 영하 273.15℃, 즉 0K가 되면 기체의 부피가 0이 되고 기체를 이루는 입자들은 모두 정지한다. 정지한 입자의 에너지를 더 낮출 수 없기 때문에 0K보다 낮은 온도는 만들 수 없다.

인류 최초의 온도계는 갈릴레이가 발명했지만 별로 실용적이지 못했다. 현재 많이 쓰는, 유리 모세관을 이용한 수은온도계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독일의 유리세공업자 파렌하이트(Fahrenheit)였다. 그는 이 온도계에서 가장 추울 때의 눈금을 0, 가장 더울 때의 눈금을 100으로 해 그 사이를 100등분한 눈금(화씨온도)을 사용했다. 요즘 화씨온도는 미국과 영연방에서만 쓴다.

보통 온도계는 표준온도계와 비교해 제작한다. 온도의 표준을 재기 위해서는 25K 이하에서 증기압이나 기체 팽창을 이용한 온도계를, 1200K에선 온도에 따라 전기저항이 변하는 백금온도계를, 1200K 이상에서는 빛의 색깔로 판별하는 복사온도계를 쓴다. 복사온도계는 물체의 온도가 높을수록 파장이 짧은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다. 파란 별이 붉은 별보다 더 뜨거운 이유도 같은 원리다.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은 50℃를 오르내리고 가장 추운 곳은 영하 88℃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


가장 낮은 온도 기록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은 영하 88℃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고 가장 더운 곳은 50℃를 오르내린다. 달 표면은 해가 비치는 곳이 105℃, 그늘진 곳은 영하 155℃로 차이가 더 크다. 태양 내부의 온도는 1500만K나 된다. 내부에서 수소 원자핵들이 융합해 헬륨 원자핵이 생기면서 나오는 에너지 덕분에 태양은 50억년간 빛나고 있다.

금속 가운데 가장 높은 온도에서 녹는 텅스텐도 3400K를 견딜 뿐이다. 1000만K에서는 대부분의 물질이 기체가 된다. 과학자들은 뜨거운 가스를 공중에 가둬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장치인 토카막을 제작하고 있다. 이 장치는 1억K를 유지할 수 있다. 온도만 잘 제어할 수 있으면 거의 무한정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써먹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온도가 매우 낮아지면 어떨까. 몇몇 금속은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초전도 현상)을 보인다. 이런 금속을 이용하면 손실 없이 전기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 문제는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온도가 20K 이하로 너무 낮다는데 있었다. 그런데 1987년 고온 초전도체가 발견되면서 물리학자들은 흥분했다. 물론 고온 초전도체도 140K 이하에서만 작동한다. 이런 초전도체는 해부하지 않고 몸속의 질병을 진단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 쓰인다.

온도를 낮추면 기체였던 헬륨도 4.2K에서 액체가 된다. 특히 2.17K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점성이 사라져 그릇에 가만히 둬도 벽을 타고 넘어버리는 ‘초유체’가 된다. 온도를 얼마까지 낮출 수 있을까. 현재 과학자들이 얻은 낮은 온도의 기록은 10억분의 1K다.

발효과학의 비밀

18세기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온도를 잘 다루는데서 비롯됐다. 산업혁명은 열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됐으며, 이 시기에 열역학에 대한 이해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20세기 기술혁명도 온도의 제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은 밥솥처럼 간단한 기계도 온도를 감지한다. 물이 남아있을 때는 밥솥 안의 온도가 100℃지만, 끓는 물이 없어지면 솥 안의 수증기 온도가 100℃를 넘어 온도만 재도 밥이 다 됐는지 알 수 있다. 김치냉장고는 3~4℃정도 오르내리는 기존냉장고와 달리 온도 변화를 1℃ 이내로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 또 문을 위로 열게 만들어 문을 열 때 냉장고 안의 찬 공기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막았다. 김치 맛을 좋게 하는 ‘발효과학’의 비밀은 온도 조절인 셈이다.

반도체 산업도 좋은 실리콘 결정을 만들기 위해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일이 기초다. CPU나 메모리 같은 반도체 칩은 대개 기판(wafer)이라는 실리콘 판 위에 조각하듯이 만든다. 고집적 회로를 조각하는 기술만큼 원재료인 기판을 만드는 기술도 중요하다. 반도체 칩 제조용 기판은 큰 실리콘 덩어리를 얇게 잘라서 만든다. 이 덩어리는 액체 상태의 실리콘을 천천히 식히면서 만드는데, 온도 조건을 잘 맞춰야 질이 좋아진다.

자동차 곳곳에는 5~16개의 온도계가 장착돼 실내온도나 엔진온도를 감지한다. 예를 들어 연료인 휘발유가 고온에서 폭발할 위험성에 대비해 연료통의 온도를 재고 엔진에서 방출되는 배기가스에서 질소산화물이나 일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백금촉매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하는데 쓰인다. 생활 속 어디서든 온도는 이제 생각만 하면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다.

미래에 온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하고 이 기술을 어디에 이용할지 알 수 없다.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지도, 원자를 이용한 탁구 게임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치냉장고가 김치 맛을 좋게 유지하는 비결은 정밀한 온도 조절에 있다. 3~4℃ 정도 오르내리는 기존 냉장고에 비해 김치냉장고는 온도 변화를 1℃ 이내로 조절할 수 있다.


갈릴레이 작품 아닌 ‘갈릴레이 온도계’

여러 색깔의 액체가 담긴 유리공이 유리기둥의 물 속에 떠있는 장치를 흔히 ‘갈릴레이 온도계’(사진)라 부른다. 액체가 팽창하는 현상을 이용한 온도계다. 물은 1℃ 오르면 부피가 1만분의 1정도씩(온도에 따라 다름) 늘고 질량을 부피로 나눈 밀도는 그만큼 준다. 밀도가 약간씩 다른 유리공을 만들면 온도에 따라 각기 다른 공을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의 밀도가 점점 줄어 유리공은 더 많이 가라앉는다. 각 유리공 밑에는 온도를 표시한 조그만 금속판이 달려있는데, 떠오른 유리공 중에서 가장 낮게 떠있는 유리공의 금속판이 현재의 온도를 나타낸다.

이때 유리공의 밀도를 매우 정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얼마나 정밀해야 할까. 보통 이 온도계는 약 2℃의 정확도를 가진다. 물의 밀도가 2℃당 1만분의 2g/cm³정도씩 변하므로 유리공의 밀도도 이 정도의 정확도를 가져야 한다. 유리공의 부피가 10cm³라 하면 질량의 정확도는 500분의 1g(1만분의 2g/cm³ × 10cm³)정도다.

실제 상용화된 제품들은 약 1000분의 3g의 정확도를 가진다고 한다. 또 유리의 팽창은 물의 팽창에 비해 10분의 1 이하로 작아 유리공의 부피가 변하는 정도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이 온도계는 갈릴레이의 작품이 아니다. 다만 온도에 따라 액체의 부피가 변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갈릴레이를 기리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 온도계는 갈릴레이가 죽은 뒤인 17세기 말부터 제작됐고 1776년 설립된 독일의 한 회사가 제작 과정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은 약 0.2℃의 정밀도를 갖는다고 한다.

갈릴레이도 ‘온냉계(Thermoscope)’라는 새로운 온도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온도계는 눈금이 없어 단지 덥고 차가운 정도만 알려주는데 그쳤다.

화씨온도 : 현재는 물의 어는점(0℃)을 32℉, 끓는점(100℃)을 212℉로 정하고, 이 사이를 180등분한 눈금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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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정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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