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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회전예술, 비보잉의 과학

나인틴나인티… 토마스… 프리즈 잘하는 비법

가족의 장기를 뽐내는 대회인 2008 ‘세계 패밀리 페스티벌’ 결승전. 전 세계의 눈과 귀가 결승전 무대에 집중된 가운데 한국 대표로 출전한 비보이 가족과 태권도 가족의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승부는 각자 장기를 보여 승패를 가리는 비보이 ‘배틀’ 방식.

태권도 가족이 두 발을 공중에 띄워 머리 위 물체를 차더니(반달차기) 공중에서 한 바퀴 반을 돌아 차는 ‘540˚ 돌려차기’로 기선을 제압한다. 이에 질세라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던 비보이 가족은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 몸을 스프링처럼 튕기다가 얼어버린 듯 그대로 동작을 멈춘다.

경기장은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두 가족은 화려한 개인기로 박빙의 승부를 펼친다. 결국 마지막 배틀에서 승리는 비보이 가족에게 돌아간다. 중력을 거부하는 비보이 가족. 그들의 승리 비결을 살펴보자.

회전 지배하는 ‘토크’와 ‘관성 모멘트’
하얀 모시옷에 지팡이를 짚은 비보이 가족의 할아버지. 태권도 가족 막내의 540˚ 돌려차기에 약이 단단히 올랐다. ‘흥! 이 녀석 겨우 한 바퀴 반이냐, 난 열 바퀴를 돌 수 있다’ 비보이 할어버지가 한 발 두 발 천천히 무대로 나서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음악이 빨라지자 할아버지가 갑자기 물구나무를 서더니 손으로 바닥을 짚고 놀라운 속도로 회전한다. 태권도 가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떻게 그는 물구나무를 선채로 몸을 회전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선보인 묘기는 ‘나인틴나인티’이라는 비보잉 기술이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몸을 수직으로 세워 빙글빙글 돌리는 ‘헤드스핀’과 원리가 같다. 두 동작 모두 핵심 기술은 최대한 손을 멀리 뻗어 땅을 짚는 것. 회전반경을 키워 토크(torque)를 높이기 위해서다. 토크는 물체를 회전시키는 힘으로 회전시키려는 물체와 먼 곳에서 큰 힘을 줄수록 커진다.

체육과학연구원 이순호 박사는 “회전을 시작한 뒤에는 회전하는 물체가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인 관성모멘트가 회전수와 회전속도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관성모멘트가 크면 회전하는데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는 뜻. 물체가 회전축 가까이 있으면 관성모멘트가 작아 회전하기 쉽고 회전축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관성모멘트가 커 회전하기 어렵다.

‘나인틴나인티’나 ‘헤드스핀’은 다리의 모양이 회전반경을 결정한다. 두 동작을 하는 도중 굽혔던 다리를 위로 쭉 펴면 어떻게 될까. 회전속도가 약 2배 빨라져 같은 시간에 더 많이 돌 수 있다. 관성모멘트가 작아지면 회전하는 물체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는 말이다. 한국 피겨스케이트의 ‘요정’ 김연아 선수가 팔을 펴고 회전하다가 팔을 몸으로 당길 때 회전속도가 빨라지는 현상도 같은 원리다. 다이빙 선수도 회전수를 늘리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최대한 끌어안아 관성모멘트를 줄인다.

이론적으로는 키 165cm, 몸무게 50kg, 다리 길이 80cm인 비보이가 굽혔던 다리를 펴 회전반경을 줄이면 회전속도는 초당 2바퀴에서 5바퀴로 2.5배 빨라진다. 이는 김연아의 회전수(초당 4~5번)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바닥과 헬멧 사이의 마찰력이 크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돌 수는 없다. 지난해 ‘헤드스핀’ 부문에서 기네스북에 오른 일본인 아이치 오노는 1초에 1.5바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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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틴나인티
회전하는 도중에 굽혔던 다리를 쭉 펴면 회전반경이 줄며 회전 속도가 빨라진다. 물체가 회전축에 가까울수록 관성 모멘트가 작아 회전하기 쉽기 때문이다.

리듬과 타이밍 맞춰 ‘진자운동’으로 날다

토마스
상체의 진자운동과 다리의 회전운동으로 이뤄진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짚을 때마다 두 다리의 회전운동을 지탱하는 상체가 앞뒤로 왕복운동을 한다.

비보이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태권도 가족은 놀란 얼굴이다. 이번에는 태권도 가족 아버지가 나서 공중제비를 두 번 돈 뒤 공중에서 3m 높이의 송판을 격파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비보이 가족도 아버지가 나서 공중기술을 선보인다. 음악에 맞춰 현란한 풋워크(발을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를 하다가 한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하고 두 다리가 허리를 중심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토마스’로 태권도 가족의 기를 꺾는다.

