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크게 보려면 PDF를 클릭하세요
더이상 지구상에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남아있지 않은 걸까. 만약 그런 구역이 남아있다면 지금이라도 보전할 가치가 있다. 이에 생태 보존 연구자들은 1980년대부터 지도를 펼쳐 놓고 인류의 손이 닿지 않았을 법한 지역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위적 변화가 없는 지역을 찾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각 문화권마다 토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달랐고, 통계도 일정치 않았다. 하나의 지도에 합쳐놓기 어려우니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러던 2002년, 인간발자국(human footprint)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인구 밀도, 토지 변형, 전력 사용 등 환경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행동을 인공위성으로 관측해 토지 1km2마다 점수를 매겼다. 이를 통해서 전 지구상에 뻗친 인류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가령 오스카 벤터 캐나다 노던브리티시컬럼비아대(UNBC) 교수팀은 8가지 변수(건축물, 농경지, 목초지, 인구밀도, 야간조명, 철도, 도로, 수로)를 통해 추산했을 때 2009년 전 세계 평균 인간발자국 점수는 50점 만점에 6.16점으로 1993년에 비해 9%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doi: 10.1038/ncomms12558
인간발자국 점수는 지난 10년간 더 정교해졌다. 인공위성 관측 기술이 향상됐고,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나뉜 자료들이 나왔다. 지난해 6월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NGS)와 미국 매릴랜드대 연구팀은 인간발자국을 포함한 4개의 통합자료를 토대로 인간의 영향을 나타낸 지도를 만들었다(위 이미지, 46~47쪽 지도). 그 결과 지구의 절반 정도가 비교적 인간의 영향을 적게 받았으나, 대부분 추운 극지방이거나 건조한 사막라는 사실을 밝혔다. 아시아 북부지역과 북미를 가로지르는 넓은 아한대 숲과 툰드라, 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과 호주 아웃백과 같은 광대한 사막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농업에 적합한 온대초원, 열대침엽수림이나 열대건조림 등의 지역 가운데 인간의 영향이 적은 곳은 1%도 되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한 얼 엘리스 미국 메릴랜드대 지리 및 환경시스템학부 교수는 “인간의 토지 이용으로 따뜻한 지역은 크게 위협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직 지구 절반 가까이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doi: 10.1111/gcb.15109
과거 모습 그대로인 지역 단 2.8%
하지만 낙관적인 평가만 있는 건 아니다. 올해 4월 또다른 연구팀은 인간의 영향 없이 과거의 온전한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육상 지대는 지구상에 단 2.8%뿐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멕시코 시우다드대, 베네수엘라 과학연구소(IVIC)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인공위성 이미지의 한계 때문에 실제로는 인간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위성 영상에는 피해가 없는 것처럼 측정된 큰 숲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냥이나 외부 생물종의 침입, 질병 확산으로 대형 포유류와 조류가 멸종하고 있지만 위성 영상에는 이런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지구상 20~40%의 지역이 온전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지역만 인간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 추측했다. doi: 10.3389/ffgc.2021.626635
연구팀은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 생태학적으로 1500년대와 차이가 없는 곳만 온전한 지역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이 지표는 2016년 벤터 교수가 발표한 인간발자국 지도를 기반으로 했다. 이 지도를 1만km2 면적 단위로 분할한 뒤 인간의 진출이 명확한 지역(4점 이상)을 제외하고 영향이 적다고 판단된 지역(0~3점)만 추렸다. 그 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여러 생물보존 연구팀들이 발표한 생물 멸종 현황 자료들을 종합해 이들 지역을 재평가했다(위 지도).
그 결과, 50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은 지구상에 2.8%에 불과했다. 콩고의 누아빌레-은도키국립공원,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응고롱고로 자연보호지역, 아마존의 알토리오네그로 원주민 영토, 칠레 남부의 카웨스카르국립공원 등이 이런 지역에 해당했다. 연구를 이끈 앤드루 플럼프트레 영국 케임브리지대 보존연구소 연구원은 “그래도 8~10% 정도는 온전히 남아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훨씬 낮은 수치”라며 “인간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금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2.8%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500년 전과 차이가 크지 않아 복원이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도 꼽았다. 이 지역들은 대형 포유류가 5종 이내로 멸종한 지역으로, 예를 들어 콩고의 일부 보호구역은 코끼리가 멸종됐지만 인구밀집 지역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 코끼리를 재도입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플럼프트레 연구원은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을 개선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훼손이 적은 지역을 복원해 생태적으로 온전한 지역을 점차 확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이 복원에 성공한다면 훼손된 지역이 무엇을 잃었는지 상기시켜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모습이 진정한 야생 생태계의 모습인지 측정하는 데 유용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