‘토마스’는 기계체조 종목인 안마에서 나왔다. 이 기술의 매력은 손을 번갈아 짚을 때마다 몸의 회전축이 바뀌며 무게중심이 균형과 불균형 상태를 넘나드는 데 있다.
토마스는 상체의 진자운동과 다리의 회전운동으로 이뤄진다. 손으로 바닥을 밀어 몸을 올리면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라 몸의 무게중심이 양 손 앞으로 쏠린다. 몸의 중심이 이동하면 균형이 깨져 토크가 생기고 회전관성에 의해 다리가 회전운동을 한다. 두 다리의 회전운동을 지탱하는 상체는 중력에 의해 진자운동을 하듯 앞뒤로 왕복한다. 이때 다시 팔 힘으로 동작을 반복한다.

회전축이 양 손으로 이동할 때 회전동작을 유지하려면 몸이 밖으로 튕겨나가려는 힘(원심력)을 버티는 일이 중요하다. 원심력을 버티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무게중심이 기저면(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신체가 지면과 닿아서 만든 가상의 면)에서 벗어나면 회전을 계속하기 위해서 강한 근력이 필요하다. 실에 매달려 원운동을 하는 구슬이 밖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으려면 원심력과 맞먹는 구심력이 필요한 것과 같은 원리. 다리가 V자를 그리며 몸이 앞쪽으로 나갔을 때는 어깨와 팔꿈치 사이에 있는 삼두근의 근력이 구심력 역할을 한다. 다리가 몸의 뒤쪽으로 빠져 공중에서 ‘엎드려 뻗쳐’ 자세가 됐을 때는 어깨의 삼각근과 승모근의 근력이 구심력 역할을 한다.

몸을 ‘강체’로 만들어 시간을 멈추다

프리즈
프리즈를 할 때는 몸의 일부가 지면과 닿는 면이 넓을수록 중심을 유지하기 쉽다.

만만치 않은 두 가족의 실력에 무대는 점점 달아오른다. 태권도 가족의 할머니가 머리 위 방향으로 다리를 180˚ 찢어 발차기를 한 뒤 그대로 공중제비를 돈다. 이를 지켜보던 비보이 어머니가 곱슬곱슬한 파머머리를 한 번 매만지더니 물구나무를 서며 몸을 스프링처럼 튕기다가 머리로 중심을 잡고 동작을 그대로 멈춘다.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머니가 선보인 기술은 ‘프리즈’로 비보잉의 마무리 동작이다.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운 자세에서 시간이 멈춘 듯 한순간에 움직임을 멈추는 일이 핵심이다.
어떻게 비보이 어머니는 몸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몸이 균형을 유지하려면 손이나 머리 같은 몸의 일부가 지면과 닿는 면이 넓을수록 좋다. 손가락 하나로는 책의 평형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손가락 3개로 삼각형을 만들어 그 위에 책을 올리면 평형을 유지하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숙련된 비보이도 5초 이상 프리즈 동작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몸의 무게중심축이 기저면을 벗어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프리즈 자세에 따라서 무게중심축에서 벗어난 다리나 팔, 머리에 토크가 생긴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체중뿐 아니라 토크를 상쇄시킬 힘도 필요하다. 무거운 막대기를 들 때 팔을 내렸을 때보다 팔을 올렸을 때 더 큰 힘이 필요한 원리와 같다.

프리즈에 필요한 힘은 어디서 나올까. 체중과 토크를 견디려면 지면과 닿아있는 손목과 어깨 힘이 강해야 한다. 이 힘은 팔꿈치와 손목 사이에 있는 전완근과 어깨의 삼각근에서 나온다. 관동대 스포츠 레저학부 박종훈 교수는 “프리즈를 잘 하려면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켜 몸을 하나의 강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체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져도 크기나 형태가 변하지 않는 물체를 말한다.

마른 몸에서 터져 나오는 ‘파워 무브’
“전 세계에 한국 비보이의 이름을 알리고 돌아오겠습니다.”
개그맨 백재현 씨가 연출하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패밀리’는 지난 8월 3일부터 23일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패밀리’는 대사 없이 동작만으로 비보잉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패밀리’에서 비보이 가족을 연기하는 비보이 팀 ‘에딕션 크루’는 출국 전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공연 ‘패밀리’ 막바지 연습으로 영국으로 출국하는 7월 28일까지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강행군을 계속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많게는 하루 18시간을 연습에 쏟았다.

비보잉에 적합한 신체 조건은 뭘까. 공연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팀의 리더 오효남 씨는 “강한 근력과 체력”을 꼽는다. 비보이들의 동작은 ‘파워 무브’(power move)라 불릴 만큼 근력과 체력이 중요하다. 하루라도 연습을 거르면 ‘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들의 몸에는 군살 대신 ‘실전’에서 생긴 근육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근육이 적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비보잉 기술을 익히기 불리하다. 여성은 지방이 몸의 20~40%에 이르지만 근육은 약 23%로 적다. 반면 남성은 근육이 신체의 40%가 넘는다. 남성과 여성이 분비하는 호르몬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피하지방을 축적시켜 아름다운 몸매를 만든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적어 근육이 발달하지 않는다.

키는 작을수록 유리하다. 팔다리가 길면 움직임의 범위가 커져 관성모멘트와 원심력이 커지기 때문.
비보잉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는 중독성”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팀명도 중독을 뜻하는 ‘에딕션 크루’다. ‘춤생춤사’. 춤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이들은 오늘도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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